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통신사와 금융사에서 잇따라 발생한 해킹 사고가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최고경영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관심이 잦아들 무렵,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정보보안 업체 대표가 던진 말이 오래 남았다. 유망 직업 조사에 늘 정보보안 전문가가 포함되는데, 도대체 언제 유망해지느냐는 말이었다.
정보보안 전문가는 오래 전부터 유망 직업으로 꼽혔다. 각종 직업 전망 조사에서도 상위권이었다. 그런데 정작 업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정보보안 업계에서 20년 넘게 일하는 동안 기술은 발전했고 시장도 커졌다. 그러나 실제로 유망한 직업이냐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보안업계를 대하는 태도다. 사람들은 보안을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산업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보안의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중요성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그에 걸맞게 대우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업은 보안을 전략이라고 말하면서도 비용으로 여긴다.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사고 전에는 투자에 인색하고, 사고 후에는 단기 처방에 집중한다. 평소에는 가장 싼 가격을 찾다가 문제가 생기면 가장 강력한 대책을 요구한다. 최근 로펌이 보안 시장에서 높은 대우를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산업이 커져도 전문성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
둘째는 보안업계 내부의 노력이다. 시장의 요구와 전문가의 역량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 시장은 사업과 기술을 이해하고, 위험을 숫자로 설명해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는 보안 전문가를 원해왔다. 그러나 업계는 오랫동안 기술 자체에 머무는 데 익숙했다. 취약점을 찾고 기능을 구현하며 솔루션을 다루는 인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반면 그 기술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안 위험을 어떻게 비즈니스 언어로 설명할 것인지에는 둔감했다. 기술적 역량을 사업적 가치로 연결하는 능력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것이다. 보안은 늘 중요했지만 보안 전문가가 늘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닌 이유다.
그렇다고 정보보안 전문가의 미래를 비관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지금이 진정으로 유망한 직업이 될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AI의 등장으로 상황이 바뀌고 있다. 공격자는 AI를 활용해 더 빠르게 취약점을 찾고 정교한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 방어자도 AI로 이상 징후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탐지하고 반복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도구의 등장이 아니다. 그 도구를 이해하고 통제하며 조직의 체계 안에 심는 역할을 누가 맡을 것인가다. 정보보안 전문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유망'이라는 말은 몇 년 뒤의 약속으로 미뤄질 것이다.
이를 위해 정보보안 전문가는 세 가지 역할을 맡아야 한다. 첫째, 통역사다. 기술자에 머물지 않고 위험을 번역해야 한다. 위협이 매출과 고객, 평판, 규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설계자다. 생성형 AI를 금지할지 허용할지만 따져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게 하며, 어떤 기록을 남길지 설계해야 한다. 셋째, 지휘자다. 반복 업무는 AI에 맡기되 최종 판단과 책임의 기준은 사람이 쥐어야 한다.
필요한 역량도 분명해졌다. 보안 기술은 기본이다. 데이터와 AI 시스템, 클라우드와 개발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규제와 거버넌스를 읽는 힘, 경영진과 현업을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갖춰야 한다. 예전처럼 한 우물만 깊게 파서는 버티기 어렵다. 기술과 정책, 사업을 연결하지 못하면 전문가라는 이름은 남아도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보보안 전문가가 지금까지 유망하지 못했던 이유를 사회가 중요성을 몰랐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시장도 준비가 덜 돼 있었고, 업계도 기대만큼 변하지 못했다. 둘 모두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AI는 보안을 더 어렵게 만들지만 정보보안 전문가가 맡아야 할 자리도 선명하게 만든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또다시 정보보안 전문가는 유망하다는 말만 남을지 모른다.
이대효 지니언스 전략마케팅실 상무 dado@genian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