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시대와 후기산업화시대를 비교하기 위해 수업시간에 주로 사용하는 예시가 있다. 바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앞에 서서 '입을 옷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옷장에는 옷이 터져 나갈 것처럼 많고, 그 가운데 계절감에 맞는 옷을 골라 입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 건 자본가들이 제품을 팔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비자의 인식에 소비의 필요성을 주입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입은 원피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출되고, 대중매체에는 올해의 컬러 등이 보도되면 소비자는 새로운 구매 의향이 커진다.
최근 몇 년 사이 TV, 길거리 등에서 넘쳐나는 정치 관련 뉴스나 현수막을 보면서 자본가 방식이 우리나라 정치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여야는 매일 소리 높여 정쟁을 부추기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국민이 딱히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들이나 필요 없는 것들을 과도하게 다루고 있다고 느낀다. “이게 문제고, 이게 불합리한 것이고, 이게 필요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목소리에 계몽을 통해 진정으로 국민의 의식을 깨우는 내용은 얼마나 있는지를 생각하곤 한다. 무분별한 소비를 조장하는 일부 자본가와 국민의 분열 및 정쟁을 부추기는 정치인의 행태가 매우 유사해 보인다.
요즘 거리를 다니다 보면 건널목과 사거리는 정당 현수막 때문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어지럽다 못해 지저분하다. 서로를 깎아내리고 욕하느라 바쁘기만 한 내용으로 도시미관 훼손과 국민 불편, 심지어 안전사고까지 일으키고 있는 현수막의 범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생에 가장 큰 관심을 보여야 할 국회에 현수막 게시 관련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최근 통과된 옥외광고물관리법(8조) 개정안에 따라 정당 현수막은 아무 곳에나 15일 동안 자유롭게 부착할 수 있게 됐다. 법 개정의 취지는 통상적 정당 활동 보장에 있었지만 국민의 한 명으로서는 정당 간 말싸움의 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당 활동을 위한 정치성 현수막을 제외하면 일반인은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 설치된 게시대에 허가나 신고를 통해서만 현수막을 부착할 수 있다. 반면에 정당 활동용 현수막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운전자나 보행자의 시야를 가려서 안전사고를 발생시킬 수도 있고, 자영업자의 간판을 가려 영업방해를 일으킬 수 있으면서도 아무 데서나 설치된다.
문득 정당 활동을 위한 현수막을 설치하는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가를 생각했다. 국민이 낸 세금이다. 국민이 낸 세금은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가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 어떤 국민도 세금을 정치인들이 서로 욕하고 선동하는 내용의 현수막 설치에 사용하도록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니멀라이프, 미니멀리즘 개념이 우리 정치에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지나치게 소유해서 온갖 소유물에만 신경 쓰는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덜 소유하고 덜 소비하자는 개념이다. 상대방 비방을 위해 문제를 일으키고 자극적인 단어 사용으로 국민에게 피로감을 유발하기보다는 국민에게 필요한 것, 국민에게 의미가 있는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국민의 대표자를 통해 목소리를 낸다는 민주주의 의의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미니멀리즘, 미니멀라이프가 유행한 것처럼 우리나라에 정당활동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길 바라 본다.
심지현 숙명여대 인적자원개발학과 교수 shimx013@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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