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AI 시대의 퍼블리시티권 도입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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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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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왔다. 디지털 문화콘텐츠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이야기를 입력하면 거기에 맞는 그림을 그려내 뚝딱 웹툰 한 편을 완성해 내고, 기존 영상이나 이미지를 학습해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영화제에서는 AI 영화 부문을 신설하기도 했다. 한편, 방송 및 광고 현장에서는 배우나 가수의 과거 모습을 되살리거나 유명인의 음성을 분리·추출 및 학습해 영상에 사용하는 등 제작 과정에서 생성형 AI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AI 기술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완성도 있는 영상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다른 영상에 입혀 대상화하는 딥페이크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사람의 얼굴, 음성, 성명 등을 상업적 목적 등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인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그간에도 연예인의 얼굴을 허락 없이 광고에 사용하거나, 상품 판매를 위해 유명인의 초상권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등 다양한 문제가 있어 왔다. 이에 정부는 2021년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을 통해 유명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을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이용하는 행위들을 제재하는, 즉 사후 규제 형식의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기술 악용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한 바 있다. 이 개정안에는 성폭력처벌법에 따른 편집물, 합성물, 가공물 등과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른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대해서는 피해 당사자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외에 수사기관의 장도 해당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올해 6월 '대중문화예술인(가수·배우) 표준전속계약서'를 개정해 문화예술인이 계약 시 '퍼블리시티권' 관련 내용을 포함하도록 하여 권리의 귀속을 명확히 한 바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최근 급격하게 이뤄진 AI 기술의 일상화로 유명인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포함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퍼블리시티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즉, 유명인의 퍼블리시티권 위반이나 기술 악용에 대한 사후 처벌을 넘어, 모든 개인의 초상, 음성 등을 합법적으로 이용하고자 할 때 그 정당한 방법의 설정과 활용을 아우르는 규범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다른 나라는 최근 기술 변화에 맞춰 개인의 초상과 음성 이용에 관한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법안 마련에 한창이다. 일찍이 할리우드가 자리 잡은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미국의 19개 주(州)에서는 주법으로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 연방 정부 저작권청은 올해 7월 '개인의 외모, 음성 등에 대한 디지털 복제 쟁점 보고서'를 발간하며, 미국 전역에 적용될 연방법 제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제안한 법안에는 모든 자연인의 얼굴과 음성 등을 실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디지털 복제할 경우 자연인의 권리 보호, 권리 침해행위에 대한 규제, 이용허락 방법, 피해 발생 시 구제 방법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도 주법으로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고 있으며, 일본도 지난해 서울저작권포럼에 참석해 AI 커버곡과 관련해 가수의 목소리 등 권리 보호 방안에 대해 검토 중임을 밝혔다.

또, 미국 영상산업계를 대표하는 영화·TV제작자 연맹(AMPTP)과 배우·방송인조합(SAG-AFTRA)은 지난해 11월, 배우나 아나운서 등의 이미지와 목소리를 AI 기술로 재현해 지속적으로 사용할 경우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고, 그로 인한 배우나 성우의 수익 감소에 대해 직접 출연 시 받을 수 있었던 만큼의 금전적 보전을 하도록 합의한 바 있다. AI 기술로 초상 등을 활용할 경우 이용 허락을 의무화함과 동시에 문화예술인의 일자리 감소와 대체효과까지 고려한 매우 혁신적 제도라고 하겠다.

우리나라도 급속히 성장하는 디지털 산업과 문화산업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이제 퍼블리시티권의 적법한 활용으로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일반인의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는 제도 도입을 준비할 때다.

문체부는 퍼블리시티권 보호와 이용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누구든지 본인의 초상, 음성, 성명을 이용하거나 디지털 방식으로 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타인이 본인 허락없이 무단으로 이러한 특질 등을 사용해 배포하거나 발행 혹은 공연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이를 침해 행위로 보고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컴퓨터나 전자적 방식을 통해 사람의 얼굴, 음성, 성명 등을 이용해 만들어낸 가상 콘텐츠는 비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함으로써 비상업적 목적으로 타인의 얼굴이나 음성을 무단 활용하는 권리 침해에도 대응하고자 한다. 이러한 내용 외에 더 중요한 것은 퍼블리시티권을 바람직하게 행사하기 위한 요건이나 절차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퍼블리시티권은 저작권과 닮아있다. 저작권은 인간의 창작물을 대상으로 하고 퍼블리시티권은 개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특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사용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점, 일정 요건을 갖춘 단체에게 관리를 맡길 수 있다는 점, 콘텐츠 유통 과정에서 그 침해 여부를 살펴 보호하고 피해를 구제하는 방식 등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따라서 기존의 저작권 관리와 보호 체계를 활용한다면 더욱 쉽게 도입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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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등장한 인물 비율 (출처:시큐리티히어로 '2023 딥페이크 현황 보고서')

퍼블리시티권 보호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가 가장 큰 영역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등 유명인이다. 미국 보안서비스업체가 올여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딥페이크 성 착취물에 등장한 인물의 53%가 한국 국적이고, 가장 큰 피해를 본 개인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 가수라고 한다. 대한민국 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만큼 범죄에도 취약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대중예술인이 안전한 법적 기반 아래 활동하고, 일반인의 얼굴이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사용되는 피해를 막아야 한다.

퍼블리시티권법 제정은 다른 사람의 얼굴, 음성 등을 합법적으로 허락받아 사용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안정적인 법 기반 아래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는 바탕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며, 나아가 산업 전반에 걸쳐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필자〉중앙대에서 연극영화학과 학사·연극영화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 연극 '오셀로'로 데뷔했고, 1974년 MBC 공채 탤런트 6기로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했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김회장 댁 둘째 아들 용식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돼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약 3년간 재직했다. 퇴임 이후 대통령 문화특별보좌관,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연극 무대로 돌아와 배우로 활동했다. 지난해 10월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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