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거나 물이 얼어붙는 현상은 자연계에서 매우 기본적이며 중요한 현상이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진행되는 이 현상을 포착하기는 매우 어렵다. 국내 연구팀이 가속기를 이용해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순간의 미스터리를 풀어냈다.
포스텍(POSTECH)은 김경환 화학과 교수·양철희 연구원 연구팀이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얼음이 녹는 과정에서 분자의 구조적 변화를 관찰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성과는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됐다.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면 접선방향으로 방사광이 나온다. 방사광가속기는 이 빛으로 물질의 미세한 구조를 분석하는 거대한 현미경이다. 연구팀이 사용한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3세대보다 1억배, 햇빛보다도 100경배 밝은 빛을 제공, 정밀하게 원자와 분자를 관찰할 수 있다.
연구팀은 적외선으로 얼음을 빠르게 가열하고,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강력한 X선을 산란시키는 방법으로 얼음이 녹는 과정을 분석했다. X선 산란법은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된 패턴을 분석, 분자 구조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연구팀은 X선 산란 패턴을 통해 얼음이 녹는 과정에서 시간에 따른 물의 온도 변화와 생성된 물의 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얼음이 녹는점 이상으로 가열된 상황에서도 모두 녹지 않고, 약 13% 정도만 녹는 ‘과가열(superheating)’ 현상도 관찰했다.
얼음이 녹아 생긴 물방울들의 크기와 개수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과정도 확인했다. 나노초(㎱) 단위에서는 인접한 물방울들이 하나로 합쳐져 물방울 크기가 증가하다가 마이크로초(㎲) 단위에서는 오히려 열 발산에 의한 냉각이 일어나 물방울이 얼어붙으면서 그 크기가 줄어들었다.
김경환 교수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얼음의 융해와 재결정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얼음과 물의 상태 변화 메커니즘과 구조적 역학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신진연구사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선도연구센터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