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세트업체의 갑작스런 부품구매방식 변경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 종합전자업체의 하나인 L사가 그동안 협력업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던 부품구매방식을 최근 공개입찰방식으로 변경하자 여타 세트업체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어 앞으로 부품의 공개경쟁입찰제도는 크게 확산될 전망이다. 또 이로 인해 세트업체와 부품업체 간의 수직계열화 협력체제가 송두리째 무너지면서 부품유통시장에 일대 회오리바람을 몰고올 것으로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부품의 공개경쟁입찰제도는 부품구매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값싼 부품을 확보할 수 있으며 나아가 경쟁력 있는 부품업체를 발굴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사실 그동안의 부품구매 과정을 보면 부품구매 절차 등이 폐쇄적이어서 적지 않은 잡음이 일어나곤 했다. 부품업체들도 세트업체와 거래를 한번 트면 안정적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기술개발이나 품질향상을 위한 노력을 등한히 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경쟁력 있는 신규 업체들의 시장참여를 가로막는다는 것은 개방경제 체제 아래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계열사나 다름없는 협력업체를 통한 부품구매방식은 공정경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배타적 수급구조라는 점에서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세트업체들이 이번에 공개경쟁을 통해 부품업체를 발굴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심각한 경기침체로 중소기업의 경영이 매우 어려운 시기라는 점과 특히 수많은 각종 부품의 표준화나 규격화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갑자기 부품의 공개경쟁입찰제도를 도입할 경우 야기될 부작용의 심각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세트업체가 공개경쟁 입찰방식으로 구매방식을 바꿈으로써 부품업체들의 경쟁 심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외환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속에서 부품업체들이 치열한 공급경쟁을 벌이게 된다면 품질향상은 뒷전으로 미룬 채 가격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진다.
세트업체로서는 부품업체들의 가격경쟁이 당장 부품 조달가격의 인하를 유인하고 이는 곧 원가절감을 통한 경쟁력 강화의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할지 모르지만 부품을 생산, 공급하는 부품업체들의 시각은 이와 정반대다. 부품의 가격인하는 곧 제품의 품질저하를 초래하게 되며 이는 또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또 계속되는 가격경쟁이 부품업체들의 경영악화로 이어지면서 안정적인 부품공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결국 불황기에 도입된 경쟁입찰제도는 부품산업에 치명적 위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 결과 세트업체에도 득보다는 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 부품 조달방식은 완전경쟁체제로 가야 한다.
이웃 일본의 경우 우리와 같이 세트업체들에 종속된 부품업체들은 안정적인 공급처를 갖고 있지만 큰 수익을 보장받지 못한다. 큰 수익을 올리는 부품업체들은 세트업체들로부터 독립돼 철저한 경쟁을 통해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이다. 미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장기적으로는 이처럼 자유경쟁의 구도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경기가 극도로 악화된 현시점에서, 특히 부품의 표준화가 상당부문 실현되지 않고 있는 현시점에서 자유경쟁을 도입할 경우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경기가 극도로 악화된 현시점에서는 오히려 세트업체와 부품업체간의 협력이 더욱 중요하다. 부품업체들은 가뜩이나 열악한 자금사정에 외환위기까지 겹쳐 존립 자체를 크게 위협받고 있으며 여기에 일부 대기업들의 환차손 전가, 부품재고 떠넘기기 등은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세트업체들은 부품산업과 세트산업의 공생관계를 감안, 부품산업을 고사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품조달체계를 변동하는 지혜를 보여야 할 것이다. 눈앞의 이익만 좇다 순망치한의 때늦은 한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부품업체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내수 의존도를 줄이고 수출에 눈을 돌려 안정적인 부품 공급처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선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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