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의사 시험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AI)이 언젠가 인간의 능력을 결국 뛰어넘을 것(특이점의 도래)으로 예상한다. 이에 대한 인류의 대책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유럽 등에서는 AI를 제한하거나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인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는 점에서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에 반대하던 유럽의 러다이트(Luddite)운동은 산업혁명을 막지 못했고, 기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임이 증명됐다. AI도 결국 인간이 만든 물체나 시스템이다. 개별 물체나 시스템이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 지금도 건설 현장 장비는 사람 100명이 할 일을 혼자 해낸다.
사회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화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사람들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새로운 디바이스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한번 익혀 놓으면 더없이 편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인터넷뱅킹은 얼마나 편리한가. 굳이 힘들여서 은행에 가지 않더라도 모든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관공서에 가서 눈치 보지 않아도 증명서 발급 및 회신을 다 받아볼 수 있다. 디지털전환은 싫든 좋든 시대 흐름이다. 가뭄이 계속되던 시절의 기우제를 현대 디지털 사회에서 지낼 수는 없다. 적극적으로 치수 사업에 전념하는 편이 바른길이다. 디지털전환 시대의 가장 큰 숙제는 기술 발달 속도와 기술 사용자이자 주인인 인간(국민)이 기술 발전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자발적 소외층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어 어디로 갈지 등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몇 가지 분명한 현상을 통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사회 대부분이 디지털로 대체되거나 적어도 디지털이 접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약 아닌 앱 처방'…'디지털치료제' 세상이 열린다
최근 4세대 치료제라 불리는 '디지털치료제'(DTx; Digital Therapeutics)가 화제다. 디지털전환 시대에 의료 분야도 다양한 변화를 맞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디지털치료제는 전통적인 약물 치료제나 정신상담요법 외 새로운 치료제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치료제란 '치료 효과가 입증된 디지털 기술로 환자의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 관리 또는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SW) 의료기술'을 의미한다. 특정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 SW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디지털치료제는 물리적 외부 자극이나 약물 투여 대신 모바일 게임 앱 등을 통한 인지적 행동 교정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그동안 과도한 게임 이용이 건강에 유해하다며 질병코드를 부여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게임을 장려하는 등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보여 주기도 했다.
디지털치료제의 대표 사례는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아킬리 인터렉티브(Akili Interactive)의 인데버 아르엑스(Endeavor Rx) 의료용 게임이다. 인데버 아르엑스는 7년 동안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증상 아동 600명을 임상 시험, 게임에 집중하는 행동을 통해 주의력이 향상된다는 효과를 입증했다. 그 결과 202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디지털치료제로 승인받았다. 또 레이싱게임을 활용한 디지털 치료가 고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질환증상 치료에서 뇌의 회로를 자극해 주의력과 기억력을 높이는 등 관련 치료에 유용하다는 논문들도 네이처(Nature)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게재돼 관심을 받고 있다.
이렇게 게임이나 SW를 통한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 Therapy)가 가능하게 됐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긍정적 측면을 가져다준다. 디지털치료제가 기존의 치료제 개발이 쉽지 않았던 중추신경계 질환(치매·알츠하이머·ADHD 등)이나 생활 습관의 변화가 필요한 만성질환(당뇨·고혈압·당뇨·암 등), 약물중독·우울증·수면장애·자폐·외상후스트레스 등 질환의 예방과 증상 완화 또는 치료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치료 가능성 외에도 적용 가능성도 짙어졌다. 예를 들어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가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진행하던 인지행동치료에 디지털치료제를 활용하면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또 치료를 위해 메타버스, AI,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서 획기적인 치료 기술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증강현실(AR)·가상현실(VR)기술 활용으로 시공간적 제약이 해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 의료기술로의 진화가 가능하다 할 수 있다.
◇디지털치료제 활성화, 법적·제도적 뒷받침 필요
미국, 영국, 독일 등 해외에서도 디지털치료제의 제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지난해 12월까지 디지털치료제 25건의 임상계획을 승인했다. 현재는 불안·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집중되고 있지만 앞으로 약물남용·재활치료·만성질환 등에도 상용화된 디지털치료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디지털전환 시대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적극적 참여다. 의료 분야에서도 의료의 주체는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도 돼야 하고, 치료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나 약 등 전통적인 치료 방법을 넘어 디지털 기술 등의 활용으로 환자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이 있다면 적극 도입·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효과가 입증된 디지털치료제의 확산을 정부 차원에서 도울 필요가 있다. 나아가 디지털치료제의 개발 단계부터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2022년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디지털치료제의 2030년 글로벌 시장 규모는 173억달러로 전망된다. 디지털 강국인 대한민국으로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게임 강국의 기술과 경험으로 비롯된 우리의 글로벌 위상은 의료계, 심리학계 등과 연계해 디지털치료제를 발전시켜 나간다면 미국과 함께 가장 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shpark@kinternet.org
〈필자〉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에서 법학 석사를 취득한 후 네이버에서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컴투스, 게임빌 법무총괄 이사로 지냈다. 2018년에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규제심사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원활한 대외 소통을 바탕으로 규제 완화, 글로벌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 억제, 인터넷 플랫폼 활성화 도모 등 국내 인터넷산업의 선순환 생태계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나아가 국내 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디지털경제연구원 설립, 학술단체 교류 확대, 국제협력 도모, 유관기관 협업 강화 등 협회의 대내외활동 범위를 확장 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디지털경제의 성장과 도약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