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여정에서 인상적인 것은 뉴욕 해변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그 일대의 혼잡, 그리고 거지가 많은 뉴욕의 골목입니다. 유엔빌딩이라든지, 전쟁기념관 따위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군요. 워싱턴 DC 역시 백악관 앞의 공원에 널려 있는 거지들로 가득합니다. 잘 사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웬 거지들이 이렇게 많은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동행한 제럴드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거지들이라기보다 실직자들이며, 집에서 가출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집에서 가출을 했든 안했든,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빈민급식소에서 밥을 얻어 먹으면 거지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구걸을 하는 것보다 그냥 빈둥거리고 놀다가 때가 되면 자선급식소로 가서 밥을 얻어 먹는 것이 일과로 보였습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데 옆방의 제럴드가 왔군요.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서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그녀를 사랑하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이제 조금 전에 그가 방을 나가 다시 이어서 글을 씁니다. 그는 자기의 지갑 속에서 어느 여인의 사진 한 장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애인이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중국인이었습니다. 그는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얼마 전 그가 북경에서 머물다가 시카고로 왔던 것을 감안하면 아마 그곳에서 사귄 여자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여자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까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죽었지만 착한 여자이기 때문에 천당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럴드는 아직 미혼인데, 죽은 애인의 사진을 품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죽었지만 잊을 수가 없어 지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해할 듯했습니다. 나는 최근에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기다림이며, 기다림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끝이 아니고, 계속된다는 뜻이며, 종말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뜻이며, 절망이 아니고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서부로 날아갈 것입니다. 며칠 후 나의 여행기를 당신에게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건강히 잘 있으세요.
11월 18일
워싱턴에서 최영준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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