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의 선두를 이끌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 자라(ZARA)는, 신제품 실패율이 1% 미만으로 평균 17~20%인 패션업계의 신제품 실패율과 비교했을 때 놀라운 수치를 보이고 있다. 자라는 매주 2번씩 신제품을 선보이고, 단 2~3주 안에 재단, 포장, 출하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제품을 전 세계 매장으로 직송한다. 빠른 속도로 제품을 생산·관리하는데도 이러한 놀라운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자라의 전략은 무엇일까?
다른 패션 업체들이 스타 디자이너와 브랜드 충성도에 의존해 '흥행 사업'을 하는 것과 달리, 자라는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니즈를 신속하게 파악·반영하도록 사업을 재편했다. 제품 특성별로 판매 데이터를 매일 분석해 분석결과를 디자인, 주문, 생산 및 재고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자라의 사업전략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시장 환경의 변화와 불확실성에 탄력적으로 대응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자라의 성공방정식을 연구개발(R&D)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전체 R&D 투자금액은 GDP의 5%로 100조원이 넘는 수준이며 정부 R&D 예산은 한해 30조원에 달하지만, R&D 투자 금액대비 효율성이 낮고 연구 성과의 질적 수준이 저조하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 R&D의 98%가 '성공' 판정을 받지만, 정작 사업화 성공률은 50% 이하로 연구 성과가 실제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인 예산 확대 과정에서 발생한 R&D 비효율을 혁파하기 위해, R&D 분야에도 자라와 같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전략이 필요하다.
답은 바로 '특허 빅데이터'에 있다. 특허는 산업 발전을 위해 기술을 공개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독점적 권리로 모든 기술정보의 80%가 특허문헌으로 공개되고 있다. 전 세계 5.8억여건의 특허 빅데이터에는 글로벌 R&D 동향, 핵심인재, 산업 트렌드 등의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분석하면 주요 국가와 기업의 기술개발 동향을 파악할 수 있고, 특허기술로 선점된 영역과 공백 영역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특허의 정량적 정보와 기술전문가의 정성적 의견을 종합해 R&D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혁신기술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 특허청은 이미 특허정보 활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R&D 전 과정에서 특허 빅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R&D 기획단계에서는 유망 기술분야를 발굴하고 유사·중복 연구 여부를 판별하고 있으며, 과제 수행단계에서는 특허기반 연구개발(IP-R&D) 사업을 통해 장벽특허 회피, 핵심특허 확보 전략 등을 지원하고 있다.
특허청 발표에 따르면, 연구기획 단계에서 특허기술동향조사를 통해 중복투자 방지, R&D 방향 수정 등 최근 3년간 약 3000억원의 R&D 예산을 효율화했다. 또 지난 5년간 산학연에 IP-R&D를 지원한 결과 투입비용 대비 12배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등 우수한 경제성과를 거둔 것이 확인됐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특허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개발 전략은 시장성 높은 첨단기술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정부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연구개발 분야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전면 폐지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AI)·반도체·양자 등 주요 분야의 혁신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난 15년간 존속되어온 예타가 폐지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어, 신기술 개발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예산 낭비 방지를 위한 완충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발 빠른 연구개발 지원이 필요한 바로 지금, 예타의 빈자리를 대신해 효과가 검증된 특허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할 때다. R&D 예산 활용의 게임체인저가 될 특허 빅데이터의 활약을 기대한다.
정재용 KAIST 교수 jychou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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