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과 광주의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회적 숙의를 거쳐 마련된 이번 특별법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을 넘어 지역의 경제 구조와 산업 지형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남과 광주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이번 결정은 지역의 잠재력을 결집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특별법 통과는 출발에 불과하다. 전남광주특별시의 성공 여부는 행정 통합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어떤 산업 전략을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행정통합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정 효율성 제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 경제의 새로운 도약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광역 협력이 만든 도시 부활, '맨체스터의 교훈'
행정통합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는 해외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영국 맨체스터는 제조업 쇠퇴로 도시 경쟁력이 약화되자 주변 도시들과의 협력을 통해 광역 경제권을 구축하며 재도약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맨체스터·솔퍼드·볼턴 등 10개 지방정부는 2011년 '광역맨체스터연합기구(GMCA)'를 출범시켜 미디어·신소재·생명과학 등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 전환과 함께 고질적인 인구 유출 문제도 해결해 영국 북부를 대표하는 경제 중심 도시로 재도약했다. 이는 개별 도시 경쟁을 넘어 광역권 단위의 협력 거버넌스가 지역 산업 부흥과 도시 경쟁력 회복의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남·광주 산업 기반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전남광주특별시의 산업 전략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지역의 산업기반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남은 석유화학, 철강, 조선과 같은 국가 기간산업이 집적된 대표적인 산업 거점이다. 이러한 산업들은 오랜 기간 국가 경제와 지역 경제를 동시에 지탱해 온 핵심 축이었다. 또한 이차전지 소재산업과 반도체, 우주항공, 에너지산업 등 미래신산업 분야에서도 기반을 확장하고 있으며,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대규모 산업단지, 항만 인프라는 전남이 에너지산업과 첨단소재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다.
광주는 자동차산업과 광(光)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 기반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산업은 지역 제조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광산업은 광통신과 센서, 정밀 부품 등 다양한 첨단산업으로 확장 가능한 기반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AI 기반 산업 도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 구조는 전남의 에너지·산업 인프라와 결합할 경우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창출과 산업간 시너지 확대 가능성을 보여준다.
산업환경 변화·정부정책 기반 산업전략 수립 필요
하지만 지역산업 전략을 설계할 때는 지역 내부의 산업구조뿐 아니라 국내외 산업 환경 변화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근 산업 환경의 가장 큰 특징은 AI 대전환(AX)의 확산과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다.
AI는 더 이상 특정 정보기술(IT) 산업에 국한된 기술이 아니라 제조·에너지·물류·의료 등 산업 전반의 생산방식을 변화시키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 간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자동차는 배터리·반도체·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종합기술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 역시 전력과 에너지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핵심 산업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 산업 역시 기존의 단일 산업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산업 간 연결과 융합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함을 시사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 또한 중요한 고려 요소다. 정부는 AI 확산과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첨단 전략산업 육성,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을 핵심 산업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전국을 '5극 3특'권역으로 구분하고 권역별 특화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 환경과 정부정책을 고려할 때 전남광주특별시는 분명한 산업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재생에너지·미래 모빌리티·반도체 산업 육성 필요
전남광주특별시의 새로운 성장동력인 미래신산업으로 재생에너지·미래 모빌리티·반도체산업을 선제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먼저 재생에너지 산업을 세계적 에너지 전환 거점으로 육성해야 한다. 전남은 국내 최대 해상풍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신안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비롯해 대규모 재생에너지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나주 혁신도시의 에너지 공기업과 광주의 연구개발 역량을 결합한다면 발전과 전력망, 에너지 데이터까지 아우르는 통합 에너지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특히 AI 기반 전력망 관리와 에너지 데이터 산업을 연계한다면 글로벌 에너지 전환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남부권 제조 혁신의 핵심 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광주는 자동차 산업 기반과 친환경차 생산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남은 넓은 산업 부지와 다양한 실증 환경을 갖추고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과 실증, 생산을 연결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AI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모빌리티 플랫폼 개발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반도체 산업도 지역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 반도체는 미래 산업의 핵심 기반기술이며, 전력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첨단 패키징 분야는 전남·광주의 산업 구조와도 높은 연관성을 갖는다.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산업 확대에 따라 전력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소재·부품·설계 중심의 특화 반도체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첨단 패키징 분야는 최근 반도체 선폭이 5나노미터(㎚) 이하 수준에 진입하면서 미세화 한계에 직면하고 있으며, AI반도체 초고성능 충족을 위한 후공정(패키징) 단계에서의 성능개선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AI 기술을 접목해 반도체 설계와 공정 혁신을 추진한다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력산업 고도화·R&D 역량 강화 필수
전남과 광주의 기존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고도화하는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석유화학·철강·조선·자동차 등은 여전히 지역 경제의 핵심 산업이다. 이러한 산업에 AI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제조 AX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 부흥을 위해 R&D 역량 강화와 우수인재 양성이 필수적으로 수반되돼야 한다. 현재 전남과 광주의 국가 R&D 확보 규모는 수도권과 대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광주는 대학과 연구기관이 집적된 연구개발 거점인 반면, 전남은 산업 기반과 실증 환경이 강점이다.
통합특별시는 이러한 특성을 결합해 광주는 R&D 중심 기능을 담당하고 전남은 산업 실증과 생산 기반을 담당하는 초광역 혁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글로컬30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프로그램을 통한 지식기반 중심의 우수인재를 양성해 광주에서 배출된 우수인재가 전남지역 기업에서 성장하고 다시 지역 산업 혁신을 이끄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산업-인재 연계 경제권'을 구축해야 한다.

산업정책 이끌 통합 컨트롤타워 필요
이와 함께 행정통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통합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산업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통합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기업지원, 투자유치, 산업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실질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거점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중심에 있는 테크노파크의 기능과 역할을 한층 확대할 필요가 있다.
400만 남부권 경제권 시대를 향해
특별법 통과로 마련된 제도적 기반 위에서 이제 필요한 것은 실행력 있는 산업 전략이다. 전남광주특별시가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신산업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성장한다면, 이번 행정통합은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기업 투자가 확대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며 청년이 지역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때, 자연스럽게 인구 유출을 막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산업과 인구의 선순환 속에서 400만 남부권 경제권의 시대를 여는 것, 그것이 전남광주특별시가 지향해야 할 미래다.
행정통합의 진정한 의미는 행정의 결합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을 연결하고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하는 데 있다. 전남광주특별시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이제 그 시험대가 시작되고 있다.
오익현 전남테크노파크 원장 ihoh@jntp.or.kr
순천=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