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공격적 반도체 제조 인프라 투자는 글로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망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하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엔 삼성전자와 TSMC에 견줄 대형 고객사가 생기면서 신규 시장을 창출할 기회가 됐다. 소부장 납품 기간(리드타임) 지연 등은 반도체 공급난은 가중될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반도체 제조공장(팹) 초기 투자는 부지와 건물(쉘)을 제외하면 대부분 반도체 장비 도입 비용이 차지한다. 생산라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반도체 장비 비중이 80~90%에 달한다. 이에 따라 인텔의 천문학적인 반도체 제조·연구개발(R&D) 투자 비용 중 상당 부분이 반도체 장비 도입에 쓰일 전망이다. 인텔은 작년 미국 애리조나 팹 확장에 200억달러, 지난달 오하이오주 팹 구축에 200억달러, 이번 유럽에 330억유로 규모를 초기 인프라 구축에 쏟는다고 밝혔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ASML, TEL, 램리서치, KLA 5개사가 전체 60% 이상을 차지한다. 인텔 투자의 가장 수혜 기업으로 주목받는 것도 이들이다. 반도체 장비사 간 공정별 주력 분야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증착·식각 등 일부 공정에서는 인텔에 장비를 납품하기 위한 치열한 수주전이 예상된다.
국내 장비업계에도 기회가 분명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제조사 중심의 장비 고객선을 확장해 인텔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이미 곳곳에서 기회가 감지되고 있다. 국내 전·후공정 장비 업체 중 몇 곳은 인텔과 신규 장비를 공동 개발하고 납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정 부품과 사후 서비스 업체도 인텔 팹 확장에 따라 사업을 확대한다. 한 반도체 공정 부품 업체 대표는 “미국 내 인텔 팹 투자 확대로 공정 부품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인텔 팹 부지 인근에 미국 지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텔 팹이 본격 가동하면 반도체 소재 시장도 들썩일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 팹이 첨단 공정용으로 구축되는 만큼, 초미세 회로를 구현할 차세대 소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반도체 소재 업계에서는 3나노 이하 선단 공정에 쓰일 감광·식각·세정·전구체 등 신소재 개발에 집중한다. 차별화한 소재 기술력을 선점한 기업이 인텔 납품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전체 소부장 공급망에 미치는 악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인텔발 소부장 수요 증가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비 리드타임 증가다. 인텔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반도체 장비 리드타임이 보다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뜩이나 반도체 공급난으로 반도체 제조사의 장비 도입 규모가 증가했는데, 인텔이 가세하면서 시장에 공급할 반도체 장비가 부족해질 전망이다. 반도체 공급난 전 6~9개월 수준의 장비 리드타임은 18개월까지 늘었다가 최근에는 24개월 이상으로 파악된다. 장비를 주문해도 2년 뒤에나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