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사는 방탄소년단(BTS) 팬 프리첼은 꿈에 그리던 한국으로 아미 친구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BTS 성지를 찾아다니는 일정으로 꿈에 부풀어 있는 그가 찾은 첫 번째 장소는 연습생 시절 그들이 늘 먹었다는 소박한 밥집으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유정식당'이었다. 구글맵을 켜고 식당을 찾은 그들에게 찾아온 첫 번째 난관은 길 찾기가 안 되는 구글맵이었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한 경험으로 보면 한국은 K-팝과 더불어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로 유명한 K-무비 나라다. 더욱이 코로나를 모범적으로 이겨낸, 자유와 안전이 보장된, 여행하기 좋은 선진국이란 이미지의 한국이었다. 당연히 여행한 모든 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구글맵을 켜고 해당 장소를 찾아 대중교통을 탈지 택시를 탈지 우버를 부를지를 정하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비용은 얼마나 들지 비교하며 결정할 생각이었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 구글맵은 자동차 길 찾기가 작동하지 않으며, 근처에 가도 도보로 길 찾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구글맵은 200여 국가를 커버하고 식당·장소 정보뿐만 아니라 운전 경로, 교통 흐름 정보, 자전거, 도보 길 찾기, 재난 상황 등 매우 많은 정보를 지원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 지역의 운전경로·대중교통·도보경로 정보도 제공된다. 그런데 더욱 의미 있는 것은 K-관광으로 한국을 찾는 세계인이 쓰는 거의 모든 언어인 40여개 언어를 구글맵이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맵이 왜 한국에서는 반 쪽밖에 안 되는 걸까? 이유는 놀랍게도 법과 규제 때문이다. 40여년 전 베트남전쟁 이후 개정된 측량법인 지금의 공간정보관리법에 의해 지도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금지한 법규 때문이다. 인터넷도 없고 더욱이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정밀한 지도정보는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정보였고, 규제는 타당했다.
2022년 지금 인터넷이 당연하고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검색하는 시대에 안보라는 전가의 보도는 여전히 살아남아서 국토부 장관 허가 없이는 지도의 해외 반출이 금지되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과장해서 얘기하면 지금 비행기를 타고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하며 스마트폰에 지도앱과 내비게이션을 깔고 나갈 때 우리는 이미 허가 없이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비슷한 대표 규제로 원격의료와 투자병원, 그나마 개선된 공인인증서와 우버로 대표되는 승차 서비스 등이다. 30년 동안의 개방으로 한국이 금방 쓰러질 것처럼 얘기한 분야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발전을 이뤘다. 제조업 개방은 삼성과 LG가 세계적인 가전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됐고, 유통업 개방으로 까르푸와 월마트가 우리를 점령할 것처럼 우려됐지만 기우였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 쇠고기 개방을 반대했지만 개방 이후 한우 수요와 생산은 더욱 늘었다.
음악과 영화는 유튜브·넷플릭스로 대표되는 글로벌 플랫폼 채널을 타고 K-팝, K-무비, K-드라마로 세계적인 환호를 받고 있다. 해외 플랫폼이라고 무조건 배척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에게는 네이버 지도, 카카오맵이라는 훌륭한 회사와 경쟁력 있는 서비스가 있다. 국내에서 도토리 키재기로 경쟁하며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로 맷집을 키울 때 다양한 기회의 창이 열린다. 일본을 근거지로 삼은 라인이 아시아를 제패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경쟁력을 길러 가고 있는 지금 라인 서비스에 국적에 따른 규제가 중요한가?
반도체, 자동차, 조선, 휴대폰과 같은 완전한 개방이 이뤄진 분야에서 한국은 더욱더 글로벌 선도기업이 되어 가고 있다. 다양한 글로벌 플랫폼 서비스가 표준이 돼 있다면 그걸 이용해서 세계인이 활용할 서비스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고속도로를 건설해 놓았다고 국산차만 톨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그렇게 한다고 국산차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금액으로 통행료를 물리고 같은 도로에서 속도·안전·서비스로 경쟁하게 하면 될 일이다.
소광진 SPH 대표이사 kjso@sph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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