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조조정"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엊그제 청와대에서 개최된 정·재계 간담회는 국내 경제발전을 이끌어 왔던 재벌체제의 사실상 해체를 선언한 자리라 할 수 있다. 핵심분야 중심으로 사업구조 개편, 상호지급보증 해소, 실효성 있는 재무구조 개선, 경영투명성 제고, 정부채권금융기관간의 역할 재정립 등 5개 분야 20개 실천사항을 골자로 한 「5대 그룹 구조조정 합의문」은 김 대통령이 올 한해 동안 강력히 추진하고 공언한 경제개혁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합의문에 담긴 삼성의 자동차부문과 대우의 전자부문에 대한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은 김 대통령의 경제개혁이 국민의 피부에 와닿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가시적 성과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에는 선언적인 합의로 끝나던 종전과 달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정이 제시되고 채권은행단이 별도로 이행사항을 공시키로 한 것은 합의사항의 이행 여부를 끝까지 챙겨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분기별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5대 그룹의 구조조정 이행상황을 점검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마디로 이제 금융빅뱅 이상의 기업빅뱅이 일어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번 합의는 한국 기업사에 남을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5대 그룹은 지난해 외환위기 이후 가속된 개혁과 구조조정에서 자발적인 유인을 갖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면서 무너져가는 공룡을 자생력 있고 날렵한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자는 노력이 이번에 마련된 구조조정 방안인 셈이다.

 따라서 계열사를 절반으로 줄이고 20조원에 달하는 비주력 계열사와 사업부문을 매각하겠다는 방안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또 그렇지 않아도 가전을 비롯, 반도체·정보통신 등 3대 분야를 모두 꿰차고 있는 삼성은 대우의 전자부문을 흡수함으로써 공룡 전자업체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 파장은 계열사나 관련 중소업체들에까지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이와 함께 반도체 통합법인의 경영주체도 오는 25일께 판가름나게 되어 있어 그동안 첨예하게 경쟁을 벌이던 전자·정보통신 업종들이 대부분 양사체제로 재편되는 등 산업지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번 구조조정은 기업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대국적 견지에서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5대 그룹은 그간 사업 맞교환에 따른 세부방안을 논의하면서 경영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연연하고, 그동안의 과오로 빚어진 대규모 부실을 채권단에게 전가하려 했던 구태를 말끔히 벗어야 한다

 5대 그룹은 이제 새로 태어나기 위한 첫 걸음에 나선 것일 뿐이다. 스스로 생존을 위해 그리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닌 경제주체로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다음 걸음도 차질없이 이어져야 한다. 단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와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내실있는 작업으로 이어져야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래야만 이번 합의로 기대되는 외국투자자들의 신뢰회복이나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의 국가신용등급 재조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비주력 업종의 맞교환에 따른 실무작업이나 내년 말까지 부채비율을 2백% 이하로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과 마찰이 예상된다. 또 이질적인 기업문화 통합에 따른 생산성 저하도 우려된다. 생산라인의 통합으로 빚어지는 과잉설비의 처리도 문제다. 이와 함께 산업의 이원화체제로의 개편은 독과점을 금지하는 공정거래 정책과 상충될 수도 있어 보완책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번 합의대로 5대 그룹의 계열사가 대폭 정리될 경우 대대적인 감원바람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비록 이번에 주력업종으로 포함된 계열사들도 앞으로의 생존은 각 개별기업의 자체 역량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실업자수가 2백만명에 육박하는데다 우리 사회에서 혜택받은 계층에 속하는 5대 그룹 직원마저 감원태풍에 휩싸인다면 어디에서 직장을 구하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심정을 헤아려 강력한 고용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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