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북한(공식 명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매체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조선노동당출판사, 만수대창작사,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제작했다는 선전화 6점을 공개했다.
이번 선전화에는 북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이 개발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발사 성공을 기념했다.
만리경-1호가 발사와 정상 궤도 진입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11월 22일(현지시간) 미국 우주군 소속 제18우주방위대와 국제우주공간연구위원회는 만리경-1호에 궤도에 정착한 위성만 받을 수 있는 위성번호 '58400'와 식별번호 '2023-179A'를 부여했다.
이어 조선중앙통신은 12월 1일부터 만리경-1호를 통해 정식 정찰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보도했다.
◇세 번 시도 끝에 발사 성공한 만리경-1호
북한의 위성 발사는 1998년 이래로 15년 동안 이어져 왔다. 그해 북한은 8월 31일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렸다고 밝혔다. 이를 시작으로 북한은 공식 발표하지 않은 것을 포함해 광명성 시리즈만 6번을 발사했지만, 모두 실패하거나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소멸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나마 2012년에 발사된 광명성 3호 2호기가 위성 궤도로 진입해 지상관제소와 교신하고 국제 위성 식별 ID(KMS 3-2)를 부여받았지만, 얼마 가지 않고 제 기능을 못 하게 됐으며 지난 9월 13일(미국 동부시간) '낙하 후 소멸' 상태로 나타났다.
2016년에 발사한 광명성 4호도 지난 7월에 낙하하고 소멸해, 만리경-1호 발사 전까지는 북한이 운영 중인 위성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발사한 만리경-1호도 사실은 세 번째다. 첫 번째 만리경-1호는 올해 5월에 발사했지만, 2단계 발동기의 오작동으로 서해에 추락했으며 북한도 실패를 시인했다. 두 번째 위성은 8월에 발사됐지만, 공중에서 폭발해 추진체와 위성 파편으로 쪼개져 인양에 실패했다.
◇궤도 진입은 '진실', 정상 작동은 '글쎄'
김덕수 한양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가 2021년에 설립한 인공위성 솔루션 스타트업 스페이스맵은 12월 4일, 만리경-1호가 돌고 있는 지구궤도를 추적하는 트래커 사이트를 열었다.
스페이스맵은 만리경-1호가 고도 499~519㎞에서 초당 7.61㎞를 이동하며, 지구를 도는 주기는 94.7분으로 분석했다. 이는 하루에 지구 15바퀴를 돌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해서 만리경-1호가 정상 작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찰위성의 성공 여부는 궤도 진입뿐만 아니라 지상 기지국과의 신호 송수신, 사진 및 영상자료 교신 등을 통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만리경-1호로 촬영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한, 발사의 성공 여부는 외부에서 알 수 없다. 또 북한의 자축과 선전포고와는 다르게, 전문가들은 해당 위성이 당장 군사 목적으로 활용할 수준이 아니라고 보았다.
만리경-1호는 1.3m, 무게 300㎏의 소형 위성으로 추정된다. 또 육각기둥 모양의 위성에는 접이식 태양전지판 4개가 붙어있다. 위성에 탑재된 카메라의 해상도는 1~5m 수준으로, 구형 디지털카메라에 가까우며 구글 위성사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 카메라 정찰위성의 해상도는 1m 이하여야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이 1976년에 쏘아 올린 정찰위성 KH(키홀)-11은 해상도가 13~45㎝이며, 1999년에 제작된 KH-12의 해상도도 15㎝급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가 올해 12월 2일 발사한 첫 군사정찰위성 1호기도 30㎝의 해상도를 보이고 전자광학(EO) 및 적외선(IR) 카메라까지 장착해, 만리경-1호보다 월등한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만리경-1호에 숨겨진 북한의 목적을 봐야
만리경-1호가 군사용으로 성능이 좋지 못한 점은 북한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발사 성공을 널리 알리려는 걸까? 전문가들은 대륙간탄도탄(ICBM) 즉, 핵 투발수단의 개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지적한다.
위성 발사나 대륙간탄도탄이나 관련 기술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2018년에 체결했던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폐기를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정찰위성의 목적은 핵 타격을 위한 표적을 선정하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확보한 정찰위성 영상을 바탕으로 타격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북한이 정찰위성 발사로 말미암아, ICBM 발사의 신뢰도를 높이려 한다고 진단했다.
로버트 피터스 헤리티지재단 핵억제 및 미사일 방어 연구원은 “정찰위성이든 핵탄두를 심은 미사일이든 전달 시스템 관점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동일한 기술이 필요하다”며 “북한의 ICBM 프로그램이 인공위성 발사를 가장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12월 9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만리경-1호가 필요한 경우 초강력 타격을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빠른 기간 안에 정찰위성들을 더 많이 궤도에 배치해 주요 지역의 군사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밝혔다.
신(新)냉전 사이에서 남북 우주 경쟁이 시작됐다. 한국은 고도의 외교 전략과 중장기적인 안보 과제를 점검하고 튼튼히 할 필요가 있다.
글:강지희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