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이후 국내 전자산업의 성장기반이 와해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고도성장의 신화를 창조한 국내 전자산업이 90년대 들어서면서 성장의 한계를 드러내더니 IMF체제에 따른 수출·내수의 극심한 침체로 이제는 뒷걸음질치는 상황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이같은 성장기반 와해조짐은 올 들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국내 전자산업의 유일한 돌파구로 여겨지는 수출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데다 내수도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 전체 생산은 원화가치 상승으로 크게 증가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자업계 관계자들은 전자·정보통신산업 수출이 소폭이지만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낙관했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경제의 몰락과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일본 경제의 침체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목표치를 계속 수정해야 했다.
내년에는 그러나 국내 전자·정보통신산업이 환율안정과 반도체가격 안정 등으로 회복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점쳐져 다소 위안을 주고 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의 조사에 따르면 내년 국내 전자·정보통신산업 수출 및 내수가 각각 8.2%, 2.4% 증가하고 생산은 올해보다 5.4% 증가한 7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불안요인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침체가 지속되고 동남아·러시아 등 외환위기 지속에 따른 시장 침체, 중남미 국가의 외환시장 불투명 등의 악재들로 전자·정보통신산업은 내년에도 결코 낙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자금조달 곤란 및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인한 투자위축,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증가, 민간소비 위축의 지속으로 내수시장도 쉽게 활기를 되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내년에 신규투자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산업전반의 경기를 되살리는 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업계는 경기불투명, 자금조달 곤란, 수요부진 등으로 인해 신규투자에 과감히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당면한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은 수출확대다. 국내 전자산업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경쟁력의 상실로 요약할 수 있다. IMF체제가 경제와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정적인 동인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부실한 경제·산업 환경이 IMF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약화된 경쟁력을 높이는 게 IMF 이후의 과제다. 가격과 품질·디자인·사후서비스 등으로 대별되는 경쟁력은 한번 무너지면 쌓아올리기가 무척 힘들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전자산업계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세계시장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도 기술력이 한계상황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과감한 변신과 집요한 기술개발로 오늘의 위기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게 우리 업계에 부여된 임무다.
국내 전자업계는 내년에도 결코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 같지는 않다. 올해보다 다소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 전자산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조정되지 않는 한 자력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성장기반이 약화된 현재의 산업구조를 재편해야만 비로소 경쟁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전제를 깔고 이제는 IMF환경만을 탓할 때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 혁신경영을 구사, 계속되는 불황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지원체계를 손질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재원이 분배되도록 기술개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국내 전자산업은 올해 혁신동기를 찾지 못할 경우 내년에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내 전자산업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문제점을 오늘의 거울에 비쳐 내일의 좌표로 삼는다면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승산은 있다. 국내 전자·정보통신 관련업체들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각 기업에 알맞은 혁신전략을 세워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내년에는 어둠을 몰아내는 강열한 빛이 업계에 환하게 내리쪼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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