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샌드박스, '실증'에서 끝나선 안 된다…'제도 개선' 이어져야”

규제샌드박스가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을 위한 '성장 사다리'가 아니라 실증만 허용하는 제도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안전성이 입증된 기업조차 법령 정비 지연과 과도한 부가조건에 막혀 사업화를 포기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규제샌드박스를 '희망고문'이 아닌 성장 제도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9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법령정비 지연 해결을 위한 규제샌드박스 개선 좌담회'를 열고 규제샌드박스의 운영 실태와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정부와 학계,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현장의 애로와 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Photo Image
29일 오후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법령정비 지연 해결을 위한 규제샌드박스 개선 좌담회'에 참고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박세훈 한국법제연구원 규제혁신법제팀장, 구자현 KDI 선임연구위원,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정책연구실장, 이민창 한국규제학회 회장, 정병규 중기부 중소기업옴부즈만 지원단장,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 대표.

발제를 맡은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정책연구실장은 “기업들은 4년 동안 시범사업을 하기 위해 규제샌드박스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성을 입증해 제도 개선과 사업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들어온다”며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마지막에 '허가는 별개'라는 식으로 결론이 나면 규제샌드박스의 근본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들이 신청 이후 진행 상황을 알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법적으로는 3개월 내 승인하도록 돼 있지만 기업들은 사전 컨설팅과 신청 준비 과정까지 포함하면 훨씬 오래 걸린다고 체감한다”며 “택배 배송 조회처럼 신청번호를 입력하면 현재 심사 단계인지, 부처 협의 단계인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장에서는 규제샌드박스가 실증과 사업화 사이의 '단절'을 만들고 있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자신이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규제샌드박스를 경험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을 당시에는 기대가 컸지만 계좌 개설을 1000개로 제한하는 부가조건 때문에 은행은 시스템을 바꾸려 하지 않았고, 결국 모든 부담은 스타트업이 떠안았다”고 말했다.

이어 “제한된 조건 안에서 실증을 하라고 해놓고 나중에는 '그 정도 규모로는 안전성을 검증할 수 없다'고 하면 사업도 아니고 검증도 아닌 상황이 된다”며 “열심히 준비해 들어왔는데 실증이 끝난 뒤 다시 입학원서를 쓰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최 대표는 “안전성이 입증된 혁신 서비스는 정부가 첫 구매자가 돼 공공조달과 연계해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며 “국내 레퍼런스가 쌓여야 해외 진출도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실증특례 승인 단계부터 사업화 로드맵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처럼 실증과 법령 정비, 사업화가 각각 분리돼 추진되는 구조에서는 스타트업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날 주요 개선 방안으로 △규제합리화위원회의 상시 점검 기능 강화 △실증특례 승인 단계에서 법령 정비 기준 명확화 △안전성이 확인된 과제의 단계적 시장 확대 △소비자 의견 수렴 제도 도입 △기업이 신청 진행상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 구축 △기업 의견 상시 접수 시스템 마련 등이 제안됐다.

구자현 KDI 선임연구위원은 “규제샌드박스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성장 정책”이라며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규제샌드박스를 발전시켜 AI와 드론, 바이오 등 첨단산업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일부 규제만 풀어주는 데 그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규제 하나를 유예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와 성장까지 연결하는 패키지 정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복수 부처가 관련된 과제는 컨트롤타워를 통해 신속하게 조정하고, 실증 이후 법령 정비까지 책임지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이번 좌담회는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며 “논의된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해 관계부처에 적극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