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4강 외교 사면초가...중국 올림픽 개막식서 문화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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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지난 4일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 입은 여성을 소수민족으로 출연시켰다. 중국의 노골적 동북공정 야욕이라는 비판 속에 우리 정부는 '실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청와대는 침묵했다. 문재인 정부가 3개월 남은 시점에서 주변 4강 외교에 허점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지난 4일 시진핑 국가주석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선언 후 이어진 오성홍기(중국국기) 전달 행사에 자국 내 소수민족을 출연시켰다. 깃발을 차례로 옮기는 과정에 한복을 입은 여성도 등장했다. 흰색 저고리에 분홍빛 치마를 입고 댕기머리를 딴 이 여성은 다른 소수민족과 함께 오성홍기를 전달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개막식 식전 행사에선 길림성 백산시 문화로 '상모'를 돌리고, '새해복많이 받으세요'라고 덕담하고, 윷놀이와 단체로 북을 치는 사람들도 소개됐다. 한국 고유 문화가 중국 내 소수민족 문화로 왜곡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복을 '한푸(漢服)'라 부르며 우리 문화를 자국 내 소수민족 문화의 하나라 주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다.

특히 이 자리에는 국가 의전서열 2위 박병석 국회의장과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자리한 상황이었다. 야당에서 '외교참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이 중국 일부인 듯 암시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후보도 중국의 동북공정을 지적했다. 정부에는 중국에 저자세 외교를 보여 온 '굴종 외교'의 결과라며 즉각 강력하게 항의하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지난 5년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문화공정을 외면하고 대응을 회피해온 결과는 찬란한 꿈이 아니라 한복 도둑질로 끝났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전세계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에서 벌어진 '문화공정'을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도 '문화를 탐하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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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치마 저고리와 댕기 머리를 등 한복 복장을 한 공연자가 개최국 국기 게양을 위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국민 감정을 챙기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역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베이징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 입장에서는 기분대로만 얘기하기 어렵다. 국익 관점과 국민여론과 정서도 다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다만 황 장관은 '싸우자고 덤벼드는 순간 실익이 뭐가 있느냐' '한류가 확산하는 과정으로 보고 자신감, 당당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등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언급도 함께 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남북미중 종전선언 모멘텀으로 바라봤던 청와대는 이같은 상황에서 침묵만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황희 장관 외) 별도 입장을 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 뒤 대선이 치러지면 문 대통령 임기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정부 입장에선 이렇다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수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 외에도 미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 상황도 녹록치 않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 방한 일정을 문 대통령 퇴임 후인 5월로 계획했다. 바이든 정부 첫 주한미국대사로는 대북강경파인 필립 골드버그 주콜럼비아대사를 내정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중국과 함께 북한을 설득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도울 수 있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본격화 하면서 미국과 전쟁 움직임까지 보이는 상태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추진됐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방한도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일본과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취임 이후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지만, 돌아온 것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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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동 3개국 순방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2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1호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청와대는 기존 미중러일 4강 중심 외교를 다자외교로 재편하고 공급망을 확대하는 등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었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임기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외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대북 문제든, 4강 외교든,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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