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경쟁력, 팹보다 소부장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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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동 용인시산업진흥원장.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민간 투자만 약 1000조원에 달하면서 용인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새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팹이 들어선다고 지역 경쟁력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공장은 혼자 돌아가지 않는다. 초순수, 특수 가스, 포토마스크, 식각 장비 등 수백 종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이른바 소부장이 제때 정확하게 공급돼야 한다. 클러스터의 진짜 경쟁력은 팹의 규모가 아니라 이를 떠받치는 소부장 생태계의 두께에서 나온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노광·이온주입 등 핵심 장비는 ASML,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도쿄일렉트론(TEL) 등 해외 기업 의존도가 높고,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대에 머물러 있다.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당시 불화수소 하나에 국내 반도체 공장이 긴장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후 소재 분야는 국산화에 진전을 이뤘지만 장비 분야 자립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소부장 공급망의 회복탄력성은 이제 경쟁 전략을 넘어 산업 안보의 문제가 됐다.

용인 클러스터 인근 소부장 중소기업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기술은 있지만 대기업 납품 실적을 확보하기 어렵고, 시제품을 만들어도 검증받을 테스트베드가 부족하다. 인력은 모자라고 자금 조달 비용은 높다. SK하이닉스가 협력기업을 위한 미니팹 운영에 나서는 등 대기업 차원의 지원은 이어지고 있지만, 클러스터 조성 속도에 비해 주변 생태계를 키우는 정책 속도는 더디다. 이 격차를 방치하면 용인 클러스터는 외형만 화려한 '팹 섬(Fab Island)'으로 남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앙정부의 소부장 정책이 국가 전략 차원의 기술 개발과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한다면, 기초 지방자치단체는 사각지대를 메우는 '마지막 1마일' 지원자가 돼야 한다. 인허가, 인력 채용, 판로 개척, 대·중소기업 연계, 테스트 실증 기회 확보처럼 기업이 부딪히는 문제는 지역 기관이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인시산업진흥원은 이 '마지막 1마일'을 채우기 위한 지원 체계를 구축해왔다. 2022년부터 반도체 소부장 기업 R&D를 지원해 4년간 16개사의 제품 고도화와 성능 개선을 이끌었고, 올해는 한국기계연구원(KIMM)과 손잡고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분야 기술 이전과 실증 지원에 나선다. 기업이 가장 어려워하는 검증 실적 확보 문제를 국책 연구기관 협력으로 풀어가려는 시도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운영 중인 'YPA-ETRI 시스템반도체 오픈랩'도 주목할 만하다. 고비용 EDA 설계 도구를 중소 팹리스 기업이 공동 활용할 수 있게 해 기업당 연간 약 7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ETRI 전문가와 기업 맞춤형 R&D 과제를 기획하고 정부 공모사업 진입을 돕는 과제 기획 서비스도 병행한다.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대·중소기업 오픈이노베이션 연계, 소부장 기술보호 컨설팅까지 더하면 전 주기 생태계 지원 체계가 된다. 지난해부터 운영 중인 '반도체 사업기획단'은 지역 기업과 학계, 연구기관 전문가들이 현장의 기술 수요를 발굴하고 이를 실제 지원 사업으로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추진하는 품목 지정형 R&D 과제도 이 기획단 논의에서 도출됐다.

용인시가 진정한 '반도체 도시'로 거듭나려면 팹의 규모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공장 건설 속도를 넘어, 그 공장을 지탱할 소부장 생태계 투자다. 결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현장의 중소기업과 이를 연결하는 건강한 산업 생태계 위에서 완성될 것이다.

김홍동 용인시산업진흥원장 hdkim@yp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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