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의 대규모 현지투자 계획 발표는 미 트럼프 정부에 주는 선물이면서, 글로벌 모빌리티기업으로 나가기 위한 기업가의 전략까지 담겼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도 투자 계획과 비전 제시에 거침이 없고, 방향은 또렷했다는 평가다.
오는 2028년까지 4년간 총 210억 달러(약 31조원)를 쏟아붓기로 한 금액이 언뜻 커보일 수 있다. 또 곱지 않은 시선으로 우리나라에 투자할 돈이 미국으로 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투자 결정은 현대차그룹으로선 더이상 시간을 끌 수 없는 막바지에 내려졌다. 투자 발표 무대를 백악관으로 조율하면서 트럼프 관세 전략에 힘을 실어주면서, 현대차그룹으로선 실리를 얻는 담판으로 읽힌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미국 수출물량은 약 97만대(현대차 61만대·기아 35만7000대)로 이를 기준으로 10%만 자동차 관세로 부과될 경우 4조원 안팎이, 25% 전부 매겨진다면 8~10조원의 영업이익을 매년 고스란히 내놓아야할 판이다. 투자기간으로 잡은 4년으로 따지면 투자액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할 것을 투자로 돌려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전체 수출 물량의 50% 가량을 소화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 직접 투자해 소비도, 사업도 키우는 방향을 택했다.
세부 투자 계획에서 당장의 세금회피 보다는 장기적인 공급망 확보, 미래기술 협력에 힘을 실어야할 것이다. 아예 자동차용 철강 제품을 현지 설립하는 현대제철 전기로에서 생산해 쓰겠다는 전략이나, 기술경쟁이 치열한 자율주행차나 로봇 현지법인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 확장과 협력에 뭉칫돈을 쏟아붓기로 한 것 등은 합리적인 대응으로 보인다.
의례히 대규모 투자결정 뒤에 해당 기업의 주가는 맥을 못출때가 많다. 하지만, 현대차 주가는 25일 코스피시장의 전반적인 약세 속에서도 상승세를 기록했다. 그만큼, 주주들은 이번 미국 투자결정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미국 정부 공세에 밀려 시간도, 기회도 다 잃고 마지못해 하는 투자 결정은 동력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주도적으로 필요한 투자에 과감하게 나서고, 명분과 실리까지 함께 얻는 전략이 나을 수 있다.
현대차의 이번 투자 결정이 정확한 해법이었는 지는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뒤 판단받게 될 것이다. 다면 유사한 상황에 놓은 우리 기업들에게는 충분히 참고할 만한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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