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도시이던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지역 대학과 함께 산업을 키운 것이 현 모습이다. 세계인에게 인기를 독차지한 음료수 게토레이 역시 플로리다대 미식축구 선수들을 위해 이 대학 연구실에서 만든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이처럼 대학의 역할은 국가 산업 발전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강원 원주시의 의료기기 산업 역시 군사도시 원주의 미래를 걱정한 28년 전 당시 원주시장과 지방에서 연세대 의공학부를 살려 보려던 몇몇 교수들의 열정으로 시작했다. 당시 원주시 예산 3400억원(현재 화폐가치 1조5000억원)으로 20만명의 인구가 현재 36만명으로 변모하고,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모두 갖춘 대한민국 대표 의료기기 산업 도시 원주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현재 의료기기 산업 도시 원주의 위상은 애석하게도 2009년 첨단의료복합단지(첨복)가 정치적 이유에서 대구와 오송으로의 분산이 정해지면서 정체됐다. 백화점식이 아니라 전자 의료기기에만 집중해서 시작해 국내외적으로 인정 받던 원주 의료기기 산업 단지 모델이 전국에 백화점식으로 생기면서 힘을 받지 못했다.
첨복 선정 당시 원주가 의료기기 단지로 선정됐으면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지금보다 10년 앞서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중국과 비교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격차가 심화하는 등 안타까운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헬스케어 분야를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한 축으로 삼아 제2 반도체 산업으로 육성시킨다는 전략이다.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 제도, 인력 양성, 정부의 사업 지원과 해당 산업을 하고자 하는 기업의 의지가 필요조건이다.
이에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을 해본다.
첫째 지역이 발전해야 나라 경제가 발전한다. 그러기 위해 각 지자체는 남이 이룬 것을 새롭게 백화점식으로 하지 말고 자신의 지역에 맞는 산업 발전을 일궈야 한다.
둘째 중소·중견기업이 살아야 나라 경제가 산다. 취업을 앞둔 많은 취준생은 코끼리의 일면만 볼 수 있는 대기업만 보지 말고 코끼리의 세밀한 곳을 경험할 수 있는 중소·중견기업에서 자신의 이력을 쌓아야 한다.
취준생은 대학에 있을 때 인턴 등을 통해 자신이 사장이라면 자기 자신을 채용할 수 있도록 실력을 쌓아야 한다. 대기업은 중소·중견기업과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은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자기만의 특수성을 띠는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셋째 정부는 정부대로 중소·중견기업이 튼튼해질 수 있는 인재 양성 모델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본인이 산업부에 제안해서 진행되다가 조직 개편이 됨에 따라 중소기업벤처부로 이관된 대학과 중소·중견기업이 함께하는 기업 연계형 연구 인력 양성 사업의 초기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넷째 연구성과는 반드시 산업화로 이어져야 한다. 대학이나 연구소 연구자들은 원천 기술도 중요하지만 국민 혈세로 제공되는 연구비가 '본인 돈으로 연구를 한다'는 생각을 해야 연구성과가 산업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또 연구자는 연구를 할 때 나라면 이걸 살까, 미래 먹거리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등 우문현답(우리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정신으로 시작할 필요성이 있다.
다섯째 정부는 발로 뛰는 옴부즈맨 또는 자문관 제도를 도입하기를 제안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경영하기 어렵다고 한다. 모두가 규제 때문이라는 데 공감한다. 규제와 제도는 부처 간 또한 부처 내에서도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책상에서가 아니라 발로 뛰면서 들어 주고, 실타래를 풀려 노력하고 해결하려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
끝으로 세계 각국은 새로운 패러다임인 빅데이터 중심의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에 따른 기업이나 정부 대책은 무엇일까. 법·제도가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산업은 클 수 없다. 뒤처질 뿐이다. 이 역시 법·제도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꿔야 한다”는 외침보다 왜·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고,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과거 사례를 통해 면밀히 분석하고 빠른 대처를 하기 바란다. 행정 역시 역사다. 그 속에 답이 있다.
윤영로 연세대 디지털헬스케어학부 교수, yoon@yonsei.ac.kr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