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산업데이터는 누구 자산인가…중국 '신뢰데이터공간' 실험

[기고·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데이터 한곳에 모으지 않고 기업·산업·도시가 사용권과 수익 나누는 구조

산업데이터 가치는 크지만 거래는 쉽지 않다. 설비·공정·품질·고객·공급망 데이터는 기업 핵심 영업비밀이고 개인정보와 국가안보 규제도 적용된다. 데이터를 외부에 넘기면 통제권을 잃고, 보유만 하면 새로운 AI·금융·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

중국은 신뢰데이터공간(可信数据空间)을 통해 이 딜레마를 풀려 한다. 데이터를 중앙에 모두 모으지 않고, 기업이 통제권을 유지한 채 정해진 주체·목적·기간·조건 아래 사용하도록 신원·권한·계약·보안·정산을 제공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신뢰데이터공간 본질은 데이터 거래소를 하나 더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원본을 넘기지 않으면서도 여러 기업이 데이터 사용권과 수익을 공유할 수 있는 산업계약·기술 인프라를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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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레이크와 무엇이 다른가

기존 데이터 플랫폼은 여러 기관 데이터를 한 서버나 클라우드에 모으는 방식이 많았다. 신뢰데이터공간은 데이터를 보유기관에 남겨두고 접근권한과 연산을 통제한다. 데이터 제공자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사용할지 정하고, 사용기록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신원인증, 접근제어, 암호화·프라이버시 컴퓨팅, 사용정책, 로그와 정산이 필요하다. 법적으로는 데이터 보유·사용·경영권, 영업비밀, 개인정보와 국경 간 이동을 정해야 한다.

'공간'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다. 여러 기업과 기관이 공동규칙을 지키며 데이터를 사용하는 네트워크다. 유럽 데이터스페이스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중국은 국가 데이터요소 정책과 산업클러스터, 국유 데이터그룹을 결합한다.

중국은 기업형·산업형·도시형으로 나눠 시험한다

중국 국가데이터국은 2025년 신뢰데이터공간 혁신발전 시범을 시작해 2년간 실증하도록 했다. 최종 63개 시범은 도시형 13개, 산업형 22개, 기업형 28개로 구성됐다.

기업형은 대기업과 협력사가 공급망·생산·품질데이터를 공유한다. 산업형은 자동차·전자·에너지·철강·의료 등 업종의 여러 기업과 기관을 묶는다. 도시형은 공공데이터와 기업데이터를 교통·금융·상권·도시서비스에 연결한다.

2025년 관련 보고서는 중국의 데이터공간·데이터요소 활용이 32개 산업 분야, 900개 이상 시나리오로 확산됐다고 설명한다. 숫자 자체보다 데이터 활용이 단일 거래에서 산업 프로세스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데이터 권리는 소유권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데이터는 복제 가능하고 여러 주체가 함께 만든다. 설비 제조사는 장비데이터를, 공장 운영자는 공정데이터를, 작업자와 고객은 행위데이터를 만든다. 누가 전부 소유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중국은 데이터 자원 보유권, 데이터 가공·사용권, 데이터제품 경영권처럼 권능을 분리해 등록·거래하는 방향을 모색한다. 2026년 데이터 재산권 등록 지침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등록체계를 추진한다.

등록이 소유권을 완전히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 출처, 합법적 수집과 처리, 사용범위와 이해관계자 권리를 기록해 거래 증거를 만드는 성격이 강하다.

신뢰데이터공간에서는 계약이 핵심이다. 제공기업은 데이터가 어떤 모델·제품에 사용되는지, 결과를 누가 소유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지,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정해야 한다.

쓰촨창훙은 제조데이터를 금융까지 연결했다

쓰촨창훙(四川长虹) 산업데이터공간은 제조데이터가 생산과 금융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보여준다. 공개자료에 따르면 135만건 TV 품질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공정 최적화에 활용해 약 90억위안(약 13억2500만달러) 생산가치 효과를 만들었다고 평가됐다.

또 대기업 64곳과 중소기업 1650곳 공급망 데이터를 연결해 누적 약 40억위안(약 5억8900만달러)의 금융을 제공했다. 전통 대출보다 금리를 1.05%포인트 낮추고 처리 기간을 5~7일 단축했다는 결과가 제시됐다.

이 수치는 기업·정책기관 자체평가이므로 독립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문·품질·물류·결제데이터가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연결되면 중소기업의 신용과 생산성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다는 구조는 분명하다.

데이터공간은 AI와 공급망금융 하부구조다

산업용 AI는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만 기업은 원본을 외부에 주지 않으려 한다. 데이터공간 안에서 모델을 학습·검증하고 결과만 가져가면 영업비밀 노출을 줄일 수 있다.

공급망금융도 핵심 기업 주문·품질·납품·결제데이터를 확인하면 중소기업 담보 부족을 보완할 수 있다. 탄소·재활용·제품추적 분야에서는 여러 기업 데이터를 연결해야 규제와 고객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

중국의 데이터요소×(数据要素×) 행동계획은 데이터가 산업·금융·도시·의료·교통과 결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신뢰데이터공간은 데이터요소 정책을 실제 계약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장치다.

수익은 누가 가져가나

데이터 제공기업은 원천데이터와 품질·갱신 비용을 부담한다. 운영기관은 보안·인증·컴퓨팅·정산을 제공하고, 개발기업은 모델과 제품을 만든다. 고객은 서비스 비용을 지불한다.

수익배분은 고정가격, 사용량, 성과·매출 연동과 공동지분 등으로 설계할 수 있다. 데이터 기여도를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고, 대기업이나 플랫폼이 협상력을 이용해 대부분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좋은 데이터공간은 가격과 사용기록, 알고리즘 결과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중소기업이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하게 해야 한다. 단순히 데이터 제공을 의무화하면 공급망 권력의 또 다른 도구가 된다.

중국 신뢰데이터공간의 다섯 가지 병목

첫째는 권리 불확실성이다. 데이터 출처와 공동 생성, 파생 결과 권리를 계약만으로 완전히 해결하기 어렵다.

둘째는 보안과 영업비밀이다. 원본이 이동하지 않아도 모델과 통계 결과에서 민감정보가 추론될 수 있다.

셋째는 상호운용성이다. 도시·기업·산업별 플랫폼 신원·계약·API가 다르면 다시 데이터섬이 된다.

넷째는 운영자 지배력이다. 국유 데이터그룹이나 대기업 플랫폼이 접근권과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

다섯째는 빈 사용사례다. 플랫폼과 등록 건수는 늘지만 실제 고객·매출·생산성 개선이 없을 수 있다. '거래액'보다 산업성과를 봐야 한다.

데이터공간 경쟁력은 참여자 신뢰 비용에서 갈린다

산업데이터공간은 많은 데이터를 모았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기업이 영업비밀을 잃지 않고 필요한 데이터만 제공할 수 있는지, 사용명세를 추적하고 위반을 중단시킬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신원·권한·계약·로그·정산이 자동화될수록 중소기업 참여 비용이 낮아진다.

운영자는 데이터 품질과 의미를 표준화하고, 서로 다른 설비·기업 시스템을 연결해야 한다. 데이터 카탈로그와 API만 만들어서는 부족하다. 불량률·납기·탄소·재고처럼 실제 업무지표 정의가 같아야 AI·금융·공급망 서비스가 작동한다. 산업협회와 핵심 기업, 소프트웨어 공급자가 공동으로 데이터모델을 만드는 이유다.

수익배분은 데이터양보다 기여 가치에 따라야 한다. 원천데이터를 제공한 기업, 정제·분석한 운영자, 모델과 서비스를 만든 기업, 위험을 부담한 금융기관 몫을 계약으로 정해야 한다. 플랫폼이 모든 파생 가치를 가져가면 참여기업은 핵심데이터를 내놓지 않는다.

한국 기업의 중국 데이터공간 참여전략

중국 고객과 공동생산·물류·금융을 수행하는 한국 기업은 산업데이터공간을 통해 공급망 가시성, 품질관리와 금융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법인 설비·거래데이터가 본사 시스템과 연결될 때 데이터보안법, 개인정보보호법과 국경 간 이전 규정을 검토해야 한다.

공급계약에는 데이터 보유·사용·가공권, AI 학습 허용, 파생모델 귀속, 경쟁사 제공금지 탈퇴 후 이동권을 포함해야 한다. 중국 데이터 재산권 등록이 소유권을 완전히 보증하는 것은 아니므로 계약과 기술적 통제가 병행돼야 한다.

한국 정부와 산업협회는 자동차·배터리·조선·반도체 등 분야별 신뢰데이터공간을 구축할 때 중국·유럽 시스템과 상호운용성을 고려해야 한다.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것과 해외 공급망에서 데이터를 교환하는 것은 동시에 설계할 수 있다.

금융·탄소·AI가 데이터공간을 요구한다

신뢰데이터공간은 제조기업 간 품질 정보 교환에만 쓰이지 않는다. 공급망 금융은 주문·납품·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중소기업 신용을 평가하고, 탄소 관리에는 제품별 에너지·원료 데이터를 추적해야 한다. AI 모델은 여러 기업 데이터를 원본 이동 없이 학습할 수 있는 연합학습·프라이버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활용처가 넓어질수록 데이터 정확성과 책임도 중요해진다. 잘못된 생산데이터가 대출과 탄소 인증, 품질판정에 사용될 경우 누가 손실을 부담할지 정해야 한다. 데이터공간 운영자는 단순 저장소가 아니라 신원·품질·계약·분쟁을 관리하는 산업 인프라가 된다.

한국은 산업데이터 사용권과 이동권을 먼저 정해야 한다

한국도 제조데이터 플랫폼, 마이데이터, 데이터거래소와 산업용 AI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대기업·중소기업·장비업체·소프트웨어 기업 사이 데이터 권리와 수익배분은 개별 계약에 맡겨진 경우가 많다.

정부는 산업별로 데이터 소유권을 일괄 규정하기보다 수집 합법성, 보유·사용·파생 결과와 이동권 표준계약을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는 데이터플랫폼 구축보다 지역기업이 함께 해결할 품질·에너지·물류·탄소 문제를 먼저 선정해야 한다.

대기업은 협력사 데이터를 무상으로 요구하지 말고 사용 목적과 기간, 파생모델·수익을 명시해야 한다. 금융권은 데이터가 많다는 이유로 신용평가를 자동화하지 말고 편향과 오류, 이의제기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은 프라이버시·보안·데이터경제 평가에 참여하고, 스타트업은 데이터 접근권과 종료 후 이동·삭제, 모델의 재사용권을 확인해야 한다.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은 현지 데이터공간 참여가 데이터의 중국 내 저장과 국경 간 이전, 기술 학습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계약 단계에서 검토해야 한다.

중국의 신뢰데이터공간에서 배울 것은 모든 산업데이터를 국가나 플랫폼에 모으는 방식이 아니다. 기업이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범위 사용권과 수익을 계약·기술로 나누는 방식이다. 한국은 산업데이터를 각 기업 금고에 가둘 것인가, 아니면 권리와 보안을 지키면서 공동 생산성과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신뢰 공간으로 연결할 것인가.

박지민 36kr코리아 공동 대표 3guowill@krstar.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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