<소설> 벤처기업 (275)

 나는 남에게 돈을 빌리는 일은 싫었다. 그것처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끼니가 없어 굶을지언정 남에게 돈을 빌리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는 개인적인 빈곤과 달랐다. 내가 송혜련에게 돈을 빌리는 일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그만큼 긴박했는지 모른다. 그동안 돈이 부족해서 은행에 담보대출을 한다거나, 유성진 과장을 시켜 사채시장에 어음을 할인한 일은 있었지만 내가 직접 부탁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애인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그녀가 은행에 근무한다는 그 하나의 사실만 갖고 부탁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을까. 다행히 그녀는 즉시 응해주었다. 은행에 있는 공금을 쓰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사용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즉시 처리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공금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수년간의 직장생활로 저축을 해두어서 상당한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와 친척으로 구성된 계를 하고 있어서(은행에 근무하는 사람이 계를 하는 것은 좀 특이했지만) 자금 능력이 탁월했다. 그래서 나는 그 후에도 여러 번 그녀에게 부탁을 했다. 그녀와 결혼한 후에는 그녀에게 은행을 그만두게 하고 아예 회사 경리 담당으로 앉혔다. 어음 할인이든, 사채를 빌리든, 유성진 과장보다 훨씬 능력이 있었다.

 어쨌든 은행에 있는 송혜련을 통해 어음 부도를 막았는데, 나는 시작하면서 쪼들리는 것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거기다가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그렇지 않아도 자금이 풍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하고 있던 고려방적에서 제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지불거절을 하였다. 우리가 납품한 제품이 불량품이 많아서 오작동이 잦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자주 기계가 멈추고, 그 원인을 찾아 고치고 다시 수리해서 작동을 하는 과정에 시간이 지체되어 제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이었다. 고려방적에서는 나의 회사에 그런 내용의 증명을 보내오면서 클레임을 걸었다. 현재 장착한 소프트웨어를 수거해서 다른 걸로 교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약 위반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물건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방적에 가서 살다시피 한 배용정을 불러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말 그대로야, 오작동이 자주 난다고 제품 교체를 원해.』

 『오작동이라니?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데, 왜 고려방적에서만 오작동이 생긴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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