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나가지 않고 생활해보기' 과제가 주어졌을 때 '꿀'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꿀을 먹어 당뇨 곰이 되는 거 아닌가도 싶었다. 내가 아무리 초등학교 짝꿍을 괴롭히는 데 아이디어를 짜낸 이후로 생각이란 걸 안 하고 살았다 해도 이동시간이 없으니 온전히 내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란 건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남는 시간에 게임만 하면 될 것 같았다. 15년 전 한창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할 때는 게임 정기점검일인 수요일만 현실세계와 접점을 가졌다. 더구나 연애도 하지 않으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밖으로 나갈 도전 자체가 없었다. 판은 완벽하게 깔렸다. 오히려 기사 분량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일단 밥은 배달 시켜먹자
냉장고를 열어보니 물과 먹다남은 소주 그리고 밑반찬 몇 개만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기러기 아빠 냉장고 같았다. 일단 먹는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서비스는 '배달의 민족'이었다. 평소 배달을 잘 시켜먹지 않는 편이라 어디서 시켜먹어야 할지 모르는 어려움을 해결해줬다.
앱 사용은 무척 편했다. 주소를 위치기반으로 잡는다. 상세 주소만 간단하게 입력한다.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결제하면 끝이다. 뭘 먹을지 고민할 때는 화면을 당겼다가 놓으면 메뉴를 추천해 준다. 그럼 그걸 먹으면 된다.
배달 앱은 복잡하고 많은 일을 간단히 처리해준다. 주문내용이 잘못 전달될 일도 없고 세부 부탁 내역도 기록으로 남는다. 집콕을 도와주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쓸 때마다 편의성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소비 앱은 결제가 편하다. 카드를 등록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확인할 것도 없이 결제가 진행된다. 마지막 결제완료를 누르기 전 지름신과 싸울 겨를도 없다. 심지어 비밀번호조차 묻지 않는 앱도 있다.
반면에 내가 무엇을 받아야 한다거나 신청해야 하는 앱은 쓰다 보면 성질이 나빠진다. 더 나빠질 성질머리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배민 결제 시스템은 편했다.
커피나 디저트도 배달할 수 있어 좋았다. 얼마 전 후배가 '마들렌' 먹을 거냐고 물어봤는데 마들렌이 뭔지 몰라 당황한 기억이 있다. 필자가 어리버리한 사람이지만 가끔 달콤한 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혼자 뻘쭘하게 핑크핑크한 카페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배달 메뉴도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덕분에 이제 마들렌과 마카롱을 구분할 수 있다.
예전 배민 초창기 시절 몇 번 이용했을 때는 리뷰를 보는 재미가 컸는데 요즘은 좀 덜한 느낌이 있다. '아기가 먹을 거니 낭낭하게 달라고 했는데'로 대표되는 리뷰 역효과 때문이다. 과거 소소한 웃음을 만드는 센스있는 댓글들이 나오지 못하는 환경이 아쉽다.
문득 배달 앱을 이용하는 사업자는 배달 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수원 우만동에서 닭집을 하는 장모님이 될 뻔한 구 여자친구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모님이 될 뻔한 구 여자친구 어머니는 사위가 있으심에도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시며 “배달 앱 없으면 예전처럼 고정비도 나가고 주문을 받기 쉽지 않다. 차라리 수수료 내는 게 돈 버는 거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집에 장가왔으면 닭은 잘 먹여줬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저도 아쉬워요. 어머니가 될뻔한 아주머니.
비가 오는 날에는 술이 심하게 당겼다. 메뉴는 이미 비가 구름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정해졌다. 파전과 두부김치 그리고 막걸리를 먹으며 NFL 프리시즌 경기를 몰아볼 셈이었다. 문제는 술이다. 출장 때마다 면세점에서 신주단지 모시듯 사온 위스키나 꼬냑은 굴러다니는데 내가 먹고 싶은 막걸리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막걸리를 사놓고 안 먹을 리가 없지 않은가. 술을 어디서 시키나 고민했었는데 배달의 민족에 다니는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야 배민에서 술 시킬 수 있다”
앱에서 주류를 시키면 배달기사가 신분증을 휴대폰으로 찍는다.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다. 배민은 라이더에게 주류 배달에 관한 교육 영상을 시청해야만 운행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 신분증 촬영 전 고객에게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를 받도록 한다. 그런데 이 배달원, 그냥 찍고 가버린다. 나에게 고지를 해주지 않는다. 내 개인정보가 아무리 100원에 팔린다고 해도 이건 너무 하다 싶었다.
개인 문제인가 싶어 몇번 더 주류를 주문했다. 한두 명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 한 번은 왜 고지 해주지 않느냐고 묻자 어차피 생년월일 빼고는 음영처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거절하면 주류를 못 건네는데 그럼 당신이나 나나 모두 손해라고 말했다.
내가 여성이 돼 본적은 없어 지인에게 물었다. 그녀는 “신분증을 제출할 때 개인정보 유출이 걱정된다”며 “너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은 모르겠지만 혼자 사는 여자는 걱정된다”고 말했다.
해당 문제를 배민에 다니는 친구에게 알렸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한 전문가의 멘트를 인용해 “매일 혼자 술 마시는 게 버릇이 되면 음주 자체가 생활화된다”며 “알코올 의존에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의를 줬다. 아마 친구도 취해있던 거 같다.
◇배달 음식이 질린다
일주일 넘게 배달음식을 먹으니 살만 찌는 거 같았다. 일회용기는 산을 이루고 있었다. 식자재를 배달시켜 직접 요리를 해먹기로 했다. 식자재 배송도 앱을 통해 간편하게 할 수 있다. 과거 취재를 마치고 새벽에 들어오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마켓컬리가 생각났다. 그때 난 술과 피곤에 절여져 있었고 마켓컬리 박스에는 먹음직스럽게 잘 절여진 젓갈이 있었다.
앱은 사진이랑 설명이 잘돼 있다. 배송받는 시간도 정할 수 있다. 마켓컬리 장지동 물류센터는 2000명가량이 하루 10만개가량 물량을 처리한다고 한다. 마켓컬리 피킹 자동화 시스템은 DAS(Digital Assorting System)를 기반으로 한다. DAS는 물류센터에 보관된 상품을 재분류 없이 바로 피킹하는 DPS(Digital Picking System)와는 다르다. 신선식품이라 잠깐 들리는 개념이라 그렇다. 실제 받아본 상품은 집 앞 이마트 본사 품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말농장 가서 상추만 따와도 다음날 먹으려고 하면 푹 죽어있는데 신기했다.
식자재는 왔지만 집에 도마도 칼도 냄비도 없었다. 엄마가 '이게 사람사는 집이냐'라고 했던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깨닫는다. 가수 싸이는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끼며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우리 엄마는 분노를 느끼며 '어찌 그렇게 사냐'고 했을 게 틀림없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 구입은 쿠팡과 네이버쇼핑을 이용했다. 쿠팡은 역시 로켓배송이다. 시키면 내일 온다. 잠자고 있으면 도착한다. 사진까지 찍어서 잘 도착했다고 알려준다. 눈 뜨고 일어나 눈비비고 문을 열면 택배가 까꿍하고 반겨준다
네이버 쇼핑은 쿠팡 로켓배송이 없는 제품을 살 때 이용했다. 국내 최대 플랫폼답게 상품 종류가 많았다. 고르는 게 일이다. 나처럼 관심 있는 분야 제품 말고는 귀찮아서 대충 사는 사람은 그냥 인기도순으로 정렬해 구입하는 게 편하다. 인기가 많다는 건 많은 사람이 샀다는 거고 그만큼 검증받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네이버는 네이버 페이도 함께 운영한다. 네이버 페이로 구매를 하면 더 많은 포인트를 준다. 포인트는 현금처럼 다른 물건을 쓸 때 활용할 수 있다.
네이버는 금융사와 카드사 관련 상품을 내놨다. 추가 포인트를 준다.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는 심리를 심어준다. 난 그 전략에 혹해 네이버 현대카드를 만들었다. 참, 인기도 정렬로 산 제품은 바로 재활용 통으로 직행했다. 제품설명과 리뷰를 잘 읽고 사야 한다.
간혹 국내에만 들어오면 비싸지는 제품이 있다. 이럴 때 유용한 사이트가 알리익스프레스나 타오바오, 아마존, 이베이 등이 있다. 정·가품 여부는 유심히 봐야한다. 딜러와 채팅 시스템이 잘 돼 있어 이것저것 묻고 사는 것도 가능하다.
전자제품은 전파승인을 받지 않는다거나 국내 유통이 허락되지 않는 성분을 가진 것도 있는데 세관에 걸리는 건 복불복이다. 과학기술정통부가 전파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중고거래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하니 이제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가격대가 높거나 덩치가 큰건 100% 세관에서 처리된다. 세관에 들어가면 얼마 후 관세를 내라고 문자가 온다. 어려운 절차 없이 안내받은 금액을 입금하면 하루에서 이틀 사이에 발송이 된다. 중국발이나 미국발이나 요즘에는 길어도 보름 안에는 택배를 받을 수 있다. 2∼3주를 기본으로 잡았던 예전과 다르다. 배송비도 낮아지는 추세다.
◇집콕이 안겨준 새로운 취재 방식
사람을 만나야 기사가 나온다. 제아무리 대기자라도 사람 안 만나고는 어쩔 수 없다. 집콕하는 2주동안 기사를 안 쓸 수 없는 노릇이다. 모든 취재는 전화로 해야 한다. 전화취재는 어렵다.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건질 수가 없다. 소 뒷걸음 치다가 얻어걸리는 게 안 된다는 말이다. 선명하게 질문을 준비해야만 선명한 뉴팩트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난 아이폰이다. 통화 녹음이 안 된다. 반드시 워딩을 해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스위치'는 그런 귀찮음을 덜어줬다. 스위치는 AI번호를 발급받아 통화내용을 받아 적는 방식이다. 한번 설정하면 자동으로 모든 전화통화가 카톡 대화처럼 문자로 기록된다. 텍스트를 터치하면 해당 부분 녹음이 재생된다. 다만 인식률이 조금 떨어진다. 일상적인 언어는 잘 받아적는 편이지만 게임 관련 용어가 나오면 새 단어를 창조하는 수준으로 받아쓰기한다.
집콕취재에는 네이버 클로바 노트도 도움이 됐다.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면 네이버 클로바 노트가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한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 영상회의 솔루션 줌과도 연동된다. 클로바노트는 네이버웍스, 네이버웨일온, 구글미트 등 다양한 영상회의 솔루션과 연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활용처가 마땅히 없어 집에서 굴러다니던 오큘러스 퀘스트2는 집콕 취재에서 제 역할을 찾았다. '스페이셜'앱으로 VR 공간에서 회의나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 스페이셜은 가상 공간 내부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하고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실제 참여자 얼굴을 인공지능 기술로 스캔해 3차원 아바타를 만든다. 필기도 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허공에 이미지를 불러와 보여줄 수도 있다.
줌, 스페이셜로 취재하다 보니 불현듯 하두리와 버디버디가 떠올랐다. 어떻게 읽는지 모르지만 읽히는 아이디를 만들고 번개 만남을 진행하던 그때의 감성이 그리워졌다. 버디버디를 가지고 있는 위메이드에게 전화를 했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카카오 임원을 역임한 권승조 대표가 설립한 메타스케일이 Z세대 타겟으로 메타버스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며 “버디버디라는 무기를 두고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방침”이다고 말했다.
◇정기구독은 맥심만 해왔는데…
나에게 정기구독은 과거에 머물러있다. 잡지를 본다거나 3년 전 면도날 정기배송이라는 서비스가 궁금해 신청한 '와이즐리'가 전부다. 이것도 취소가 귀찮아서 유지하는 정도다.
처음에는 기사 구색 맞추기 위해서 무슨 서비스가 있나 찾았다. 지금은 없으면 안 될 서비스가 됐다. 사람이 편함을 알기 시작하면 그 이전으로 못 돌아간다는 말은 진리다. 대신 지갑도 많이 편해진다.
작년 40㎏을 감량한 이후 건강에 관심이 많다. 건강보조기능식품은 모노랩스를 이용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모노랩스 대표가 게임업체 4시33분 소태환 전 대표다. 외국에서 한국사람 만나면 괜히 반가운 그런 느낌이다. 모노랩스는 건기식 소분 정기구독 서비스 I'AM서비스를 운영한다. 설문을 바탕으로 건강기능식 조합을 추천해준다. 건기식을 사놓고 먹는 걸 잊어버리거나 여러 개를 꺼내 먹기 귀찮아서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I'AM은 한 포로 해결할 수 있다.
집밖에 나가지 않아도 빨랫감은 나온다. '런드리고'를 이용해 빨래를 해결했다. 구독 신청하면 비키니 옷장과 비슷한 수거함을 준다. 안에다가 옷을 넣으면 저녁에 수거한다. 그 다음날 저녁에 빨래를 마치고 다시 집앞에 가져다준다. 일반적인 의류뿐 아니라 신발, 이불, 덩치가 큰 옷까지 다 된다. 사이클복같은 기능성 의류는 안된다.
와이즐리는 화장품 라인업을 추가했다. 클린징부터 선크림까지 4단계 라인업이다. 이용자 피부 상태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화장품은 여자친구가 사다주는 것만 찍어 발라왔다. 지성인지 건성인지도 모른다. 와이즐리는 샘플을 제공한다. 발라보고 선택할 수 있다.
'나물 투데이'는 나물을 정기구독할 수 있다. 풀을 좋아하지 않지만 억지로 챙겨 먹고 있는 사람에게는 편하다. '마하이식스'는 양말을 한 켤레에서 세 켤레까지 정기적으로 배송한다. 패션 아이템으로 양말을 신경쓰는 고객을 위해 매달 새로운 디자인 양말을 내놓는다. '술담화'는 4만원가량 구독료를 내면 전통주와 함께 어떤 안주가 잘 어울리는지 큐레이션 카드를 함께 보내준다.
세차도 정기구독이 된다. 나는 준 세차병 환자다. 환자들끼리는 디테일링이라고 부르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릴없이 온종일 차 닦고 광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출장 세차에 대해 부정적이다. 환경법상 아파트 주차장이나 개인 차고에서 물과 케미컬을 사용하는 건 불법이다. 그래서 출장세차는 스팀으로 세차하는데 도장 면에 미세한 스크래치인 '스월'이 나기 쉽다. 스월이 나면 난반사로 인해 광을 잃는다. 또 무슨 캐미컬을 사용하는지 알 수 없다.
갓챠는 자체 운영 디테일링 아카데미를 수료한 디테일러가 관리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외부·내부 세차를 해준다. 귀찮은 내부청소, 드레싱까지 해준다. 사용자 라이프스타일이나 운전습관, 차량 상태에 맞춰 세차 및 차량 관리 방법을 제시하는 고객 맞춤형 솔루션도 준비 중이다.
◇타의적 '업글인간'
집콕시대에는 '업글인간' 트랜드가 잘 맞는다. 단순 직무 관련 스펙만 쌓는 게 아니라 성장 자체가 과정이자 목표다. 온라인 강좌 플랫폼에는 온갖 클래스 콘텐츠가 존재한다. 홈트레이닝, 드로잉, 그래픽 등 취미부터 수익 창출 효과가 있는 상품 등이 다양하다. 시간과 장소 등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 비대면을 통해서 취미를 구독하고, 배울 수 있다.
처음 시작한 건 프로그래밍이다. 게임사가 연봉을 경쟁적으로 올린다고 해서 관심을 둔 건 맞다. 기획자 국가검정시험을 본 것도 절대 그런 거 때문이 맞다. 프로그래밍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고 한다. 나이 먹어서 몸에 힘이 빠져가는데 뭐라도 힘을 키워야할 거 같아 선택했다.
두 번째로는 드로잉 강의를 들었다. 요즘 드로잉 강의가 솔로남자 사이에서 인기라는 소리에 혹했다. 드로잉 클래스에 여성 비중이 높은 영향이다. 야심 차게 신청해 아이패드 프로를 꺼내는 순간 깨달았다. '아 나 혼자 듣지'.
어느 정도 기본 수업이 마무리될 무렵 부모님을 그리라는 과제를 받았다.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보니 부모님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불효막심한 놈이라는 걸 깨달았다. 반면 전 여친들 사진은 그대로 다 있었다. 아이클라우드 고맙다. 이 발랄한 친구야.
운동을 좋아한다면 작은 운동 도구나 하루에 20분만 투자하는 운동법 강의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나처럼 침 흘리면서 심박을 200까지 끌어올려야 그제야 쓰러져 만족하는 이들에게는 아쉽다. 국내는 관련 콘텐츠가 활성화돼 있지 않다.
올해 초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 이종격투기를 배웠다. 4단계가 되면서 갈 수 없게 됐다. 사실 핑계이긴 한데 그렇다. 그래서 집에서 게임을 하면서 다시 살을 빼기로 했다. 방법은 작년과 같았다. 먼지가 내려앉은 닌텐도 스위치와 즈위프트에 연결할 고정 로라를 닦았다.
한 번 오랜 기간 했던 것이라 그런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피트니스계 넷플릭스로 불리는 펠로톤이 생각났다. 펠로톤이란 이름부터 사이클 경기 용어다. 펠로톤은 고성능 카메라, 조명 음향장비를 갖춘 스튜디오에서 스타성이 있는 트레이닝 강사를 선발해 홈트레이닝 콘텐츠를 만든다.
국내에 진출해 있지는 않지만 전혀 못하는 건 아니다. 약간의 영어와 직구의 귀찮음을 감수하면 된다. 가격도 싸다. 월 구독비용은 4만원 정도고 PT 전용기구도 200만원 수준이다. 자전거와 로라 가격을 생각하면 200만원은 거저다. 다만 펠로톤 PT머신은 무겁다. 크고 아름다운 배송료를 볼 수 있다. 나는 여기서 포기했다.
강의를 들으며 사소한 성취가 삶에 큰 의미가 됐다. 실패해도 부담이 적다, 무엇보다 집에서 매일 같은 일, 환경을 바라보는 가운데서도 활력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줬다.
◇디깅을 위한 소비, 중고로운 평화 속에서 찾으세요!
중고나라를 비롯해 당근마켓, 번개 장터 등 앱으로 취미 물건을 구하기가 쉬워졌다. 이른바 '디깅 소비' 영향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을 깊이 파고드는 소비행위를 뜻한다. 게임을 예로 들어보면 일반적인 게이밍 기구부터 레이싱휠, 휠용 버킷 시트 등이 있고 세차의 경우에는 일반인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오묘한 캐미컬과 툴의 세계가 형성돼 있다.
이런 용품은 사용기간이 짧은 상태에서 중고거래로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자신이 원했던 기능이나 감성이 아니어서, 혹은 여건이 안돼서 또는 더 좋은 상위 장비로 기기 변경을 하는 빈도가 높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취미 용품 거래량이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번개장터 취미 관련 카테고리 거래량은 91% 성장했다. 예전에는 작은 시장 물건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관련 커뮤니티를 찾아서 발품을 팔아야했다.
난 아이스하키 장비를 중고로 구하기로 했다.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싶은데 코로나19로 대관이 불가능한지라 일단 좋은 매물을 기다리고 있다. 맞다. 장비병 환자다.
상태좋은 아이스하키 풀세트가 나오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아이스하키를 접고 다른 취미로 넘어가려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샀으니 안 쓰는 물건을 팔 차례였다. 방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레이싱 휠을 매물로 선정했다. 구입할 당시 거금을 들여 샀지만 현재는 하지 않는 게이밍 기어다. 워낙 가격대가 높아 조금 싸게 내놓았다. 1분이 채 안 돼 문자와 채팅이 수십개가 왔다. 내 휴대폰이 진동안마기인줄 알았다.
내 레이싱휠과 버킷시트를 사간 사람은 인천 사람이다. 50대 초반 남성이다. 우리집까지 오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 레이싱 게임을 좋아하는데 아들이랑 같이하고 싶어 구매했다. 앱을 평소에도 잘 이용하는지 묻자 “처음엔 어려웠는데 세상이 바뀌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앱이 없었으면 1시간 반 걸리는 거리에 좋은 물건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커플만 수두룩한 영화관? 거길 왜 가
집콕의 꽃은 누가 뭐래도 빈둥거리기다. 하지만 누워서 빈둥거리기만 하니 곧 질린다. TV를 틀어본다. 아 TV가 없다. 콘솔용으로 쓰는 TV가 있지만 동축케이블이니 UHD동축케이블이니 하는 것이 없다. 셋톱박스도 없다. 다행히 PS5는 홈엔터테인먼트 기능도 겸한다.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등을 지원한다.
내 TV는 중소기업 TV다. 4K TV를 가지고 싶지만 대기업 TV는 너무 비싸 작년에 저렴하게 샀다. 결론은 '싸고 좋은 제품은 없다'였다. 워낙 싸니까 참고 썼지만 뒹굴거리다가 도저히 짜증나서 쓸 수가 없었다. 게임할 때 색감 때문에 거슬리는 수준이었는데 영상콘텐츠는 더 했다. 어차피 게임을 더 많이 할 예정이기에 게이밍 TV 끝판왕 LG OLED 48CX 후속작 48C1을 샀다. 만약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그 돈을 게임을 위해 쓴다고 등짝이 걸레짝이 됐을 거다
역시 비싼 게 좋았다. 색감이 달랐다. 완벽한 검은색을 구현하는 동시에 인풋랙도 이전 버전에 비해서 좋아졌다. 넷플릭스, 왓챠뿐 아니라 쿠팡플레이, 웨이브 등 다양한 OTT도 지원했다. 넷플릭스에서 요즘 잘나간다는 D.P를 봤다. 돌비비전을 지원한다. 군 시절이 떠오르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오는 거 같았다. 나는 지금도 배를 안 탄다. 바다도 가지 않는다. 그만큼 화질이 달랐다.
사람 생각이 다 비슷한지 국내 TV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TV 시장은 2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에 비해 23% 성장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집콕 수요 증가 덕분이다. 4K 이상 해상도, 75인치 이상 등 대형 TV 수요가 더 빠르게 확대되면서 프리미엄 시장의 가속화가 진행됐다.
뒹굴거리기에는 게임도 포함된다. 콘솔 게임은 TV로 해야 제맛이다. 색표현에 있어 모니터와 방법이 다르다. 자기가 출력할 기기에 맞는 하드웨어를 구입하는게 중요하다.
요즘 게임은 디지털 다운로드가 일상화돼 게임을 사러 숍에 가지 않아도 된다. 30년을 모아온 패키지 게임은 짐만 될 뿐이다.
앞서 언급한 TV로 게임을 하니 내가 알던 같은 게임이 아니었다. 정말 끝내줬다. 소니플레이스테이션5, LG OLED 48c1, 아스트로 A50헤드셋을 구입하는데 든 비용은 350만원 남짓이다. 이 정도 가격이면 취미생활을 영위하는데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만족도를 얻을 수 있다.
◇이른바 '랜선연애'
비대면 시대엔 소개팅도 비대면으로 한다. 앱으로 만남을 가진다는 것에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와 달리 데이팅앱은 코로나에도 호황이다. 전쟁통에도 만나고 사랑했는데 전염병이 대수랴.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앱애니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데이팅 앱 다운로드 수는 5억6000만회를 기록했다. 세계 소비자들이 데이팅 앱을 통해 쓴 비용은 무려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다. 전년 대비 15% 늘어났다. 국내서는 지난해 830억원이 소비됐다. 코로나19가 '랜선 연애'라는 새로운 사랑 방식을 가져온 셈이다.
나는 데이팅 앱에 안 좋은 추억이 있다. 프로필 사진을 기존 이용자에게 평가받아 기준 점수를 넘겨야 하는 앱을 두 번 탈락했다. 한 번 탈락 후 40㎏을 감량하고 다시 도전했다. 실패했다. 살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못 생긴 거였다. 스와이프를 하는 앱도 해봤는데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여자 선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메시지가 엄청 많이 온단다. 그냥 내가 못 생긴 거 였다.
요즘 데이팅 앱은 특징이 명확하다. 학력과 재산을 인증하고 만나는 플랫폼이 있는가 하면 이혼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 또 부적절한 개인 메시지에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이 많아지자 여자만 상대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반대로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남자만 가입할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3일째 누군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로맨스 스캠인줄 알았다.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에 대한 이성적 관심을 가장해 피해자 관심을 얻어 그들의 호의를 이용하는 사기다. 누누히 말했지만 예쁜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리가 없다.
그런데 진짜였다. 평소 소개팅 같았으면 카톡을 보내서 일정과 장소를 조율했을 텐데 앱서비스를 이용하면 영상채팅이 가능하다.
영상채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정헌 넥슨 대표의 세 살짜리 딸은 줌으로 친구들과 논다고 하는데 나는 카메라에 내 얼굴이 보이자마자 깜짝 놀랐다. 주위에서 말하길 내 장점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능력이랬다. 하지만 영상으로 진행하다 보니 그런 매력을 어필하기가 힘들었다. 면접 보는 거 마냥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20여분가량 소개팅 면접 겸 취재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냥 방바닥 양과 사랑을 이어가기로 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친구는 “집값이나 계속 올랐으면 좋겠다. 집값 때문에 결혼 못 한다고 하게”라고 말했다. 내 주위에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가 없는 것 같다.
◇소비말고 생산도 좀 해보자
너무 콘텐츠 소비에만 집중한 거 같아 동영상 콘텐츠를 생산해보기로 했다. 동영상 서비스는 텍스트, 이미지와 달리 고성능 네트워크와 고용량 저장용량을 요구한다. 따라서 큰 기업이 아니면 서비스를 할 수 없다. 선택 폭이 크지 않다. 짧은 동영상에 특화된 틱톡과 동영상 플랫폼 대장 유튜브를 놓고 고민했다. 네이버TV도 선택지에 있었으나 방송영상 클립 중심이라 배제했다.
우선 틱톡으로 도전했다. 틱톡에서 잘 팔리는 영상은 짧고 강렬하다. 보통 춤, 노래나 챌린지다. 아니면 잘생기고 몸 좋거나 예쁘고 몸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일단 후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전자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개인채널을 만들었다. 데이트나 캠핑을 다니면서 영상편집을 해왔기 때문에 손쉽게 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어떤 콘텐츠를 주력으로 할까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스튜디오를 만들기로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난 장비병이 틀림없다. 조명걸이와 조명, 카메라 삼각대, 그린스크린을 갖췄다.
평소 알고 지내던 교수에게 조언을 기대했다. 교수는 '유튜브'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플랫폼 주권에 대해서 강조하고는 엠군, 판도라TV 이야기를 꺼냈다. 차마 더 물어볼 수 없었다. 구독자 70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지인에게 물었더니 “그건 하늘이 정해주는 거야”라고 말했다.
사부작사부작 몇 개 영상을 만들었다. 조회수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졌다. 3일을 촬영하고 1주일을 편집한 영상은 자기만족 수준인데 세차하고 바른 케미컬을 15초 정도 찍고 편집도 안한 '쇼트' 콘텐츠에서 만 단위로 나왔다. 유튜브에는 정말 많은 취향과 내용이 있다는 걸 다시한 번 깨달았다.
◇2주간의 집콕 생활…편함과 그리움이 공존했다
2주간 방구석 생활을 해보니 주위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커졌다. 앱이 아무리 편하고, 콘텐츠를 쉽게 즐길 수 있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꽃피는 아우라는 없었다. 우울해졌다. 집콕 서비스는 필요에 의해서 사용할 때 삶을 윤택하게 만들지만 집에만 있으면 삶의 만족도가 떨어졌다.
이장주 심리학 박사는 “왜 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은가. 친구든 연인이든 지인이든 누군가와 함께할 이유가 존재한다”며 “사람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 때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거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빨리 장가나 가라”고 덧붙였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