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이 또 다시 시험대에 있다. 지난해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디지털 금'으로 불렸지만, 최근 미국의 고금리 기조와 위험자산 회피 심리, 현물 ETF 자금 유출 등이 겹치면서 크게 흔들리는 실정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트럼프의 힘이 약해지면서 사실상 트럼프주의에 대한 투자로 여겨지던 비트코인이 동력을 잃었다”고 분석했으며, 유명 억만장자 투자자 제러미 그랜섬은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까지 전망하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화폐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였다. 조개껍데기에서 금화, 종이화폐, 전자화폐에 이르기까지 형태는 끊임없이 바뀌었지만, 사람들이 가치를 믿고 국가와 사회가 제도로 뒷받침했기에 화폐로 기능할 수 있었다. 블록체인은 분명 금융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혁신적 기술이지만, 그 기술이 곧 화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의 안정성과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화폐 기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을 무조건 도외시하기도 어렵다. 국제 범죄나 테러 조직은 탈세, 자금세탁, 랜섬웨어 범죄 등에 암호화폐를 이용한다. 이란 등 일부 제재 대상 국가는 달러 중심 금융망을 우회할 결제 수단으로 디지털자산 활용을 모색하고, 북한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공격해 대규모 디지털자산을 탈취하는 등 불법 외화 조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비트코인이 실물 경제에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 자산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제 금융질서와 국가안보의 또 다른 위험 요인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바로 이것이 비트코인의 가장 큰 역설이다.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특징은 금융 혁신의 원동력이지만, 기존의 법·제도와 규제 체계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각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단순한 투자상품이 아니라 경제안보의 문제로 접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지털금융의 패권 경쟁 또한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은 금융시장의 투자와 거래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공개키 암호체계에 새로운 도전을 예고한다. 세계 각국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을 서두르며 디지털 통화 주도권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가격이 아니라 기술과 보안, 그리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투자 참여가 활발한 국가인 동시에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그런 만큼 디지털자산 정책을 투자 활성화와 규제 강화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 산업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되, 자금세탁 방지와 사이버보안 체계를 고도화하고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또 CBDC와 원화 기반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차질 없이 구축해 디지털자산 정책을 금융정책이 아닌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 과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이 미래의 화폐가 될지, 또 하나의 거품으로 끝날지는 아직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AI가 이끄는 디지털 금융 시대에 디지털화폐의 제도권 편입은 결국 현실화될 것이다. 이번 비트코인 하락은 미래 화폐를 결정하는 것이 가격이 아니라 신뢰임을 다시 일깨워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발행 주체와 준비금 규제 등 제도적 기반과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갖추는 일이다. 혁신은 육성하되 불법 악용은 차단하는 균형 잡힌 디지털자산 전략이 미래 금융질서와 국가 경쟁력, 경제안보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안보전략연구소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yeomul@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