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 소프트웨어(SW) 수출규제를 둘러싼 미국 행정부와 업계간 공방전이 새로운 대결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법원이 행정부의 암호화SW 수출규제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데 이어 행정부 역시 긴급항소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의 매릴린 홀 파텔 판사는 지난달 말 일리노이 주립대의 수학교수인 대니얼 번스타인이 미국 국부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암호화SW는 수정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따라 보호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암호화SW의 수출규제를 둘러싸고 미국 행정부와 업체간 힘겨루기의 표본으로 그동안 많은 관심을 모아 왔다.
번스타인 교수는 자신이 만든 암호화 알고리듬을 인터넷을 통해 배포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기를 요청했고 행정부가 이를 거절하자 지난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정교한 암호화SW는 테러리스트나 마약밀매자 및 여타 범죄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행정부가 내건 규제이유다.
파텔 판사는 지난해 이미 이 수출규제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측에서는 암호해독을 위한 「키」를 정부기관에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새로운 규제안을 내놓았다. 파텔 판사는 이번에 이 규제안마저 위헌으로 판결한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어떤 제한도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언론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말 미국 케임브리지에서는 「제6차 컴퓨터, 자유 그리고 사생활 회의」가 열렸다. 5명의 연방 판사와 4명의 내로라는 변호사들이 패널리스트로 참석한 이 회의의 주제는 암호화SW 수출규제가 과연 위헌인가라는 점이었다. 가상 법정에서 진행된 이 회의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정부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만 진행될 필요는 없다』는 점과 『현 정부의 방침은 마치 개인의 집 열쇠를 경찰서에 일괄 보관토록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행정부의 규제는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의미다.
미국의 현행법에서는 암호화SW는 군수품으로 분류되어 40비트 이상의 암호화 기술을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수출이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40비트 기술은 현재 쉽게 해킹되는 수준이다. 업체들이 원하고 있는 1백28비트 기술은 40비트에 비해 정확히 309, Mbps85, ppm09, dpi21, pH45, ppm68, rpm24, rpm81, ppm56배가 강하다. 도저히 해독 불가능한 것이다.
컴퓨터의 속도가 점차 빨라짐에 따라 암호화의 방법도 수시로 변하고 있다. 암호화 기술 없이는 다가오는 인터넷 상거래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상거래에는 신용과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하고 보안SW는 바로 이같은 상호간 신뢰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제품의 수출규제를 놓고 이토록 줄다리기를 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번 위헌 판결로 암호화SW 수출규제는 명분을 잃었다. 곧 전면해제 시기가 다가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의 암호화SW 수출규제가 해제되면 전세계적으로 많은 파장이 일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고급 암호화SW 제품들이 판을 칠 것이며 또 이 기술들을 전면으로 내세워 인터넷 상거래 부문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암호화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문업체로는 이니텍이 제품개발에 성공했으며 삼성SDS와 LG소프트에서도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당한 암호화 기본기술을 축적한 상태다. 미국의 수출규제 빗장이 풀리면 이같은 국내업체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우려된다.
인터넷시대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암호화SW 기술개발을 비롯한 보안산업분야에서의 총체적인 기술개발이 시급한 시점이다. 암호화기술은 다가오는 인터넷시대의 핵심 인프라라는 점을 감안해 정부와 업계가 적극 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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