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관세폭탄]트럼피즘 2.0…기업은 행정부 스킨십 강화·시나리오 대응 '골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멕시코·캐나다에 25% 폭탄 관세를 부과할 계획을 밝히자 현지 공장에 투자한 국내 기업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보복 관세를, 중국은 수출통제를 강조하며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 일단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직 관세 부과나 보조금 축소 방침이 확정된 게 아닌 만큼 기업은 우리 정부의 대응 방향을 기다리고 있다”며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들 '트럼프 핫라인' 정비

주요 대기업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해 굵직한 현지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영입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협상과 별개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 움직임을 빨리 포착하고 한국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정책에 선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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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성 김 현대차 사장, 조 헤이긴 LG 워싱턴 공동사무소장, 삼성전자 마크 리퍼트 북미총괄 대외협력팀장 부사장

현대차는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인 성 김 고문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그룹 싱크탱크로 전진 배치했다. 부시·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에서 요직을 맡아 경험이 풍부하고 국제 정세에 정통해 글로벌 통상·정책 변화에 긴밀한 대응 전략을 짤 핵심 인물이다.

LG그룹은 최근 트럼프 1기 당시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역임한 조 헤이긴을 워싱턴사무소 공동사무소장으로 2022년 영입했다. LG그룹의 워싱턴사무소는 LG 각 계열사의 북미 대관 담당자들이 집결한 핵심 사무소다.

헤이긴 소장은 트럼프 1기 시절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한 인물로 잘 알려졋다. 백악관에서 4명의 대통령과 일한 경험을 토대로 LG그룹의 글로벌 통상·대응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됐다.

삼성은 지난 2022년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를 북미총괄 대외협력팀장 부사장으로 영입한 후 현지 대관업무를 지휘했다. 리퍼트 부사장이 오바마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만큼 추후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트럼프 행정부 대응력을 재정비할 가능성도 나온다.

◇전자·자동차 업계, 멕시코 관세 타격 불가피

자동차 업계는 트럼프의 관세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대미 수출 거점으로 멕시코를 선택한 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기아는 멕시코에서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에 자리한 기아 몬테레이 공장은 연간 40만대 생산 능력을 보유했다. 지난해 이곳에서 생산한 25만대 가운데 15만대 이상을 미국에 수출했다.

부품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도 몬테레이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다만 부품이 아닌 완성차에 관세가 부과돼 당장 부품사 여파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차는 트럼프 집권 후 불확실한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이자 대표이사로 호세 무뇨스 사장을 선임했다.

무뇨스 사장은 트럼프 관세 정책에 대해 “생산·공급 측면에서 현지 투자를 늘리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멕시코에서 가전을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관세 리스크에 노출됐다. 멕시코 가전 공장은 미국·유럽 시장에 중대형 가전을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생산기지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티후아나(SAMEX)에서 TV를, 케레타로 공장에서 냉장고와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태국에서 생산하는 오븐 물량 일부를 티후아나로 이전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

LG전자는 멕시코 레이노사에서 TV를, 몬테레이에서 냉장고와 오븐 등 생활가전을 생산한다.

멕시코는 북미 자동차와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국내 기업들의 전장부품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LG전자 VS(전장)사업부는 전장부품을 라모스에서 생산하고 있다.

멕시코에 전장용 카메라 모듈 생산 공장을 건설할 예정인 삼성전기는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멕시코 법인 설립에도 아직 착공은 시작하지 않았다. 시황과 관세 정책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멕시코에 공장을 운영 중인 LG이노텍 역시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부품·철강·반도체 '주시'

멕시코에서 사업을 구상 중이던 소재·부품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분리막 제조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멕시코 공장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리막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배터리 부품으로 지정돼 북미에서 제조·조립이 이뤄져야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캐나다·멕시코 등에 생산 거점 구축을 추진해왔다.

업계에 따르면 SKIET는 인건비 측면에서 이점이 있는 멕시코 몬테레이를 유력 후보지로 검토했으나, 트럼프 당선 이후 재검토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IRA 폐지에 이어 멕시코 고관세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멕시코 사업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기업들도 메모리가 영향권 안에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에 생산시설을 투자하고 있으나 D램과 낸드플래시는 모두 미국 밖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미국 기존(오스틴), 신규(테일러) 생산라인은 모두 파운리드다. SK하이닉스가 인디애나주에 투자하는 생산라인도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위한 후공정 첨단 패키징 공장이다.

철강업계 역시 보편관세가 적용되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멕시코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포스코는 긴장하고 있다. 포스코는 현재 멕시코에 용융아연도금강판 생산공장과 코일가공센터, 선재가공센터를 운영 중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멕시코 현지 최종 고객사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직접적 영향은 미미하다”면서도 “단 이 조치가 현실화도면 멕시코를 생산기점으로 한 제조업사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어 함께 면밀히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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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기업의 멕시코 생산기지 현황 (자료=각사 취합) - 국내 주요 기업의 멕시코 생산기지 현황 (자료=각사 취합)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 조성우 기자 good_sw@etnews.com,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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