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우리 민족문화의 새 지평을 연 한글이 창제된 지 5백50돌을 맞았다. 올해에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한글날」을 새기기 위한 여러 행사가 열리기는 했지만 다분히 구호에 치우친 일과성 행사로 끝나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산업의 세계화 물줄기를 제대로 트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창조적 활동의 도구이며 그 성과를 담아내는 그릇인 한글을 완전하게 정보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한글의 정보화」는 한글을 컴퓨터에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표준화 문제와 한글 응용제품의 세계화 방향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한글 정보처리체계의 표준화 문제만 하더라도 여러 갈래가 있다. 남한과 북한이 자주적으로 함께 해결해야 할 우리만의 것이 있고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처리해야 할 것이 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정리될 사안이 아니다.
그동안 정보교환과 호환성에서 상당한 지장을 초래했던 한글 정보처리체계의 경우 올들어 한글에 대한 국제규격이 제정되고 남북한간에 키보드 자판배열이나 자모순배열 표준 등 관련분야 통일안이 속속 발표되고 있어 일부 분야에선 한글 정보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으나 그렇다고 한글 정보화의 걸림돌이 제거된 것은 아니다. 한글코드 논쟁만 해도 정부가 국제표준규격인 유니코드에 의거한 KS규격을 제정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모든 언어를 2바이트 값에서 동일하게 처리하게 될 유니코드에 대한 대응은 언어의 고유 특성이 오히려 정보전송의 방해물로 여겨지고 있는 인터넷환경의 부상과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유니코드는 이미 ISO에 의해 세계 정보통신환경의 기본 질서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늦어도 21세기 이전에 정착될 유니코드에 대한 우리의 대비가 미흡할 경우 20년 이상 지속돼온 한글코드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칫 한글 정보화문제를 소홀히 다루다간 민족 최대 문화유산인 한글이 오히려 정보산업 발전이나 정보사회 진행에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도 있어 국가차원의 전략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정보통신 관련용어 통일문제만 해도 그렇다. 문화체육부는 실제로 커서를 「깜박이」로, 마우스를 「다람쥐」로, 클릭을 「딸깍」으로 바꾸는 등 컴퓨터용어 순화안을 마련했으나 홍보 부족으로 겉돌고 있다. 물론 흔히 사용되는 용어를 한글화할 경우 자칫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어차피 언어는 습관인 이상 국가표준안을 만들어 계속 사용하면 정착되게 마련이다.
한글의 정보화는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은 물론 한국의 세계위상을 정립하는 데도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나 갈 길이 너무 먼 게 사실이다. 언어이론, 자연어처리, 정보처리, 인지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느 것 하나 완전한 것이 없는 형편이다.
한글 정보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음성과 필기체 인식, 정보검색 등 국어 정보처리 각 분야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인 전자사전 등 컴퓨터가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 기계어로 번역한 국어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도구를 만드는 한글정보검색기술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나온 한글전용 인터넷 검색도구는 6가지 가운데 1,2개 정도만 제대로 한글검색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컴퓨터 번역시스템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영어와 일어는 90%까지 번역 가능하나 문법, 맞춤법까지 따진다면 성공률은 50∼60%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의 정보화에는 많은 예산이 들어가면서도 짧은 시간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분야이다. 따라서 기업의 투자보다는 정부의 지원으로 일관성있고 밀도있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늘날 정보사회에서 실용성이 더욱 빛나는 한글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주적이면서도 국제적인 한글의 정보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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