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반도체 라인 건설 현장을 찾았다. 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극자외선(EUV) 라인이다. 이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조원 이상 투자되는 설비이며, (팹을)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인천 공항 3개와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에 얼마나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사례다. 당시만 하더라도 반도체 팹 하나를 세우는데 20조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약 7년이 지난 오늘날 20조원으로는 반도체 팹 하나 짓기도 힘들어졌다.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가격이 지속 상승하고, 인건비·건설비 등 비용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100조원은 돼야 온전히 반도체 팹을 가동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용인 신규 팹 4기를 건립하는데 600조원 투자를 예상했다. 단순 계산하더라도 공장 하나당 150조원 필요해진 것이다.
이는 반도체 제조가 엄청난 장치 산업임을 보여준다. 엔비디아·AMD·브로드컴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기업과는 결이 다르다. 소위 '공장이 없음'을 의미하는 '팹리스'는 반도체 설계에만 투자하면 되지만, 제조는 설비에 투자되는 금액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우리나라 대표 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현실이다.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1·2위라는 역사를 썼다. 양사 메모리 없이는 세계 산업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다.
한국 메모리 제조사가 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건 강력한 생산능력 덕분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역량은 반도체 팹에서 나온다. 팹 투자가 결국 메모리 시장 주도권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막대한 투자비를 쏟은 결실이다.
지금 후발주자들은 이 주도권을 뺏으려고 혈안이다. 가까이는 중국이 창신메모리(CXMT)·양쯔메모리(YMTC)를 앞세워 메모리 생산 능력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시장 점유율도 상승세다. 중국 내수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려는 행보가 잇따른다.
미국도 마이크론을 필두로 메모리 생산 역량을 키우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대만·일본 등에 대규모 팹을 건설하며 생산능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넘겨준 반도체 제조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미 정부 전략과 맞물려 막대한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에 이런 현실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AI 덕분에 분기마다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하며 잔치 분위기지만, 이 순간에도 경쟁자들은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손을 놓고 있으면 메모리 왕좌를 빼앗길 우려도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300조원 안팎으로 전망한다. 단일 기업이 수백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전례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역대급 수익에 잔치를 벌일 법도 하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의 특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거둬들인 돈은 곧 재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 예상 영업이익 300조원으로는 팹 2~3기밖에 건설하지 못한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