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마약으로 신을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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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콜리어의 ‘델포이의 여사제(1891)’. 태양의 신 아폴로를 섬기는 델포이 신전의 여사제 피티아는 땅의 갈라진 틈새에서 나오는 달콤한 연기를 흡입한 후 환각 상태에서 월계수 가지를 흔들며 신탁을 전했다고 한다. 출처=위키미디어

그리스 비밀 종교 엘레우시스 밀교는 1년에 한 번씩 종교의식으로 ‘엘레우시스 제전’을 개최했다. 이 제전은 열흘 동안 진행되는데, 9일은 여러 의식을 치르며 금식한다. 마지막 하루는 ‘키케온’이라는 술을 먹으며 영적 체험을 경험한다. 키케온에는 보리에서 자라는 균류이자, 환각제 LSD의 재료인 맥각이 들어간다. 키케온을 먹은 신도들은 ‘밤의 성스러운 환상’을 본 뒤 춤을 추며 거룩한 계시를 받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이비 종교’ 싶을 수도 있다. 엘레우시스 밀교는 기원전 1600년경부터 고대 그리스 도시 엘레우시스에서 대지와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를 섬기는 인기 종교였다. 또 유명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로마 초대 황제 카이사르까지 입교한 엘리트 종교다. 소크라테스는‘“이곳에서 정화 의식을 치른 사람들은 신과 함께 살 것’이라며 엘레우시스 밀교를 찬양했다.

마약을 종교의식에 사용한 건 엘레우시스 밀교뿐만이 아니다. 중국 도교 도사들은 종교 제의에 대마초를 사용해 미래를 점쳤다. 고대 멕시코 원주민들도 환각버섯을 ‘신의 고기’라 부르며, 신이나 죽은 자를 만난다는 목적으로 먹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마약 선인장 페이오트를 신과 연결고리라 믿으며 말려서 종교의식과 민간요법에 사용했다.

올해에도 스페인에서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종교의식을 목적으로 마약을 먹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엘리사 게라-도세 스페인 바야돌리드대 교수팀은 3000여년 전 청동기 시대 장례 공간으로 사용된 스페인 섬 메노르카 동굴에서 식물성 환각물질을 검출했다고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옛사람들이 환각제를 썼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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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이 동굴에서 발견한 청동기인의 머리카락. 출처=Science Reports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는 마약에 중독된 등장인물 이사라가 마약 전력을 숨기려고 머리와 눈썹을 탈색한다. 머리카락 3~4㎝만 잘라서 분석해도 최근 3개월 정도의 마약 전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도 머리카락에서 환각물질을 발견했다.

메노르카 동굴은 약 36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2,800년 전까지 장례 공간으로 사용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동굴에는 약 210명이 매장됐고, 발견한 머리카락은 약 30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머리카락은 일부 사람만 붉게 염색된 채 나무와 뿔로 만든 동심원 무늬가 있는 용기에 따로 보관돼 있었다.

연구팀은 초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와 고해상도 질량 분석법(UHPLC-HRMS)으로 머리카락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알칼로이드 물질이자 식물성 마약 성분인 스코폴라민과 에페드린, 아트로핀을 검출했다. 아트로핀과 스코폴라민은 가짓과 식물에서 발견되는 물질로, 섬망과 환각을 유발한다. 에페드린은 특정 관목과 소나무 종에서 추출되는 각성제로 흥분과 주의력, 신체활동을 증가시킬 수 있다.

연구팀은 “머리카락에서 알칼로이드 물질이 검출된 것은 이들이 맨드레이크, 사리풀, 흰독말풀 같은 가짓과 식물들을 섭취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주술사가 의식을 진행하면서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무 용기에 그려진 동심원이 눈을 묘사했으며, 환각으로 마주한 내면의 시각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1800여년 전 발생한 문화적 변동으로 청동기인들이 고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머리카락이 든 나무 용기를 동굴에 봉인했다고 추정했다.

◇마약은 신성한 실용도구였다

연구팀은 이전에도 선사시대 사람들이 아편과 대마초 같은 약물을 썼던 흔적을 발견한 바가 있다. 스페인의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한 성인 남자 이에는 아편 재료인 양귀비를 씹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대마초 원료인 대마를 담았던 그릇을 발견했으며, 이탈리아 알프스산맥에서는 환각버섯을 먹는 의식을 그린 추상화를 찾기도 했다.

엘리자 게라-도세 교수는 “이런 유물은 주로 무덤이나 종교의식을 치르는 장소에서 발견됐다”며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마도 마약류가 영적인 세계와 소통하게 만든다고 믿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자연에는 꽃과 풀, 버섯과 곰팡이 같은 천연 마약이 존재했으며, 인류는 일찍이 이를 접해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마약의 첫 글자를 과거에는 삼 마(麻)를 썼지만, 현재는 저릴 마(痲)를 쓴다. 마약을 풀이하면 ‘마취 작용이 있는 약’이다. 영어인 ‘Narcotic’도 ‘무감각’을 뜻하는 그리스어 ‘Narkotikos’에서 유래했다.

단어 뜻에 걸맞게 마약은 오래전부터 종교의식용이나 질병 치료에 사용돼왔다. 당장 대마초부터 기원전 3500년 경 의약과 종교의식, 밧줄 만들기 같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됐으며, 지금도 말기 암 환자나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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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을 목적으로 한 마약 오남용 및 불법거래 문제가 계속 화두되고 있다. 출처=Shutterstock

◇마약(痲藥)이 마약(魔藥)으로 변질되다

마약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존재라면 그 존재를 신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가 종교로 인정된 후 마약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독교 당국은 ‘인간이 궁극적 실재와 합일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상인 신비주의가 마약과 관련됐다고 여겼고, ‘고통은 신의 경건한 징벌이며, 믿음과 회개로 극복해야 한다‘며 마약을 엄격히 금지했다. 이른바 ‘종교 이성화’가 진행된 것이었다.

과학이 발달하고 근대화를 거쳐 이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19세기 중반에는 영국이 아편 무역으로 청나라 전체를 아편굴로 만들어 양국 사이에서 아편전쟁이 발발했다. 1960~70년대에는 쾌락을 목적으로 필로폰을 맞고, 대마초와 LSD를 흡입하는 중독자들이 전 세계에 퍼졌다. 마약은 신앙과 치료가 아닌 쾌락과 탐닉의 도구로 전락했다.

마약 오남용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의료용 마약류의 처방량은 증가세에 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9년 16억개에서 2020년 17억개, 2021년 18억개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10, 20대가 처방받은 약의 양 증가세가 가파른 것으로 드러났다. 20대가 처방받은 마약류 의약품은 2019년 3763만개, 2020년 4263만개, 2021년 4774만 개로 꾸준히 증가 중이다. 10대의 경우 2019년 2346만 개에서 2021년 2702만 개까지 올라섰다. 게다가 SNS 같은 기술이 발달해, 5분이면 구매 완료될 정도로 마약이 손쉽게 거래되고 있다.

최근 연예인 마약 투여와 마약 불법 유통 사건을 비롯해 강남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집중력을 높인다고 속여 필로폰이 들어간 음료를 파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신을 만나는 마약(痲藥)은 언제부터 악마에게 홀리는 마약(魔藥)이 됐는가. 마약 오남용을 뿌리째 뽑을 수 있는 확실한 정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글: 강지희 과학칼럼니스트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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