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곤두박질 치던 국내경기가 최근들어 회복되는 양상이다. 산업생산과 제조업 가동률 등 실물경제 지표의 호전기미가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에다 일본 엔화가 강세를 지속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일부 품목의 수출도 다소 살아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경기가 바닥권에 진입, 회복국면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낙관적인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최근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11월중 수출동향을 토대로 할 때 이같은 낙관론이 대두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정부의 갖가지 경기부양 정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아 수출 관련 정부부처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던 수출은 11월에 들어 주력품목인 반도체의 호조로 1백20억7백만 달러를 기록, 비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에 그친데 불과했지만 6개월 만에 증가세로 반전됐다는 것은 이같은 낙관적인 분석을 뒷받침해 준다고 할 것이다.
또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중 산업활동 동향도 경제가 호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지난 7, 8월 62∼63% 수준에서 67.6%로 증가했으며 특히 반도체·컴퓨터 등 전자·정보통신업종의 가동률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성장과 직결되는 산업생산 증가율도 전체적으로 9월 이후 호전되고 있고 특히 10월중 반도체와 음향통신기기 생산은 지난달보다 각각 10.1%, 8.2% 증가하는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재고도 반도체가 지난달보다 15.5% 줄어드는 등 전체적으로 연속 2개월간 두자릿수의 감소 폭을 기록하면서 지난 96년 2월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같은 몇 가지 경기지표만으로 국내경기가 본격 상승 추세에 들어섰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경기가 저점에 진입했으나 어느 단계에서 회복국면에 진입할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할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처럼 경기회복 여부를 판단하기엔 불확실 요인이 너무나 많다. 산업생산의 상승세, 수출회복 조짐 등 각종 지표 회복에도 아직은 큰 기대를 걸 수 없는 것은 세계 경제침체가 지속되고 있고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향상이 아직도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수출하와 설비투자는 아직도 급격한 감소세를 멈추지 않고 있어 당장 회복국면으로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고 또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그 추세는 매우 완만할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수출이 회복되고 있는 것은 여간 반갑지 않다.반도체 등의 수출가격이 제법 오름세를 타고 수입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경상수지적자 개선이나 성장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근거다. 여기에 재고증가율이 주춤하고 환율이 안정되면서 금융 및 외환시장의 불안감이 가라앉고 있는 점도 희망적 관측을 밑받침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역시 낙관은 금물이다. 경기가 곧 바닥을 치고 반등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근본적이고도 강력한 회복세를 자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불황은 단순한 경기순환에서 온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고비용 저효율문제, 생산성 낙후, 기술열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불황이 오면 구조조정이다 뭐다 해서 호들갑을 떨다가 경기가 호전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고 모두가 거품 만들기에 열중했다. 그 결과 오늘의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를 초래했다.
이번 기회에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고질병을 치유하지 못하면 선진경제 진입은 요원하다. 그동안 기업들은 감량경영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 왔다. 경기가 되살아난다고 해서 이같은 노력을 중단하거나 약화시켜선 안된다. 기술개발 소홀로 경쟁력과 채산성이 극도로 나빠진 기업체질을 강화하지 않고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 엔고 등 경제상황 호전에 결코 방심해선 안된다. 오히려 회복국면에서 경제체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
정부도 일부 경제지표의 미시적 개선 조짐에 현혹돼 경제상황 판단이 흔들리고 정책의 일관성 유지가 어렵게 돼서도 안될 것이다. 당초 방침 대로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 정부와 공공부문의 개혁을 빨리 매듭짓고 새로운 경제구조와 질서 위에서 지속적 성장이 진행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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