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재방료, 제작 생태계 선순환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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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디지털미래연구소 대표·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K콘텐츠는 이제 한국산업 대표 브랜드가 됐다. 드라마, 예능, 다큐는 국내 방송 편성을 넘어 OTT, IPTV, VoD, 케이블 재편성, 해외 플랫폼에서 소비된다. 방영된 프로그램은 재편성되고, 클립으로 재가공되며, 해외 시장에서 수익을 만든다. 콘텐츠 생애주기는 길어졌고 2차 이용 시장은 커졌다. 그러나 정작 콘텐츠를 기획하고 현장을 조직한 제작사에는 반복 이용 과실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현재 방송 제작시장의 위기는 콘텐츠가 팔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콘텐츠는 판매되고, 재판매되고, 계속 소비된다. 문제는 그 수익이 제작 현장으로 환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송산업에 사후 이용 보상 개념이 없지는 않다. 작가와 출연자는 일정한 재방료를 받는다. 그런데 제작사는 그 구조에서 빠져 있다. 프로그램의 기획, 구성, 섭외, 촬영, 편집, 후반작업, 납기와 품질 관리를 맡는 주체가 제작사인데, 최초 납품 이후 재방송과 2차 이용 수익에서는 사실상 배제된다.

이는 어느 한 직군의 몫을 더 달라는 문제가 아니다. 동일한 창작물에서 작가와 출연자는 사후 이용 보상을 받는데, 이를 산업적 결과물로 완성한 제작사는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가 과연 공정한가의 문제다. 방송영상 콘텐츠는 한 사람의 재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가의 대본, 출연자의 실연, 연출자의 판단, 제작사의 초기자본 조달과 조직 운영, 스태프의 노동이 결합된 복합 창작물이다. 그렇다면 반복 이용 수익도 기여 구조에 맞게 배분돼야 한다.

저작권 체계에서도 제작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저작인접권은 저작물의 전달과 이용 과정에 기여하는 실연자, 음반제작자, 방송사업자 등을 보호한다. 실연자는 보호받고, 방송을 송출한 방송사업자도 보호받는다. 그러나 방송영상 저작물을 실제로 기획하고 제작하는 제작사는 충분한 권리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콘텐츠의 성패에 큰 책임을 지는 조직적 주체가 법과 관행의 경계에서 빠져 있는 셈이다.

이 불균형은 제작시장의 지속가능성을 흔든다. 제작사는 매번 인력을 확보하고, 장비와 장소를 섭외하며, 제작비를 선투입하고, 편성 일정과 품질 책임을 진다. 그러나 납품 이후 수익이 차단되면 흥행이 다음 작품의 투자 여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콘텐츠가 아무리 성공해도 제작사가 가져가는 것은 수익도 보장되지 않는 계약서상 적힌 제작비뿐이다. 콘텐츠의 성공과 수익성이 비례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중소 제작사가 장기적인 IP를 개발하거나 우수 인력을 붙잡기 어렵다.

최근 제작 현장의 인력 이탈과 제작 위축은 일시적 불황이 아니다. 제작비는 오르고, 방송사와 플랫폼의 요구 수준은 높아졌지만, 제작사가 확보할 안정적 수익 기반은 약하다. 일부 대형 제작사와 스타 창작자는 글로벌 자본과 연결되지만, 산업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 제작사는 제작할수록 위험이 커지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K콘텐츠의 기반은 얇아진다. 흥행작이 세계적 관심을 받아도 그 뒤를 받칠 제작 생태계가 무너지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재방료의 제작사 배분은 이 문제를 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는 정부 보조금이나 시혜성 지원이 아니다. 콘텐츠가 반복 이용되며 만들어낸 수익 일부를 제작 현장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그 재원은 차기작 개발, 신인 작가와 PD 발굴, 스태프 고용 안정, 후반제작 품질 개선, 새로운 포맷 실험에 쓰일 수 있다. 재방료는 제작사의 추가 이익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의 재투자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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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선순환 생태계 구축 방안 (자료=생성형 인공지능 이미지)

방송사와 플랫폼의 역할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방송사는 편성, 홍보, 유통, 브랜드 형성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플랫폼도 콘텐츠 접근성을 높이고 시장을 확장한다. 그러나 콘텐츠 가치의 원천이 제작 현장에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유통 권한을 가진 사업자에게 사후 수익이 집중되고, 제작사는 최초 제작비로만 보상받는 구조는 선형 방송 시대의 관행이다. 콘텐츠가 장기간, 다중 플랫폼에서 수익을 내는 현재 시장에는 맞지 않는다.

해외 주요 콘텐츠 시장은 이미 반복 이용 보상의 중요성을 인정해 왔다. 콘텐츠가 재방송되거나 2차 이용될 때 창작과 제작에 기여한 주체에게 일정한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마련해 왔다. 이는 권리자 보호가 아니라 주요 산업 유지 장치다. 창작자가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산업이 성장하고, 제작사가 버틸 수 있어야 플랫폼도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 재방료를 작가와 출연자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제작 생태계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 제작사에게 합리적인 재방료가 배분돼야 다음 작품에 투자할 수 있고, 안정적인 고용과 제작 품질도 가능해진다. 방송사, 플랫폼, 작가, 출연자, 제작사가 모두 살아야 산업도 산다. 상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적으로는 먼저 방송 콘텐츠의 재방송과 2차 이용 실태, 수익 흐름, 제작사 배분 현황을 투명하게 조사해야 한다. 이어 방송사와 제작사, 작가, 실연자 단체가 참여하는 협의 구조를 통해 이용 유형별 합리적 배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재방송, VoD, 방송재편성, 해외 판매, 온라인 클립 이용 등 수익 발생 구조가 다른 만큼 세밀한 기준이 필요하다. 특히 중소 제작사에는 최소한의 배분 원칙이 보장돼야 한다.

K콘텐츠의 미래는 더 많은 플랫폼 진출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처음 상상하고, 현장에서 구현하고, 완성품으로 책임지는 제작 기반이 살아 있는가이다. 제작사가 살아야 작가도, 출연자도, 스태프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 제작사가 다음 작품을 준비할 수 있어야 방송사와 플랫폼도 새로운 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있다.

재방료를 제작사에도 합리적으로 배분하자는 요구는 산업의 과실을 나누자는 주장인 동시에, 다음 콘텐츠를 만들 기반을 지키자는 제안이다. 반복 이용 수익이 유통 단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작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K콘텐츠의 성공은 일회성 흥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산업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권오상 디지털미래연구소 대표·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osang.kweon@dfi.re.kr

〈필자〉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American University Washington College of Law에서 LL.M. 과정을 마치고, 연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체류 중에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Legal Intern으로 근무하며 방송·통신 규제와 정책 실무를 경험했다. 이후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공공기관에서 ICT.미디어 정책 및 관련 사업 전반에 걸쳐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이자 디지털미래연구소 대표로서 디지털, AI, 모빌리티 등 미래 의제와 방송·통신·미디어·ICT 분야의 정부 정책 연구 및 기업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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