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계를 위협한 재난에 대한 적응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름도 생소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까지 출몰하고 있다. 원숭이두창에다 더욱이 신종 인수공통감염 헤니파바이러스도 나타나 두려움을 더하고 있다. 신종감염병 문제는 인류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변수'지만 일정 주기로 출몰할 것이라는 점에서 '상수'가 되고 있다. 국가의 역할은 신종감염병 대응에 철저한 대비를 책임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코로나 상황이 2년 넘게 지속되자 공동체를 위한 국가의 위험 감수와 개인의 희생이 갈등을 빚고 있다. 긴급 대응 이후 국면으로 전환되자 잠재돼 있던 사회적 갈등이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다. 감염병 공포는 사회 전체의 집단면역 체계를 지키는 것을 우선하도록 만들었다. 공동체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에선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작은 위험을 택하면서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무너진 개인이 발생했다.
대표 사례로 평범한 일상을 지내던 사람이 정부가 권고한 백신을 맞은 후 부작용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면 억울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더 이상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당사자나 가족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참담함을 느낄 것이다. 특히 공무수행을 해야 하는 군인, 경찰, 의료인 등의 직업군은 개인 선택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희생에 대해 국가는 응당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현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는 백신으로 말미암은 피해가 난 환자와 가족에게 진료비 등 장애 및 후유증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문제는 백신 피해에 대한 인과성 입증이 엄격하고 인과성이 없다는 판정이 났지만 억울한 경우에 대한 재심 등 규정이 빈약해서 환자와 환자 가족의 억울함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백신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인과성 여부에 관한 입증 책임을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고, 이후 피해 보상에 관한 적극적 지원을 담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의 속도와 달리 정부는 유보적인 태도다. 전례 없는 코로나 사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다고 밝히면서도 소극적이다.
정부는 사회적 과제를 풀기 위해 정책을 새로 설계하기보다 기존 제도에서 해소하겠다는 경로 의존성이 강하다. 피해 보상에서도 긴급복지제도나 재난적 의료비 지원 등 현행 제도를 활용하는 방식에 방점을 둔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바이러스가 진화하는 속도만큼 낯선 감염병을 대응하는 시스템 또한 진화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백신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새 정부가 취임했지만 백신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들은 여전히 거리로 나가 호소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자 공약은 사라지고, 고장 난 레코드처럼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행정만 남았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새 정부의 정치는 실종된 것인가.
정부는 백신 피해에 관해 인과성이 명확하게 입증되기 이전이라도 백신 관련으로 치료받는 사람의 치료와 심리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 백신 인과성이 부정 당한 사람들에게도 재심의를 요청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물론 백신을 맞은 후 질병 치료 보장이라는 정부 정책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가 밝혀질 때는 징벌적 배상 조항을 넣어서 악용을 최소화하는 등 조치를 하고 최대한 백신을 맞는 것부터 그 부작용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약은 모두 부작용을 안고 있다. 제약회사는 부작용 위험률을 낮추기 위해 실험과 검증을 거듭한다. 코로나 백신은 과거 신종감염병처럼 사안의 시급성 때문에 위험 가능성을 안고도 투입됐다. 공동체의 적인 역병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고 공동체 안전을 택했다. 백신을 빠르게 개발하여 접종률을 신속히 높이는 과정에서 충분히 임상시험을 하지 못했다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과 부작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국가 정책의 신뢰도가 결정된다. 문제는 앞으로 닥쳐올 '신종감염병'의 출몰이다.
코로나 백신처럼 그때도 백신 접종은 유용한 대응책으로 거론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가의 충분한 책임이 아니라 마치 개인의 불운으로 돌리려는 듯한 무성의함이 유지된다면 국민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최근 다양한 연구에서도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이유 가운데 백신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는 결과가 제시됐다.
결국 '피해를 보는 건 개인'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게 된다면 나중에 발생할 신종감염병에 대한 대응에서 국민의 협조를 얻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국회에서는 법안 통과에 주력하겠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 전환이 요구된다. 정부는 신종감염병 출현에 대비한 공공의료 체계를 강화해 나가는 한편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대한 공적 투자를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국민의,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시작될 것이다. 정치와 행정은 다르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gwangsan.lyb@gmail.com
<필자>이용빈 의원은…
광주 광산갑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전남대 의대에 진학한 뒤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줄곧 의사로 활동했다. 특히 광산구 월곡동에 이용빈 가정의학과를 개업하며 이른바 '마을 주치의'로 활동해 왔다. 지역 노인복지관, 독거노인, 외국인 노동자, 빈곤 청소년 등을 진료하는 등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시민플랫폼 나들 초대 대표로도 활동했다. 제21대 국회 입성 이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미얀마 사태, 우크라이나 사태, 고려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