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미래 권력의 미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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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둔 겨울은 잔인하다. 물러설 수 없는 선거를 앞두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한다. 신문 1면은 대부분 정치권 소식으로 가득하다. 오직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때로는 물밑, 때로는 물 위에서 치열하게 격돌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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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국회의원(국민의힘 디지털정당위원장)

몇 안 되는 공학도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나는 순진하게도 국회야말로 미래를 추구하는 곳일 거라 기대했다. 최소한 미래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은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국민이 편안한 현실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위정자들은 지금의 현실 너머 새롭고 혁신적인 미래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비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국회에 와서 목격한 것은 오히려 제도와 규제가 미래의 발목을 잡고 당기는 모습이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지 걱정스러운 수준이었다. 국회에 들어온 지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야 정치인들이 과학기술 정책이나 미래 전략으로 논쟁을 벌이는 있다는 뉴스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때로는 정쟁을 위한 정쟁이 모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사회 모든 분야가 급속 발전한 근현대사 속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1959년 원자력연구소 설립을 기점으로 과학기술 정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추진 아래 지금의 기획재정부 역할인 경제기획원 내에 전담 부서로 기술관리국을 설치했다. 이후 과학기술과 산업화 접목을 통해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이처럼 미래 전략의 핵심을 과학기술에 두고 역사적으로 한강의 기적 1.0을 완성했다. 이에 따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어 낸 대한민국의 다음 도약 단계로 한강의 기적 2.0이 될 '디지털 기적'을 통해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고 선도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비전을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여의도엔 왜 미래가 없느냐”는 푸념을 늘어 놓자 “당장 눈앞의 선거를 고민하는 정치인이 어찌 10년, 20년 후 미래 전략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겠냐”는 반응으로 돌아왔다. 선거철이면 하루에도 몇 개씩 발표되는 여론조사 숫자에 온 나라가 들썩이는 형국이다 보니 단기 이슈에 매몰되거나 포퓰리즘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논리다. 정말인가. 진정 대한민국에서 국가 미래 비전을 준비하는 국정 운영 구조는 아예 불가능한 것인가.

의원내각제인 핀란드에서는 법률에 따라 총리가 20년 앞을 내다본 국가미래전략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주제는 총리가 정한다. 예를 들어 일자리를 주제로 한 미래전략보고서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복지 정책의 변화 추이와 함께 나아갈 방향까지 담겨 있다. 정당 간 생각이 서로 다른 경우라 해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검토하고 협의해서 합의된 보고서를 채택한다. 국회 토론과 전문가 자문을 거쳤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유지된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다.

핀란드 국회는 상설 위원회로 '미래위원회'도 두고 있다. 미래 관점의 장기적인 의제 설정과 함께 법안 및 정책이 미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논의한다. 타 상임위에 발의된 법안들을 미래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정부의 국가전략 수정 방안을 제시한다. 빅데이터, 양자 컴퓨팅, 로봇 등 이머징 기술은 물론 자살예방 프로젝트, 저출산 고령화 등 미래 사회의 이슈까지 다룬 중장기 보고서도 4년마다 내고 있다. 이미 1993년에 특별위원회로 만들어진 후 그 중요성을 더욱 인정받아 2000년에 정식 상임위로 승격됐다. 한마디로 국회 안에 있는 미래 싱크탱크 역할이다.

사실 핀란드는 여러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 있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강대국 사이에서 안보 위기도 겪었고, 물자가 그리 풍부한 나라도 아니다. 그런 핀란드는 1990년 전후 옛 사회주의권 붕괴로 인한 경기 침체를 겪는 과정에서 미래예측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다. 주변 정세의 급격한 변화로 나라가 불확실성을 겪게 되면서 국가의 존망이 미래 전략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힘이 있으면 급격한 상황과 환경 변화에도 민첩하게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회도 2018년 국회 미래연구원을 설립할 때 이러한 핀란드 사례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미래연구원은 그동안 국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미래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더해 연구 과제를 실질적으로 정책화할 수 있는 국회 상임위 조직도 필요하다고 본다. “상임위가 어디세요”라는 질문에 “저는 미래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려야 한다.

미래전략 연구 분야에 'X이벤트'라는 개념이 있다. Extreme event(극단적 사건)의 줄임말인데 마치 코로나19 팬데믹처럼 발생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한 번 터지면 엄청난 여파를 몰고 오는 사건을 뜻한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미래를 상상하고, 변화에 대비하며, 위기에서 기회를 포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위정자의 의무라는 사실을 미래 권력이 되려는 자는 명심해야 한다. 국민은 미래 권력이 아니라 미래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 국민의힘 의원, 선대위 디지털정당위원장 futurekorea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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