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유럽식 규제 부작용 커…기존 법 보완이 경쟁력 제고 지름길

EU, GDPR 도입 이래로
美 구글·페북 의존도 커져
佛·獨 규제 철폐 목소리↑
생성형 AI 시장 빠르게 변화
한 번 뒤처지면 추격 어려워
다양한 산업 광범위하게 영향
다차원적 관계 분석 선행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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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생성형 AI 웹서비스 톱20

#인공지능(AI) 기술 패권을 두고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대항전이 치열하다. 정부는 AI가 반도체 같은 하드웨어(HW)는 물론 소프트웨어(SW) 측면에서 새로운 '산업의 쌀'이 될 것으로 판단,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 출범을 준비 중이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뛰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생성형 AI 등장 후 신뢰성, 투명성, 안전성 확보와 함께 딥페이크 등으로 인해 인격권 침해와 저작관 논란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시장의 자정기능만으로는 부작용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 AI 관련 법적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 또한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알고리즘 조작 등 AI 기반 기업의 반칙행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EU식 규제가 국내 도입된다면 미래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AI분야 투자가 막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생성형 AI를 둘러싼 경쟁은 기업의 규모와 무관한게 치열하다. 지난 3월 미국 벤처캐피털(VC)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가 공개한 생성형 AI 웹서비스 상위 50위 중 새로 이름을 올린 생성형 AI 기업은 22개사로 44%에 달했다. 이들은 작년 9월 첫 순위 명단에는 없던 기업이다. 지난 8월에는 3월에 이어 챗GPT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상위 20위에 수노, 루마AI, 캔디AI, 요다요 등 4개사가 신규 진입했다. 그만큼 관련 분야 기업 변화가 빠르다는 얘기다.

인공지능(AI) 검색 엔진을 제공하는 국내 스타트업 라이너는 올해 3월 발표에서 생성형 AI 4위에 오른 후 지난달에는 9위를 차지하며 2회 연속 톱 10에 이름을 올렸다. 창업 초기 사용자들이 웹페이지에서 필요한 정보를 표시하고 저장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고 해당 서비스로 쌓은 데이터와 여러 모델들을 결합해 차별화된 AI서비스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반면, 최근 수년간 디지털 분야에 엄격한 규제를 이어온 EU에서는 미국 빅테크와 경쟁 구도에 있는 역내 AI 스타트업들이 경영난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EU가 2018년 5월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도입한 이래 지난 6년 동안 EU 웹사이트 운영 기업들이 소규모 공급 업체보다는 대규모 업체를 선호하는 현상이 굳어지면서다. 웹 기술 공급 시장에 새로운 규제가 생기며 경쟁을 저해했고, 결과적으로 시장지배적 기업인 미국 구글과 페이스북의 의존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GDPR로 인해 유럽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앱이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러면서 EU내에서도 국가별 규제 철폐 목소리가 커졌다. 프랑스는 자국의 미스트랄AI를 유럽 대표 거대언어모델(LLM)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AI 파운데이션 모델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반대했다. 독일도 알레프알파를 국가대표 AI 스타트업으로 지원하기위해 EU AI법 내 생성형 AI 기업의 자율적 규제를 주장했다. 지난 2월 합의된 EU AI법 최종안에는 기술 투명성과 기업 기밀간 균형을 맞추고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행정적 부담을 줄인다는 조건이 반영됐다. 구체적으로 자국 범용 AI 모델 기업에 대한 지원 의도를 바탕으로 저작권 관련 범용 AI 모델에 활용된 콘텐츠에 대한 충분한 요약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만 영업 비밀인 정보를 보호할 필요가 있음을 반영하고 컴퓨팅, 파워 임계값을 재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생성형 AI는 다양한 산업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차원적인 영향관계 분석 없이 경쟁정책을 수립하게 되면 생성형 AI 생태계의 역동성을 저하시켜 국가 산업경쟁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생성형 AI에 대한 규제가 스타트업에 의도치 않은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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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등 AI 기술은 산업의 혁신성장 동력으로 부상했지만 알고리즘 조작·담합 등 새로운 형태의 경쟁제한을 야기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소수 빅테크 기업의 반칙행위를 사전 예방하기 위한 'AI 경쟁정책' 마련에 나섰다. AI 시장 실태조사 결과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AI 정책보고서'를 연내 발간한다. 권오승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공정위 주최 학술대회에서 “최근 EU가 AI에 대한 법적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시장의 자정기능이나 기업의 자율규제만으로는 생성형 AI가 제기하는 부작용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법조계 일각에서는 EU를 제외한 주요 국가 대다수가 아직 규제에 방점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AI 산업 육성을 국정과제로 내건 우리나라의 경우 규제에 신중히 접근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정익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전 세계에서 3번째로 시작했던 한국의 LLM 등 AI 기술은 현재 논문수나 연구자수에서 세계 10~11위 정도에 겨우 머물고 있다. 기술은 한 번 뒤쳐지면 따라잡기 힘들고 AI 기술은 더욱 그렇다”면서 “예측이 불가능하고 막대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EU식으로 섣불리 규제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정보보호법, 저작권법, 공정거래법 등 기존 관련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생성형 AI 관련 부작용은 어느 정도 규율할 수 있다”면서 “예상 범위를 벗어난 부작용이 있다면 기존 법을 개정해 미비점을 보완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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