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케이블TV와 중계유선의 공존

정당 간의 세확장 경쟁에 휘말려 통합방송법 제정작업이 중단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가운데 최근 케이블TV와 중계유선을 포함한 유선방송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의 단초들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케이블TV 출범 당시부터 중계유선을 백안시해 왔던 케이블TV 업계 일각에서 중계유선 사업자들에게 유화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중계유선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논리는 종전에도 있어 왔지만 주로 중계유선들을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국(SO)의 부방송국화 또는 SO에 흡수하는 등 케이블TV 위주의 방안들이었다. 자신들의 입장과는 무관한 일방적인 주장에 중계유선 사업자들이 크게 반발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고 있는 일련의 논의들은 이와는 달리 중계유선의 「실체」를 인정하는 기조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종합유선방송위원회가 최근 문화관광부 등 관련기관에 건의한 「케이블TV 당면 위기극복과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향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한국전력의 전송망사업 지속이 어려울 경우 SO들에게 한전망 매입 우선권을 주고, 중계유선망을 한전 전송망의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특히 「능력이 인정되는」 중계유선 사업자에게 SO 자격을 부여, 동일사업권(프랜차이즈)내 복수 SO를 인정하자고 제안한 것은 그동안 케이블TV업계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케이블TV 중심의 흡수통합 방안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어서 주목된다. 「전문가 자문위원회」도 케이블TV 프로그램공급사(PP) 프로그램의 중계유선 직접 송출, 케이블TV 삼분할 정책의 수정 등을 제안하고 있다.

PP의 경우도 최근 실무대표자들로 구성된 「PP협의회 발전태스크포스」가 전국의 30여개 중계유선방송 사업자들을 비공식적으로 방문, 시설기준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고 한다. 9개 PP가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물론 그동안 일부 중계유선들이 PP 측에 프로그램 공급을 타진해온데다 PP들도 공급처를 넓혀 수익을 증대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 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중계유선에 대한 동반자적 관계 추진 움직임이 과연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우선 일부 SO들이 벌써부터 PP와 중계유선의 접촉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다 중계유선을 SO로 끌어들이는 문제도 아직까지는 「별로 아쉬울 게 없는」 일부 복수 중계유선 사업자들이 중계유선에 비해 설비투자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번거롭고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SO의 지위를 탐탁하게 생각할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계유선과의 보조 맞추기를 반대하는 일부 SO를 비롯한 케이블TV 업체들과 「통합」이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중계유선 사업자들 모두 나름대로의 입장과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각각의 SO와 몇몇 집단의 이해나 체면, 그동안 노력에 대한 공치사보다는 관련산업이 정상화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자생력을 갖춘」 중계유선과 케이블TV의 연계는 그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또한 중계유선 사업자들을 둘러싸고 일고 있는 각종 마찰과 잡음을 해소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다매체 다채널 정책을 기치로 내걸었던 대만이 우리와 달리 케이블TV와 민영TV 정책이 비교적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것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과거 감독관청인 공보처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기존 자생적으로 성장해온 중계유선 사업자들을 배제한 채 「정부계획」 아래 케이블TV의 인위적인 토대를 구축한 한국과 달리 대만은 기존 자생적으로 성장해온 민간 사업자들을 합법화하는 등 민간의 자생력을 높이는 데 주력한 결과 현재 케이블TV 보급률이 75%에 달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상을 무시한 인위적인 틀의 취약성은 그동안 충분히 입증됐다. 이제는 정부의 결정에 앞서 관련 사업자들이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양보와 결단을 통해 더 늦기 전에 케이블TV와 중계유선 모두가 발전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때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