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우리나라 디지털 금융의 미래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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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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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디지털 자산 시장은 혼란을 넘어 불확실성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을 발판 삼아 2단계 입법에서는 산업 발전과 활성화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정작 그 논의는 표류하고 있다. 특히 2단계 입법의 원래 의제 어디에도 없던 내용이 2025년 말 금융당국의 내부 보고 문서를 통해 갑작스럽게 정책 의제로 부상하면서 시장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 이에 따른 업계 반발은 물론 최근에는 많은 학계와 전문가들도 금융당국 입장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금융당국이 내세운 두 가지 독소 조항이다. 첫째는 거래소 대주주 지분 상한을 일률적으로 정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에 있어 기존 은행권이 과반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다.

금융당국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신규 규제 아이디어에 대한 명분으로 '독과점 고착화 방지' '사익 편취 차단' 그리고 '시스템 리스크 방지'를 내세운다. 물론 정책적 목적 자체는 타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의 정당성이다. 과연 소급적 소유지분 제한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이 목적 달성을 위한 유일하고 효율적인 길인가?

지분 제한이 유효한 수단이 되려면, 현재 특정 거래소의 점유율이 높은 이유가 오로지 그들의 '소유 구조' 때문이라는 명확한 인과관계의 증명이 선행돼야 한다. 즉, 각 거래소 지분구조와 거래소 점유율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그럴까? 현재의 과점 형태는 기술적 편의성, 유동성 집중, 네트워크 효과 등 시장 선택에 의한 결과에 가깝다. 소유 구조를 강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시장 점유율이 분산될 것이라는 주장은 경제학적 근거가 박약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진정소급입법'에 따른 위헌 소지다. 이미 형성된 재산권을 사후적 규제로 강제 매각하게 하는 것은 우리 헌법상 재산권 보장 원칙과 신뢰 보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헌법학자와 법률 전문가들이 이 점을 우려하며 위헌 소지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는 비단 가상자산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 민간 기업 지분 구조에 개입해 강제 매각을 명령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김으로써 한국 시장 전체의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리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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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율 및 시장 점유율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은행권 과반 지분(50%+1주) 강제안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당국은 이른바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 리스크를 막기 위해 은행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의미가 있으려면 은행이 과반 지분을 보유하는 것이 런 리스크를 낮춘다는 메커니즘이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런 리스크의 본질은 지분 구조가 아니라 '준비 자산의 투명성'과 '유동성 불일치'에서 기인한다.

은행이 대주주라고 해서 리스크가 자동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과거 저축은행 사태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사례가 증명한다. 준비 자산이 불투명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은행이 대주주이든 아니든 대량 인출 사태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료화된 은행권의 과반 지분 점유는 의사결정 속도를 늦추고 기술 혁신 동력을 저해해 스테이블코인이 지닌 본연의 효율성만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트렌드를 봐도 우리 당국 행보는 고립됐다. 미카(MiCA:Markets in Crypto Assets Regulation)를 도입한 유럽연합(EU)이나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한 미국 등 디지털 자산 선진국 어디에서도 특정 민간 기업 지분을 강제로 매각하거나 은행에 지분 과반을 몰아주는 규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소유 구조가 아닌 '행위'와 '공시'를 규제한다. 자본 출처를 투명하게 하고, 준비 자산을 엄격히 관리하며, 실시간 온체인 감시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왜 검증되지 않은 '갈라파고스 규제'를 고집하며 스스로 손발을 묶으려 하는가.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부작용을 막을 수단은 이미 충분하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책무구조도 도입, 금가분리 원칙의 합리적 적용, 그리고 투명한 공시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 여기에 실시간 온체인(On-chain) 분석 기술인 레그테크(RegTech)를 결합한다면, 과거의 낡은 지분 규제보다 훨씬 정교하고 강력한 감독이 가능하다.

정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통한 통화 주권 수호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시장 싹을 자르는 규제가 선행된다면, 원화 기반 디지털 금융 생태계는 태동하기도 전에 고사할 것이다. 과연 이런 환경에서 누가 창의적인 창업을 꿈꾸고, 어떤 글로벌 자본이 한국에 투자하겠는가.

디지털 금융 패권은 이제 단순한 자산의 영역을 넘어 시스템 재편으로 직결되고 있다.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결제망에 편입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 세계 금융 결제망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고도의 국가 전략이다. 우리 정부 역시 이제는 '금지'와 '제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의 규제 만능주의가 대한민국 금융의 미래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니라, 글로벌 표준에 발맞춘 '자신감 있는 개방'으로의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shpark@kinternet.org

〈필자〉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에서 법학 석사, 가톨릭대에서 조직상담학 석사를 취득했다. 네이버에서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컴투스, 게임빌 법무총괄 이사로 지냈다. 2018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규제심사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규제 완화, 글로벌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 억제, 인터넷 플랫폼 활성화 도모 등 국내 인터넷산업의 선순환 생태계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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