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이 됐지만 여전히 주위를 돌아보면 결혼한 친구보다 하지 않은 친구가 더 많다. 이른바 결혼적령기가 뒤로 밀려나고 있어 30대 후반이 되면 좀 달라질까?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기류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결혼을 꼭 거쳐야 할 인생의 필수 과정으로 여기지 않고, 안 해도 상관없는 유별난 이벤트로 생각하는 기류는 이미 30대 초·중반에서 보편적인 정서가 되고 있다. 아마 지금 10대와 20대는 “결혼 안 해?”라는 질문보다 “결혼한다고? 왜?”라는 질문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을지 모른다. 결혼적령기라는 낯선 단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결혼 통계는 사뭇 달라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결혼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전년 대비 9.8%(2만1000건) 감소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결혼 건수가 가파르게 감소한다고 경고한다. 연 30만명대의 결혼 건수가 20만명대로 내려오기까지 19년이 소요됐다.(1997년2016년) 그런데 불과 5년 만에 20만명대 선이 깨지고 10만명대로 내려온 것이다.(2016~2021년) 앞으로 5년 뒤에는 10만명대의 연간 결혼건수 마지노선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30대 남자 절반이 미혼이라는 발표는 이런 분위기에 쐐기를 박는다.
청년이 더 이상 결혼하지 않는다. 이 한 문장이 지속적인 출산율 저하와 인구 감소 문제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사회문화적 변화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결혼을 사치로 느껴지게 만드는 팍팍한 현실이 더 큰 원인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청년을 만나면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쉽게 마음먹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지난 5년 동안 부동산 가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고, 이제는 물가상승 공포가 경제를 뒤덮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청년 고용지표는 소폭 개선되지만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났는지 살펴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2021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1949년 총인구를 집계한 이후 72년 만에 인구가 늘지 않는 나라,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로 전환됐다. 통계청은 2019년 대한민국 인구 감소 시기를 2029년으로 전망했다. 그보다 8년이나 앞선 2021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오죽하면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도 거들고 나섰다. 올해 5월 그는 “한국이 홍콩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붕괴를 겪고 있다”면서 “한국의 출산율이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3세대 후 인구는 현재의 6%가 된다. 인구 대부분은 60대 이상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경고를 그냥 흘려들을 수 없다. 섬뜩한 경고와 함께 머스크가 출산율 순위표를 공유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로 등극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 0.81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머스크는 한국에 경고하기에 앞서 일본의 인구 감소 현상에도 주목했다. 머스크는 일본 인구가 11년 연속 감소한 사실을 지적하며 “일본은 출산율이 사망률을 넘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결국 존재하지 못할 것(eventually cease to exist)”이라면서 “이는 세계에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나라가 사라진다는 경고를 받은 일본도 합계출산율은 1.34명으로 우리보다 한참 나은 상황이다. 점진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는 추세였지만 이토록 속도가 빨라질 줄은 몰랐다.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화 계획을 수립한 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1.2명 정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7년 1.05를 시작으로 0점대까지 출산율이 떨어지며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전 정부 책임 떠넘기기로 읽힐까 걱정되지만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지 않으면 해결도 요원해진다. 문 정부에서 출산율 저하 속도가 이전 정부에 비해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도 인구 감소와 국가 소멸 위기는 지난 5년 사이 코앞까지 성큼 다가왔다.
정책 실패의 첫 번째는 당연히 부동산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6억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021년 12억원을 돌파하며 2배 넘게 뛰었다. 6억원도 청년들에겐 큰돈이지만 12억원은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다. 평생 대출이자 상환은 고사하고 12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만한 대출조차 나오지 않는다. 두 번째는 불안한 미래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국가채무를 가장 많이 늘린 정부다. 5년 동안 410조원 가까이 국가채무가 늘어났다. 지나친 확장 재정과 현금성 지원, 포퓰리즘 정책의 한계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165조원, 이명박 정부 180조원, 박근혜 정부 170조원과 비교하면 400조원 이상의 폭증은 비정상적이다.
청년은 나랏빚을 보며 국가가 미래를 지켜 주는 울타리가 될 수 있을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국민연금 지급 보증 논란, 건강보험을 비롯한 공적 자금 고갈 시기 논란 등은 대표적이다. 내집 마련의 사다리를 재건하고, 국가가 국민 노후를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해 줄 거라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양대 실정을 극복하는 것이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다. 그렇지 못한다면 청년은 결혼이나 출산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기 어려울 것이다.
저출산 문제 시각 자체도 확장할 타이밍이다. 부부를 대상으로 출산·육아 비용을 보전해 주는 방식의 정책과 함께 늘어나는 미혼 청년을 위한 사전 처방이 절실하다. 본질은 청년이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불행 속에 연애·결혼·출산을 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렇기에 청년 정책과 예산을 대폭 확대하는 것 또한 저출산 문제의 해결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400조원, 이 가운데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140조원 이상의 저출산 예산을 썼지만 출산율은 나아지지 않았다. 직접 지원 예산이 이보다 적다 해도 저출산에 국력을 집중시킨 것에 비해 성과는 없다. 어마무시한 저출산 예산 규모에 비해 청년정책 예산은 초라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다. 단순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청년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국무조정실 산하 청년정책조정실의 2021년도 예산은 40억원에 불과했다. 대부분 취업 장려에 쓰였고, 청년 행복을 위한 것은 없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청년 예산과 사회적 인프라 확대를 위해 노력했지만 안팎의 시선이 따스하지만은 않았다. 과잉되고 왜곡된 청년정치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불행과 불안을 이해하지 않고,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저출산 예산에 몇백조원을 더 써 봤자 0점대 출산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비혼 출산을 장려하자는 주장도 하지만 희망을 품기 어려운 환경에선 기혼·비혼 모두 유의미한 개선을 가져올 수 없다. 국가 위기로 찾아온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청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청년 정책과 예산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다. 나아가 인구 감소를 막는 가장 적극적인 사전 방지 대책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의 전면 개편을 약속했다. 담대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더 다양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과감하게 시도되는, 그리하여 저출산 문제에 새로운 전기를 제시한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 jyctv2030@kyf.or.kr
<필자>장예찬 이사장은= 방송에서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며 주목 받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의 1호 참모로 등장해 경선 캠프 청년 특보, 본선 캠프 청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청년소통TF 단장직을 맡아 청년 관련 국정과제를 마련하는데 앞장섰다. 이후 재단법인 청년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자립준비청년·고립은둔청년 지원 정책을 제안하며 청년정책의 빈틈을 현장에서 메우고 있다. 여전히 활발한 방송 활동과 정치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