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기계의 핵심부품인 컴퓨터 수치제어(CNC)장치 개발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나눠먹기식」으로 분산 개발중인 프로젝트를 한 곳으로 결집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당면과제인 제품 개발은 물론이고 상품화한 CNC장치가 업계 표준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CNC 전문업체 설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작기계의 대일 무역적자가 심화된 지난 95년 말부터 시작된 CNC장치 개발사업은 생산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부품인데도 거의 전량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는 CNC장치를 국산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공작기계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직결되는 중요한 사업이다.
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중기거점 사업으로 선정, 오는 99년 9월까지 민간자금 1백90억원을 포함해 총 3백67억원을 투입하고 대우중공업, 현대정공, 삼성전자, 두산기계, 터보테크 등 14개 기업과 8개 연구기관에서 1천명 이상의 연구인력을 동원키로 한 것도 고성능 선반 및 머시닝센터용 개방형 CNC장치가 공작기계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가름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NC장치 개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국내 공작기계산업에 미치게 될 직접적인 효과만 5억 달러에 달하며 여기에 50억∼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여타 기계류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공작기계 기술자립 및 수출산업화에 미칠 영향 등 간접효과까지 감안한다면 그 파급영향은 엄청날 것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이 사업을 주도해 온 NC공작기계연구조합 측의 전망이다.
이런 파급효과 때문인지 참여업체간 이해가 첨예하게 얽히고 정부출연금이 당초보다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일정에 큰 차질을 빚지는 않았다. 1차연도와 2차연도에 하드웨어 사양을 비롯, 제품설계와 기능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3차연도인 올해는 시제품 제작, 기계장착시험, 표준화 작업 등을 추진키로 하는 등 별다른 문제 없이 사업이 추진됐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상품화 단계에 접어들면 그동안 내재돼 있던 업체간 이해득실에 따른 알력이 수면 위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종료하려면 서둘러 암초제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가장 큰 문제는 최소 생산물량 확보 방안과 생산방식이다. 물론 정부, 조합, 회원사 개발 책임자들로 구성된 기술운영위원회와 각 회사 사장단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공동생산, 공동사용」을 전제로 생산(조립)공장 확보, 라인설비 구비, 생산 및 판매인력 확보, 판매망 구축, 참여업체간 수익배분 등 제반 문제를 올해 말까지 결정키로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대우중공업, 현대정공, 기아중공업, 삼성전자, 터보테크, 통일중공업 등이 CNC장치 독자개발에 나서고 있어 수요기반 상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공작기계 성능을 좌우하는 초정밀기기인 CNC장치가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최소 3년 이상 현장 테스트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신제품을 선뜻 자사의 공작기계에 장착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신제품이 개별기업이 보유한 제품보다 성능이 우수하거나 가격이 저렴하다면 상황은 유동적이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각 기업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NC장치보다 경쟁력이 높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런 문제는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행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은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핵심기술 확보」보다는 정부출연금에만 눈독을 들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모든 참여업체들이 고성능 선반 및 머시닝센터용 개방형 CNC장치 개발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산, 학, 연, 관에서 연인원 1천여명이 동원된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맺음하지 않으려면 모든 참여업체들이 지나친 자사 이기주의에서 탈피, 지금이라도 분산 추진중인 과제를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 하다 못해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업체에 몰아주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국내 공작기계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근본부터 다시 검토,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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