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주 52시간' 中企의 호소

문재인 정부는 휴식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일·생활 균형 및 연 기준 1800시간대 노동시간 실현'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주간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했다. 개정안은 2018년 2월 28일 국회를 통과해 2018년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주 52시간은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먼저 적용됐다. 2020년 1월에는 50~300인 미만 중소 사업장, 지난해 7월부터는 5~49인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주 52시간제가 본격 시행된 지 2년이 다 돼 간다. 그러나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여전히 주 52시간제의 개선을 이야기한다.

전자신문은 지난 7일부터 나흘 동안 시리즈를 통해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 이를 지면으로 전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고충을 듣고 개선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첫 회로 다룬 주 52시간 이슈에 독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다.

기자들이 만난 중소기업들은 하나같이 제도 자체의 취지에는 동감하면서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일손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뿌리산업뿐만 아니라 반도체 설계나 소프트웨어 개발 같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어려워 근로시간을 허위 작성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주 52시간 시행을 어려워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음은 정부 통계로도 알 수 있었다. 업무량 증가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주 52시간 이상을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신청 건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했다.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특별연장근로 신청 건수는 지난해 7185건으로 2019년(966건) 대비 7배 이상, 2020년(4542건)보다 1.6배 각각 늘어나며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특별연장근로는 근로자 동의 아래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가한다. 재해·재난 상황에서만 운용할 수 있게 하다가 2019년 7월 일본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특별연장근로 승인 요건을 완화했다. 완화와 동시에 봇물 터지듯 급증한 특별연장근로 건수는 그만큼 불가피하게 주 52시간을 넘겨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정부도 불가피한 사정을 알고 있는 듯 기업이 신청한 특별연장근로 신청의 90%를 승인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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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근로 관행과 문화를 개선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창의성과 효율성이 필요한 시대에 장시간 근로는 경쟁력을 담보하지 않고 오히려 반작용의 결과를 불러들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방 강행을 할 때 생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무조건 지키라고 강제하면 편법이나 불법, 부작용을 낳게 된다. 허위 시간 작성과 같은 일들이 실제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주 52시간제 실시의 어려움은 중소기업만 겪는 문제도 아니다. 벤처기업인들은 이달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에 주 52시간제 개선을 공식 제안했다. 강삼권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획일적 주 52시간제 도입은 벤처기업의 핵심 경쟁력 저하와 함께 열정·유연성이 무기인 벤처 문화를 심각히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 확대, 핵심 인력에 대해서는 회사와 근로자 당사자 간 계약에 의해 주 52시간제를 적용받지 않도록 하는 자율권 등을 부여해 달라고 요구했다.

해법은 문제의 원인을 찾는 데서 출발한다. 중기벤처는 '획일적' 제도 적용을 가장 어려워했다.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면서 기업에는 유연성을 더 주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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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