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비디오 가게이던 넷플릭스는 어떻게 세계 최대 OTT 기업으로 성장했을까. 넷플릭스 전 제품관리 부사장 깁슨 비들은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은 고객 경험에 대한 집착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적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한 사용자경험(UX) 기반의 개인화된 추천 시스템이 넷플릭스가 영상 스트리밍 시장 선도자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객 만족과 고객 가치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시대다. 고객 욕구를 충족시켜 줄 제품이 한정적이던 과거에는 만들기만 해도 팔렸기 때문에 비용 절감이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대체재가 등장하면서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 나은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고객 경험은 제품과 서비스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가 된 것이다. 고객 만족에 소홀하면 넷플릭스가 승승장구할 때 문을 닫은 경쟁 비디오 가게 꼴을 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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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장

◇디자인의 가치

넷플릭스 성공 신화는 고객 경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인 디자인이 기업 핵심 경쟁력임을 상기시켜 준다. 오늘날 디자인은 단순한 미적 추구를 넘어 사용자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분야로 역할이 확대됐다. 디자인은 수요자의 보이지 않는 니즈를 다루는 기술로써 어떻게 하면 좋은 경험을 잘 만들 것인가에 대한 방법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소비자의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족스럽게 누릴 방안을 모색해서 구체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기업이 고객 만족을 통해 경쟁 우위를 점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역량이 됐다.

디자인 가치가 상당함을 알려주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디자인 진흥기관 디자인카운슬은 1993~2004년 12년 동안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을 '일반기업'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기업'으로 나눠 주가평균지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들의 주가 평균이 일반 기업보다 20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디자인경영연구소가 S&P500과 애플, 코카콜라 등 디자인을 중시하는 기업 15개의 주가 평균을 비교 분석한 결과도 디자인카운슬 연구와 유사하게 나타났다. 2003~2012년 10년 간 주가 평균 변화 추이를 분석한 결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기업의 주가 평균이 일반기업보다 228%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세계적 경영컨설팅회사 매킨지는 2018년 '디자인의 비즈니스적 가치'라는 보고서를 통해 디자인을 활용한 기업이 경쟁기업에 비해 매출은 32%, 주주수익률은 56% 높다고 밝혔다. 성공적인 디자인 부서를 만드는 일은 동종 업체보다 두 배 높은 매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한 실천 행동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한 바 있다.

◇디자인 인재 양성의 필요성

그렇다면 성공적인 디자인은 어떻게 개발되는가. 디자인 성공을 결정짓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뛰어난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디자인 중심기업 다이슨의 최고경영자(CEO) 제임스 다이슨은 혁신적인 기술과 디자인을 제공하기 위해 기업에 가장 필요한 요소로 '교육'을 꼽았다. 다이슨은 다이슨기술공대를 설립하고 세계적 명문대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 '다이슨 디자인 엔지니어링 과정'을 개설하는 등 디자인 및 공학 실무교육을 추진, 재능 있는 인력 발굴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 덕분인지 다이슨은 고정관념을 깨는 디자인 상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며 생활가전 분야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디자인 산업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재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사례다. 디자이너가 보유한 지식과 창의력이 곧 디자인 경쟁력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인재 양성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디지털전환, ESG 경영 등 산업 대전환이 이뤄지는 오늘날에는 융합디자인 인재 확보가 기업과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고 있다. 지난 5월 매킨지는 성공적인 디자인 부서의 비결은 전사적인 디자인 통합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디자이너는 디자인 이상의 지식을 겸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경영, 기술 등 조직의 타 기능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췄을 때 혁신적인 디자인을 개발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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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인력양성 사업

◇한국디자인진흥원 인재 양성 사업

현장을 가 보면 많은 기업이 산업 현장과 학업 간 괴리, 즉 미스매치 현상에 대해 고충을 토로한다. 매년 2만여명의 디자인 전공자가 배출되지만 정작 산업 현장에 투입할 인력은 부족하다. 이에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주도할 디자이너를 배출하기 위해 다양한 현장 맞춤형 교육과 실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 디자이너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굴에 필요한 폭넓은 지식을 겸비할 수 있도록 타 분야 융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산업 분야에 특화된 우수 디자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전국 주요 9개 대학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신기술분야융합디자인 전문인력양성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신기술분야 융합 디자인 석·박사 교육과정 개발과 산업계 수요를 반영한 산·학 프로젝트 및 전문 교육과정 운영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2021년부터 4년 동안 약 140억원을 투입해 로봇,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지식을 갖춘 융합 디자인 전문인력 880여명을 배출할 계획이다. 또 6개 대학 학부생을 대상으로 디자인과 공학·경영학 등이 융합된 다학제 교육과정을 운영, 기획부터 제조·마케팅까지 혁신 제품 및 서비스 개발의 전 과정에 대한 이해를 갖춘 디자인 융합 전문 인력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둘째 '현장에 바로 투입 가능한' 산업·기업 맞춤형 우수 실무 디자이너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바로 디자인 관련 학부 2학년 이상의 재학생을 대상으로 디자인 역량 강화 교육, 분야별 전문가 멘토링, 국내외 기업 연계 산·학 프로젝트 등을 지원하는 '세계일류 디자이너 양성사업(KDM+)'이다. 이론 중심의 기존 대학 디자인 교육만으로는 기업이 요구하는 실무 인재를 신속히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디자인진흥원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우수 디자인 인재를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외 글로벌 23개 기업과 28건의 산·학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참여 학생이 BMW 독일 본사, LG생활건강 등에 정규직으로 입사하고, 산·학프로젝트 결과물이 상품화되는 등 다양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셋째 디자이너의 글로벌 역량 개발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조너선 아이브, 프랑스의 필리프 스타르크 등 스타 디자이너 한 명이 국가나 기업·상품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폭발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가전, 자동차 등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에 비해 스타급 디자이너가 없어서 그 파급력은 미약한 수준이다. 이에 디자인진흥원은 글로벌 영향력을 갖춘 한국 대표 디자이너를 집중 육성하는 '차세대 디자인 리더 육성사업'을 새롭게 구상하고 있다. 또 미취업 청년 디자이너를 해외기업에 인턴으로 파견, 더 넓은 견문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양질의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왕립예술대학원대학, 국립국제교육원 등 다양한 유관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외에도 고품질 디자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디자인 전문 온라인 러닝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증강현실, 가상현실, 3D 모델링 등 활용도 높은 디지털 디자인 콘텐츠를 제공해 전국 어디서나 누구든지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다수의 디자인기업이 1인 기업이거나 소규모여서 디자이너 역량 개발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온라인 디자인 교육 플랫폼을 통해 일반 학생은 물론 영세한 디자인 기업이 디자인 방법론, 성공사례를 쉽고 간편하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이탈리아 산업디자인계의 대부인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창의적 인재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게 아니라 생활 체험과 환경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의적인 디자이너를 발굴하기 위해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체험과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통한 고객 경험 혁신으로 우리 산업 발전을 견인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 syoon@kidp.or.kr

<필자소개>윤상흠 원장은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합격 후 산업자원부 자원팀장, 지식경제부 무역구제정책과장,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총괄과장과 무역조사실장을 역임했다. 통상·무역 분야 전문가로,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 1조달러 달성에도 기여했다. 지난해 제17대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취임 후 '현장에 답이 있다'는 철학에 기반해 디자인 전문기업 방문 등 현장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통상·무역 전문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유망 디자인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