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통개혁방안 재고돼야 한다

우리의 유통업은 가장 낙후된 업종중 하나다. 유통업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낮기도 했지만 정부정책이 제조업에 비해 소홀했던 게 큰 원인이다. 그간 유 통업은 제조업에 기생하는 산업으로 인식돼 차별을 받아왔고 금융지원이나 토지매입에 있어서도 불리한 대우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유통업계의 혁신 바람을 타고 최근 정부의 유통산업 육성정책이 달라지고 있다. 재정경제원은 지난 9일 김영삼대통령에게 올해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유통단지 개발촉진법"을 제정해 대도시 주변 자연녹지에 대형 할인점을 세울 수 있게 하는등 가격파괴를 주도하는 유통업체의 토지이용규제 완화와 금융.세제상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또 유통업체의 물류관련 시설재 도입에 대한 외화대출등에서 제조산업과 동등하게 대우하는등 유통개혁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은 정부가 지난해말 발표한 "유통산업의 혁신방안"과 일맥상통한다.

재경원은 특히 이 유통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전자대리점"등 특정 제조업체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전속대리점 체제를 여러 제조업체의 상품을 동시에 취급하는 양판점 형태로 운영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와관련, 불공정거래 감시활동 강화방침을 밝혀 이의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래서 양판점들은 앞으로 가전3사로부터 자유롭게 제품을 공급받아 영업할수 있게 될 것으로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다. 이는 가전3사가 한국가전양판점협회의 제품 직접 공급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실랑이를 벌였던 문제를 정부가앞장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96년 유통시장 완전개방에 따른 영세 유통업체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올해중 15억원을 마련, 정보화구축 자금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는 유 통업의 기본이 정보관리시스템의 활용에 있고 유통업계가 매우 절실한 과제 로 여기고 추진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다.

한 나라의 경제구조에서 유통부문의 효율화가 곧 바로 산업 나아가 국가 전체경제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일련의 유통개혁 지원 대책은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같은 유통혁신대책에도 문제점이 많다. 국내 유통업체의 절대다수 를 차지하는 중소 유통업체에 대한 지원책보다는 일부 대기업에서 거대자본 을 바탕으로 신규 진출하고 있는 신업태에 대해 지원비중이 높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대도시 자연녹지내 판매점 설립 허용이나 회사채 발행 평점을 높여주는 등의 지원정책이 모두 대기업이나 추진할 수 있는 대형 할인점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영세 유통업체로선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이미 영세상인연합체에서는이에대해 대기업에 지나친 특혜를 부여하면서 영세 상인들을 지원대상에서 소외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관계요로에 돌리기도 했다.

물론 물가오름세를 잡는데 할인점 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 유통혁신대책 을 마련한 재정경제원이 물가당국인 만큼 이같은 할인점 육성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유통산업을 육성하겠다면서 물가관리에 중심을 두어 새로운 유통업태에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특히 이러한 할인점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정책을 노리고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외국 굴지의 다국적 유통업체들이 할인점에 대거 참여할 경우 일어날 부작용도 걱정된다. 가뜩이나 유통시장 전면개방을 앞두고 국내 유통업체 보호 가 절실한 마당에 자칫 할인점이 외국제품의 저가공세 창구로 이용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현재 국산 가전제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프라이스클 럽등 일부 할인점이 외산 저가 가전제품을 들여와 판매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또 하나는 가격파괴를 주도하고 있는 대형할인점에 대한 정의가 법률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각종 지원조치를 서둘러 마련, 시행 하는 경우의 특혜 시비가 말썽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할인점.양판점등 가격파괴를 주도하는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정책은 이상의 지적된 부작용을 감안하여 좀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정부가 시급히 해야할 일은 우리 유통업체가 개방에 대비, 경쟁력을 갖추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철폐하는 등 개발체제에서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다. 새로운 업태에 대한 특혜성 지원도 기존 유통업체들에 대한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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