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현안' 아닌 현안, 대한민국 여성 노동자로 살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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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위반 신고사건

대한민국에서 '여성 노동' 이슈는 끊임없는 현안이다. 동시에 아무도 현안으로 '대우'해주지 않는다. 우리 한참 윗세대부터 MZ세대까지 일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제가 사회 곳곳에 산적해 있다.

지난해 발생한 서울지하철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여성 노동자가 몇 년이나 근무한 일터에서조차 안전을 확보할 수 없었음을 드러냈다. SPL 공장에서 발생한 여성 노동자 사망사고도 청년 여성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다시 한번 경종을 울렸다. 필자가 지난해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초청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인 40대 여성 노동자는 같은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매 시각 여성 노동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권익을 침해받고 있다.

가사노동이든 집 밖 노동이든 여성 노동자가 1명도 없는 가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국민의 절반이 관련된 문제임에도 이른바 다른 '현안'에 수없이 밀리고, '갈라치기'에 악용된다. '지금 이게 문제냐'라는 말에 시달리는 것이 여성 노동자의 권익 이슈다.

노동 비례대표로서 국회의원이 된 필자마저도 여성 노동자의 설움으로 수없이 눈물을 삼킨 워킹맘이었다. 국회에 입성해서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가족돌봄휴직 확대 등 다양한 모성보호 법안을 발의했지만 갖은 이슈에 밀리고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기업 반발이 심하다'는 등 이유로 상임위원회 법안소위 테이블에 올리기조차 어려웠다.

혹자는 여성 노동자의 권익이 많이 개선되지 않았느냐고 역설한다. 20대만 놓고 보면 성별 격차가 줄거나 여성 고용률이 더 높은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30대에 이르면 완전한 역전이 일어난다. 30대 남성 고용률은 90%를 조금 밑도는 수준이지만 여성 고용률은 간신히 60%를 넘어선 수준이다. 공교롭게도 이 추세는 20여년 동안 큰 변화가 없다.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집계가 시작된 2013년 이래 10년 연속 최하위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유리천장지수는 국가별 여성의 노동환경을 총체적으로 보여 준다. 성별 임금 격차,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기업 내 여성 관리직 및 임원 비율, 남녀 육아휴직 현황 등을 통해 산출한다. 점수가 낮을수록 여성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6%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이사회의 여성 임원 비율은 8.7%로 OECD 평균인 28.0%와 비교했을 때 약 세 배 차이가 났다.

이와 함께 여성의 가사노동 비율은 OECD 국가 가운데 부동의 상위권이다. 2021년 통계청에 따르면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는 490조9000억원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대비 25.5%를 차지한다. 1인당으로 따지면 여성이 1380만원으로 남성(521만원)보다 2.6배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물론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남성의 가사 노동시간은 2014년 45분에서 2019년 기준 64분으로 19분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 여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연령층별 시간 빈곤자의 결정요인 분석'에 따르면 가사노동과 유급 노동을 병행하는 기혼 여성은 근로소득이 많을수록 시간 빈곤자가 된다. 불평등한 가사노동과 유급 노동이 병행되니 일하는 여성에게 여가·자유시간은 갈수록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시간 빈곤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성별 고용률 격차도 너무 크다. 결국 정책적 개입 없이는 개선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의 여성 노동정책은 새로울 것 없는 임신·육아·돌봄 관련 정책에 머물러 있다. 윤석열 정부의 여성정책 역시 사실상 '부모급여' 제도 마련에 집중됐다. 출산과 양육 초기의 부담을 대폭 완화하고 나아가 함정에 빠진 저출산으로부터의 탈출을 궁극적 목표로 해서 정조준한다는 일종의 현금성 복지다. 그러나 이 제도에 집중하는 윤석열 정부의 여성 노동정책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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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상대적으로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저소득 여성이 가정 보육을 선택한 결과로 원치 않는 장기간 경력단절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부모 급여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육아 휴직제도, 여성 고용 촉진 정책 등 노동권 보장이 함께 고려되고 논의돼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은 이와 같은 고민의 지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둘째 여성 노동자는 '워킹맘'만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결혼과 출산·육아를 택하지 않은 여성 노동자와 노년층 여성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특히 노년층 여성 노동자는 생활에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높다. 윤석열 정부가 통폐합하기로 한 정부 주도의 직접 일자리인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94%가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여성 참가자는 3분의 2를 차지한다. 공공일자리에 주로 뛰어들던, 가정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고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7080 여성은 '그나마 돈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던' 정부 일자리에서 내몰리게 될 것이다.

여성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은 여성의 인구 재생산 기능에만 그친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노동환경에서 빈번하게 행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유리천장, 동일노동·동일임금 문제, 일·가정(1인 가정을 포함한다) 양립 등에 대한 여성 노동자의 염원은 상대적으로 '덜 급한' 사안처럼 치부된다.

여성 노동자 권익 문제는 선거철에만 소비되고 이용되는 일시적 이슈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매 순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여성 노동자와 가족에게는 더이상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현안이자 '삶'이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갈라치기 정부의 표본이 될 것인가,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다양한 형태와 연령대의 여성 노동자를 정책 논의의 테이블로 끌어들여서 함께 논의에 나설 것인가. 선택은 집권 만 1년을 앞둔 정부와 정치권에 달렸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leesj545@hanmail.net

〈필자〉 이수진 의원은 간호사 출신 노동운동가로, 제21대 총선에서 노동 부문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 의원은 1991년 연세의료원에 간호사로 입사한 뒤 연세의료원노조,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연세재단 산하 노조협의회 위원장, 무상의료국민본부 집행위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치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노동위원회 상임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당명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뀐 후 전국여성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노동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 최고위원을 맡아 당내 여성·노동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이 의원은 민주당 원내부대표, 원내대변인으로 국민과의 소통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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