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인공지능 연구를 6개월 멈추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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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

일론 머스크가 주도한 공개서한에 1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머스크는 “챗GPT-4를 넘어서는 인공지능(AI) 개발을 모두 당장 최소 6개월 동안 중단하자”면서 “그동안 사회윤리적 함의를 조심스레 검토하고 올바른 기술규제 방안을 고민해 보자”고 주장했다.

핵폭탄 개발이나 인간의 난자를 이용한 생명공학 연구를 '영구히' 멈추라는 선언에 깊이 공감하는 필자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도 넘어서지 못한 뇌와 AI 연구를 모두 당장 멈추라는 주장은 참으로 블랙 코미디다. '영구히'도 아닌 아무 의미없이 짧은 6개월도 난센스다. 차라리 성명 발표를 6개월 늦추고 사회윤리적 함의를 검토한 그동안의 결과물을 냈어야 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성명서는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선량한 서명자 상당수는 성명의 앞부분인 '당장 중단'보다 뒷부분인 '기술규제 방안을 고민해 보자'는 부분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재 마케터' 머스크의 의도대로 언론은 '당장 중단'이라는 앞부분으로 도배됐다. 챗GPT보다 더 파괴적 기술인 '완전 자율주행'엔 '6개월 멈춤' 요청이 없었다.

인류는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궁극적 힘인 '핵력'의 존재를 어찌할 수 없고, 난자에 있는 '생명'의 신비에 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반면에 AI 코드는 온전히 사람이 설계하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통제가 가능하다. '신'의 피조물인 '자연' 과학과 '사람'이 만든 '공학'의 차이다. '핵융합'에 성공하면 '에너지 무한대' 세상이 온다. 무한 에너지면 식물을 무한정 재배할 수 있고, 땅속 깊이 무한 광물자원을 얻을 수 있다. 효율성 중심의 현대문명을 구성한 모든 요소는 소멸한다. 그 사회윤리적 함의는 AI 발전 정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다.

핵력, 생명, AI 가운데 어느 '특이점'이 가장 빨리 올까? 핵력이다. 핵융합은 이미 우주의 수많은 별에서 다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고, 이론적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생명'과 AI가 모사하려는 인간의 '뇌'나 '지능'은 사실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가장 강력한 정신약물 치료조차 '어떤 약물이 뇌에 들어간 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진 바가 사실상 거의 없다. 정신약물학 교과서 저자인 번스타인 박사의 말이다. 의사들이 잘 모르면서 경험적으로 처방한다는 뜻이다. '공학'보다 '자연과학' 편을 드는 듯한 필자의 '편견'이 걱정되겠지만 필자는 물리학자이던 부친을 따라 '물리'를 배우다 좌절했고, 의대에서 '사람'과 '뇌'를 공부하다 한계를 접한 후 가장 쉽고 명료한 '컴퓨터'로 도피한 공학도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챗GPT 충격의 본질은 핵력과 생명의 특이점에 비해 미미하기 짝이 없는 '사회윤리적 파급효과'가 아니라 '경제산업적, 권력적 파급효과'에 있다. 산업혁명 러다이트 운동과 반대로 높은 분들께서 '멈춰'를 외치시지 않는가? 챗GPT류의 파급효과는 소득이 높고, 진입장벽이 높은 직업에 더 크다. 기존의 '기계'는 근육노동을 자동화해서 주로 하위 및 중간임금 직군의 정형화된 업무를 대체했다. 챗GPT라는 새 '언어기계'는 그동안 언어의 복잡성 뒤로 피해 있을 수 있었던 통역사, 회계사, 기자, 작가, 교수 등의 고소득 전문직을 뒤흔든다. 스마트폰처럼 사회양극화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얀 르쾽 교수에 따르면 “1440년 가톨릭교회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와 활자의 사용을 6개월 유예할 것을 요청했다. 평민들이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세상이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가장 큰 장애물도 양반 기득권의 반발이었다.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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