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전력공급은 정보시대의 핵심요소다. 전력공급이 차질을 빚을 경우 여기에 연결돼 있는 수많은 기기들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80년대초 국내 굴지의 모 반도체회사가 갑작스러운 전기공급 중단으로 수십억원대의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다. 들짐승이 전력라인을 파손시켜 생산라인이 중단된 것이다. 또 외국의 대형 병원에서도 전력 불안정으로 환자들이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보화가 급진전됨에 따라 병원·은행·학교는 물론 대형 플랜트나 발전소 그리고 통신기지국 등에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필요로 하면서 전원공급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UPS는 상용전원과 부하에서 발생하는 장애로 인한 불량전원을 양질의 전원으로 바꾸어준다. 정전, 저전압 및 과전압, 전압강하, 노이즈 낙뢰나 개폐기에 의해 발생하는 서지 등 송전선로에서 여러가지 전원장애가 발생하면 축전지에 저장돼 있는 직류전력을 상용주파수의 교류전력으로 변환해 중요한 부하에 안정된 전력을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UPS의 등장으로 과다한 부하에 따른 갑작스런 정전이나 저전압으로부터 정보와 기기를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종전에는 UPS를 CVCF라고 불렀다. 「Constant Voltage Constant Frequency」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정전압 정주파수 장치라는 의미였다. UPS는 여기에 축전지를 부착해 무정전화하고 소프트웨어를 추가해 역변환장치가 고장나도 부하장비는 순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UPS는 전용으로 쓰이는 전기실에 설치된 수천kVA급 대용량에서부터 OA기기용으로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수십∼수백kVA의 중간용량, 그리고 PC에 사용할 수 있는 5kVA 이하 기종까지 다양한 종류가 개발돼 상용화하고 있다.
UPS는 기술발전에 따라 소형·경량화하고 있어 용량을 구분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10kVA 이하를 소용량으로, 10∼1백kVA 사이를 중용량으로, 1백kVA 이상을 대용량으로 구분하고 있다.
소용량 UPS는 각종 OA기기나 FA기기에 대응하도록 설계돼 부가가치통신망(VAN)이나 근거리통신망(LAN) 등 네트워크의 단말시스템, 체인점의 POS단말시스템 등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졌다. 10분까지 정전에 대응할 수 있는 배터리를 내장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중간용량은 사무실 컴퓨터 및 중규모의 컴퓨터 시스템, 화학, 발전 등 각종 설비의 계장 제어시스템에 사용되며 병원에서 각종 의료 및 관리시스템 등에도 이용되고 있다.
대용량 UPS는 1백kVA 이상의 출력용량 범위로 대형 금융기관의 컴퓨터나 항공관제시스템 또는 언론사에서 사용하고 있다. 대용량 UPS는 병렬사용하면 수천kVA급까지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 최대 용량 UPS를 개발했다는 기록이 무의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석유화학설비나 의료시스템, 빌딩감시시스템 등에서는 일반적으로 단순한 구성의 단일운전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데 반해 금융기관 온라인시스템 및 컴퓨터센터나 대형 방송시스템 등 고신뢰도가 요구되는 대규모 시스템에 대해서는 통상 3∼8대를 병렬 연결해 사용한다.
시장 규모에 비해 국내업체들의 기술수준은 다소 미흡한 게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들 스스로도 아직은 기술수준이 뒤떨어진다고 인정하고 있다.
다만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력은 최근들어 급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대만업체들의 제품을 빌려쓰는 정도라는 악평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기술축적을 일구고 있다.
하드웨어의 경우도 용량 측면에서 본다면 3백kVA급 이상을 자체 생산하는 업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외국업체에 비해 뒤진다는 평가를 감수하고 있다. UPS의 핵심부품이라 할 수 있는 고속 스위칭전력반도체(IGBT) 기술이 부족해 대용량 생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업체들의 설계제작기술은 미국 및 일본업체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핵심부품인 SCR나 파워트랜지스터, IGBT 등을 수입하고 있어 기술의 낙후는 물론 외국업체에 의한 국내시장 잠식마저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초창기부터 국내업체들은 미국의 엑사이드나 APC, 유럽의 지멘스·머린저린·아시아브라운보베리·시콘 등과 직·간접적인 제휴를 맺어왔다. 실제로 이화전기나 수영전기·국제전기 등 이른바 「빅3」는 미국의 엑사이드·IPM·에머슨에서 기술을 도입, 대기업의 참여를 배제한 채 성장을 누려왔다.
80년대 들어 삼풍전원시스템·태일자동제어·한강기전·엔이티 등이 사업에 참여했으며 90년대 들어서는 크로스티이씨 등이 가세하면서 UPS시장은 중소기업의 치열한 경쟁마당이 됐다.
84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한때 1백50여개 업체가 시장에 참여했으나 94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에서 해제된 후 점차 수가 줄고 있다.
현재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에 등록된 업체 가운데 UPS를 생산하는 곳은 30여개사다. IMF와 함께 증가세는 줄었지만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조립상 수준 업체를 합하면 80∼90개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UPS가 단체수의계약 품목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여 향후 자금과 기술력 등을 갖추지 못한 업체가 낙오되면 조합가입 업체 수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 UPS의 단체수의계약 품목 제외는 94년 중기 고유업종 해제만큼 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UPS가 중기 고유업종에서 해제되면서 중소기업의 참여가 줄어들고 그동안 연구개발에 전념했던 대기업의 참여가 늘어났다.
이번 단체수의계약 품목 제외는 이같은 중·대기업의 참여를 가속화하면서 자본과 기술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도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점쳐진다.
이를 반증하듯 최근들어 시장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이 시장을 주도해온 LG산전이 지난해말 UPS부문을 수영전기에 매각한 것은 시발점에 불과했다. 사업을 인수한 수영전기 역시 자고 나면 최대 주주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최근들어 경영이 안정화하면서 서서히 예전의 지위를 되찾아가고 있다.
특히 교육망·행정전산망 등 소형시장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제품의 폭을 넓혀가는 대형업체들도 생겨났다.
이와 함께 미국·일본·유럽업체들의 국내시장 진출도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 가운데 특히 국내 소형시장에서 APC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국내 컴퓨터·네트워크용 시장에서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APC는 국내 중소업체들의 부러움과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엑사이드와 머린저린 등도 최근들어 생산설비를 국내에 둘 것을 고려할 정도로 한국시장에 대한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이밖에 유타카 등 일본업체들도 취약한 가격 경쟁력을 품질과 애프터서비스(AS)로 보완한다는 전략을 갖고 국내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오는 21세기 국내 UPS시장은 중소형·대형할 것 없이 국내외 업체가 혼재돼 사안에 따라 경쟁하며 제휴하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될 전망이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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