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UNIST 총장이 취임 3주년을 맞아 '2027년 세계 100대 연구중심대학 도약'을 새로운 목표로 제시했다. 이 총장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중시한다. 앞으로 5년, 2027년까지 연구와 교육, 국제협력 등 전 분야에서 내외부 역량과 위상을 끌어 올리고 '노벨상 같은 탁월한 연구 성과' '구글 같은 글로벌 혁신기업 창업'을 결과물로 내놓겠다”고 말했다.
구체적 목표와 발표에 대한 자신감은 UNIST 지속적인 성장과 달라진 위상에서 비롯됐다. 최근 나온 클래리베이트(Clarivate) '2022 HCR(논문 피인용 횟수) 상위 1% 연구자' 명단에 UNIST 교수 10명이 포함됐다. 서울대, KAIST 등 국내 유수 대학 및 연구기관을 제치고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구자를 올린 성적표다. 이 총장은 “UNIST 연구 역량이 국내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개교 초 세웠던 세상을 바꾸는 퍼스트 무버에도 한 발 더 다가섰다”고 했다.
총장 3년 성과에 대해서는 “취임 초 '해야 할 일을 잘하는 대학'을 강조하며 계획했던 대로 대부분 이뤘고, 이뤄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 초 인공지능(AI), 반도체, 탄소중립, 바이오메디컬을 4대 전략 분야로 설정해 중점 추진했다. AI 대학원과 AI 혁신파크를 구축해 울산을 AI 기반 첨단산업도시로 변화시켜 나가고 지난해에는 반도체 소재·부품 대학원과 차세대 반도체 연구단을 설립해 울산 화학기업의 소재·부품기업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내년에는 '에너지 실증파크(가칭)'를 구축한다. 울산을 세계적 신재생에너지 연구·실증 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한 목적이다. 의과학원 설립을 토대로 바이오메디컬 연구와 창업을 집중 지원하고 울산을 첨단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 메카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세웠다.
이 총장은 남은 임기를 '세계 100대 연구중심대학' 달성에 집중한다. 연구와 교육은 물론 지원 인프라, 캠퍼스 문화와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인재들이 들어와 머물고 싶은 대학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대담=정동수 전국총괄 부국장(전국부 데스크)
-취임 만 3년이다. 취임 당시 '해야 할 일을 잘하는 대학'을 강조했는데 만족하는지. 재임 3년 소회는.
▲계획했던 목표와 사업 대부분은 이뤘다고 본다. 울산시와 시민의 관심과 성원, UNIST 구성원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이다. UNIST는 그 설립 목적에서 '해야 할 일'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혁신과 고급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고, 또 하나는 과학기술로 지역 혁신과 미래 성장을 선도하는 것이다. 지난 3년간 연구와 교육, 조직문화, 캠퍼스 환경 등 전반에 걸쳐 기반을 잘 다져왔다. 각종 국내외 통계에서 국내 최고 수준 연구중심대학임을 입증했다. 이제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하는 일이 남았다.
-개교 13년, 과학기술원 전환 7년째다. 국내외에서 UNIST의 위상은.
▲'2023년 THE 세계대학평가'에서 174위, '2023년 QS 세계대학평가'는 197위로 100위권에 진입했다. 국내 순위는 5~6위 선이다. 설립 50년 이내 신흥대학 순위는 세계 11위, 국내 1위다. 개교 13년 만에 이룬 성과로 '매우 놀랍다'는 평가가 많다.
UNIST 최대 강점은 교수진의 탁월한 연구력이다. 최근 HCR 연구자에 10명이 포함돼 국내 대학 가운데 1위다. 논문의 질적 우수성을 평가하는 '라이덴랭킹'은 6년 연속 국내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취임 후 주요 성과를 꼽는다면.
▲UNIST는 개교 초 이차전지, 태양전지, 수소 등 미래 친환경에너지 분야를 중점 육성했고 현재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2020년 지역산업 고도화에 필요한 기술, 학내 역량은 있지만, 지원이 부족했던 4개 전략 분야를 새로 선정해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탄소중립, 바이오메디컬이다. AI 대학원, 반도체 소재부품대학원, 탄소중립대학원, 의과학원(2023년 예정)을 신설하고, AI 혁신파크, 스마트헬스케어연구센터 등 전문 연구센터를 구축해 재직자 교육,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울산을 친환경 첨단산업도시로 탈바꿈시켜 나가고 있다.
AI 대학원과 AI 혁신파크는 지역 기업 100여 곳과 AI 기반 공정혁신과제를 수행하고, 16개 AI 기업이 AI 혁신파크에 입주해 UNIST 교수 연구진과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
반도체 소재·부품 대학원과 차세대 반도체 혁신연구단은 울산 정밀화학기업을 세계 수준의 반도체 소재·부품 전문기업으로 변신시켜 나가고 있다.
탄소중립대학원은 탄소중립 연구·교육과 환경정책 전문을 표방한 국내 최초 대학원이다. CCUS(탄소 포집 및 재활용 기술), 수소, 신재생에너지, 환경경영정책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내년에는 '에너지 실증파크'(가칭)를 구축해 세계적인 친환경에너지 연구·실증 클러스터와 에너지 실증산업단지로 연계한다.
기 구축한 스마트 헬스케어 연구센터는 울산 산재공공병원과 연계해 산재 특화 연구개발, 산학연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내년에 UNIST 의과학원이 출범하면 바이오메디컬 산업을 이끌 '과학·공학을 아는 의사', '의학을 아는 과학자·공학자'를 양성한다.
-교내 교수와 학생 창업이 활발하다. 성과와 앞으로 지원 방향은.
▲UNIST는 개교 때부터 구글 같은 글로벌 혁신기업 창업을 강조했다. 현재까지 교수와 학생 창업은 145개(교수 65개, 학생 80개)에 이른다. 전체 기업 가치 1조원이 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누적 고용 830명, 누적 매출 1800억원을 거뒀다. 이 가운데 교원 기업 1호 클리노믹스는 2020년 코스닥에 상장했고, 2~3개 기업이 상장을 추진 중이다.
실험실 우수 연구 성과를 사업화와 창업으로 연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우선 빼어난 연구 성과를 도출하고, 유망 기술임을 입증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미국 MIT, 시카고대 등에 유망 창업기업을 보내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보육 투자시스템을 활용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2027년 세계 100대 연구중심대학 도약' 목표는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가.
▲초격차 과학기술 확보 여부가 곧 국가 생존 및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다. 초격차 과학기술은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의 세계적 석학들이 주도하고 있고, 선진 국가의 공통점은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023년 THE 세계대학평가'에서 톱 100위 대학 가운데 50%는 미국과 영국, 독일 연구중심대학이다. 중국도 2020년 3개에서 2023년 7개로 배 이상 늘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3개에 그쳤다. 2021년 우리나라 공공 R&D 예산이 총 27조4000억원으로 세계 5위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결과다. 우리나라가 세계 과학기술 5대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UNIST도 그 임무를 함께 맡겠다는 의지다.
-선언적 목표가 아닌 구체적인 달성 전략은.
▲'노벨상에 버금가는 탁월한 연구 성과'와 '구글과 같은 글로벌 혁신기업 배출'로 보여주겠다.
이를 위해 세계 최고 연구중심대학, 즉 글로벌 퍼스트 무버와 교류하고 벤치마킹하며 UNIST 교육과 연구 전반에 퍼스트 무버 DNA를 심겠다. 해외 노벨상 수상 석학, 글로벌 연구중심대학 총장을 섭외해 총장 직속 국제자문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는 UNIST 위상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논문 피인용 지수를 좌우하는 국제적 영향력이 높은 연구를 지속 지원하는 동시에 국제 공동연구와 해외 파견프로그램 확대, 연구지원시스템 고도화, 우수 교원·학생 유치 활동도 강화한다.
-교육 분야에서 '실전형 창의인재 양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내용인가.
▲현재 과학기술 교육은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학년에 따라 정해진 교과목을 순차적으로 배우는 복습형 전통 이공계 교육에 머물러 있다. 학부에서는 기초를 가볍게, 대학원에서 심화 학습하는 KAIST형 대학원 중심 교육 고착돼 있다고 본다. '기초-심화-응용'의 단계적 교육방식은 반복 학습에 따른 피로감과 흥미 상실, 연구현장·산업계에서는 문제 해결력 부족의 원인이 된다.
'실전형 창의인재 양성'은 최신 과학기술을 빠르게 배우고 곧바로 실전 경험을 쌓는 데 중점을 둔다. '해 봐야 배운다'(Learning by Doing)는 모토로 필수 기본기만 익힌 뒤 곧바로 링에 올라 스파링하며 스스로 실전경험을 쌓는 방식이다. 우리 과학기술계도 BTS나 손흥민 같은 글로벌 성공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성취동기를 찾아 능동적으로 도전하게 된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나.
▲기존 과목에 AI를 연계한 교과목을 계속 개발 적용하고 있다. 'POL(Prototype Oriented Learning)'은 전공별로 AI를 접목해 기술혁신 변화를 선제적으로 습득 훈련하는 과정으로 지난해 14개, 올해 15개 교과목을 개발했다. 실전형 단기 강좌 시리즈 '원데이렉처(One day Lectures)'는 연구과제, 융합연구, 신기술, 현장 실전 문제 등 전공별 최신 주제를 이론과 실습으로 빠르게 접하며 익힐 수 있는 교과목이다. 프로젝트 기반 실전형 연구동아리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에만 130개 연구동아리가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자발적으로 연구주제를 선정해 활동하고 있다.
-취임 초 UNIST의 열악한 기부금 재정 상황을 지적했는데 현재는 어떤가.
▲다른 목표보다 어렵게 이어 왔다. UNIST는 인재와 기업, 기술을 끌어들이는 자석 같은 역할을 해야 하기에 기부를 부탁하는 데 주저하는 기업인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 울산 1세대 벤처기업 덕산그룹의 이준호 회장이 발전기금 300억원을 약정했다. 'UNIST가 만들어가는 미래가 내가 꿈꾸는 미래와 똑 닮아 가슴이 설렌다'는 이 회장의 말씀에 감동했다. 덕산그룹 발전기금은 글로벌 창업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될 '챌린지 융합관' 건립에 쓰인다. 대학-기업-지역의 이상적인 동반성장 모델이 될 것이다. 챌린지 융합관은 내년 1월 착공해 2026년 말 완공 예정이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여러 어려움은 울산이나 UNIST도 예외가 아닐 터인데.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매년 UNIST에 입학하는 인재의 절반만 울산에 남을 수 있다면, 울산의 미래는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 생각해왔다. 인재들이 머물고 싶은 매력적인 캠퍼스를 만드는 여러모로 관심을 쏟은 이유다. 지난해 기숙사와 학생 식당을 개선하고, 클리닉과 약국도 열었다. UNIST 청춘 버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주말에 울산과 근교 투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가을에는 도서관 1층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꾸몄고, 멋진 북카페도 열어 인문학 강연, 독서 모임 등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에는 맛집도 1~2곳 열 계획이다.
-울산시와 UNIST 관계, 울산에서 UNIST가 지닌 의미는.
▲울산 산업과 경제 발전도 결국 경쟁력을 갖춘 과학기술 혁신에 답이 있다. 울산 전통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산업 고도화를 이룰 수 있는 것도 과학기술이다. UNIST 설립 목적에는 과학기술로 지역과 동반성장이 명시돼 있다. UNIST는 울산과학기술원이고 현재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UNIST 개발 기술을 울산 기업이 사업화해 세계로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울산시와 UNIST의 미래다.
이용훈 UNIST 총장은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 교수로 5년여 활동하다 1989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로 임용돼 ITRC센터장, 신기술창업지원단장, 정보기술 BK사업단장, 공대학장, 정보과학기술대학장을 지냈다. 2011~2013년 교학부총장을 역임했고, 2019년 11월부터 UNIST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이사,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수소경제위 위원을 지냈고, 현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울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