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5>과학기술 기구 설립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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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이 제13차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세상 일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 반전(反轉)이 있다. 과학기술 행정기구 설립 추진도 반전 가운데 하나다. 과학기술 행정 전담 기구는 1961년까지 문교부(현 교육부)가 주관해 설립을 추진했다. 문교부는 과학기술계 인사들의 건의와 내부 논의를 거쳐 당시 정부의 지상 과제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에 따라 각 부처로 흩어진 과학기술 분야 연구기관을 통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를 총괄한 과학기술 행정기구로 종합 과학기술원 설립을 추진했다.

문교부는 1961년 11월 과학기술원 설립 준비위원회 규정(안)을 만들었다. 준비위원회는 과학기술원 설립을 위한 자료 조사와 설립 계획 수립을 위해 내각수반(현 국무총리) 소속으로 둔다는 방침을 정했다. 위원회 구성은 위원장 1명을 포함해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 15명 이내로 하며, 위원회에 전문위원과 간사도 두기로 했다. 문교부는 그해 11월 29일 이를 관보(제3011호)에 게재했다. 12월 11일 오후 2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위원회에 설립안을 보고했다. 문희석 당시 장관과 학무국장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주일 부의장이 사회봉을 들고 개회를 선언했다. “지금 최고회의 상임위원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최고회의 손창규 위원(당시 문교사회 위원장)이 첫 발언을 시작했다.

◇손창규 위원=민족 부흥을 위한 일에 과학자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원 설립 건을 상정하게 됐습니다.

◇홍종철 위원=이 안건은 산업기술 향상과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조치입니다. 선진국 과학기술 성공 사례를 보거나 우리 실정을 감안할 때 국내 과학연구소는 정비해야 하며, 종합 자연과학연구소 설립은 절대 필요합니다. 현재 25여개 과학연구소가 있지만 부처별로 분산돼 있어 일관성 있는 체제를 확립해야 합니다. 이미 상임위원회 의결을 거쳐 내각수반과 원칙적인 합의는 했지만 예산 편성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발언에 이어 문교부 학무국장이 발언대로 나왔다.

◇문교부 학무국장=문교부에서 작성한 과학기술원 설립 경과와 기술원 조직체제에 관해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지시로 자연과학연구소를 기초로 작성한 것입니다. 크게 세 가지 방안으로 기술원 설립과 운영방안을 검토했습니다.

첫 번째는 기술원을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방안입니다. 두 번째는 민간이 투자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방안입니다. 세 번째는 투자를 국가가 하고 운영은 민간이 맡는 방안입니다. 세 가지 방안을 놓고 장단점을 내부에서 분석한 결과 세 번째 방안이 가장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연구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고, 기초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원이 기술 연구에 독자성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선진 과학기술 도입이 쉽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세 번째 형태로 기술원을 설립할 것을 건의합니다. (문교부 학무국장은 과학기술원 설립 시안을 보고했다. 기술원은 특수법인체로 원내 5명과 원외 6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원장과 학술위원회를 둔다고 밝혔다. 기술원은 국가와 민간이 투자해 설립·운영하며, 위탁 연구비 등 자체 수입 활동도 한다고 설명했다.)

◇유양수 위원=명칭은 어떻게 하나요.

◇문교부 학무국장=문교부에서는 명칭을 국립과학기술연구원으로 했습니다만 각의(국무회의)에서 과학기술연구원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합니다.

◇손창규 의원=예산은 정부 예비비와 기부를 받는 방법을 채택하고, 현재 있는 연구 관련 기구를 통·폐합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주일 부의장=좋습니다. 원자력이나 이와 비슷한 기구를 종합해 다시 연구하도록 내각에 지시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의 있습니까?

◇위원들=이의 없습니다.

회의는 오후 2시 45분에 종료됐다.

문교부가 주도한 과학기술 행정 전담 기구 설립 업무는 1962년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그해 1월 5일 열린 경제기획원 새해 업무보고에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기술 분야에 문제는 없나요”라는 질문 한마디로 과학기술 업무 주체가 문교부에서 경제기획원으로 바뀐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반전이었다. 경제기획원은 기술관리과에 지시해 기술진흥 5개년 계획안을 만들었고, 그해 5월 21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승인을 받아 5개년 계획안을 발표했다.

정부 발표에 과학기술계 인사는 두 손 들어 환영했다. 그들은 과학기술 행정 전담 기구를 우선 신설하는 건의서를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제출했다. 최고회의는 송요찬 내각수반에게 과학기술 행정 전담 기구 설립에 대해 연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내각수반실은 이 건의서 검토를 경제기획원으로 이첩(移牒)했다. 경제기획원은 다시 이 업무를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전상근 당시 기술관리과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에게 맡겼다.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의 회고. “당시 학계가 건의한 주요 골자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과학기술원을 설립하고 국무위원을 원장으로 하며, 원장은 부총리와 같은 격으로 한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주요 관장 업무로 △과학기술 교육과 과학기술연구로 하며, △문교부가 담당하던 과학기술 교육 사무와 각 부처 소속 국공립 연구기관을 통합해 과학기술원으로 이관한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 행정 전담 기구 설립 업무를 맡은 전상근 당시 과장은 고민이 컸다. 이미 문교부에서 추진하던 일로, 부처 이해가 걸린 일이었다. 전 과장은 심사숙고 끝에 새로운 기구 업무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전상근 이사장의 회고록(한국의 과학기술 개발) 증언이다.

“신중하게 보수적으로 이 일을 진행키로 결심했다. 앞으로 그런 기능과 인력을 가진 과학기술 전담기구를 설립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는 국가 차원에서 장기 과학기술개발 계획이나 집행 또는 국정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인사가 거의 없었다. 각 부처 과학기술 업무를 이관 받거나 연구기관을 통합하는 일은 부처 간 엄청난 갈등을 불러오는 일이었다.”

전 과장은 새 기구의 주요 업무 범위를 △과학기술 종합 계획과 기본 정책 수립, 종합 조정 △인력 개발 △연구개발 △국제 기술 협력 등 4개 분야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또 기술원은 기존 해당 부처 업무 가운데 소속이 명확하지 않거나 여러 부처가 관련해 있어 종합 조정이 필요한 업무만 주관하기로 했다.

신설 기구 설립 시기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 기간에는 과학기술 정책을 전담할 국(局)을 신설하고, 제2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 기간에 국무위원을 장(長)으로 하는 부처 출범을 고려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전 과장은 이응선·조남옥 사무관 등과 신설할 국(局)을 어느 부처 소관으로 해야 하느냐를 놓고 심도 있는 토의를 했다.

당시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설 국을 경제기획원 소속으로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기술원 설립을 추진해 온 문교부 소속으로 넘기는 방안이었다. 당시에는 대학 중심으로 과학기술 연구를 하고 있어 문교부 관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기획원 내부 의견은 달랐다. 다른 부처보다 우위에 있고 예산 배분권을 가진 경제기획원 소속으로 있으면서 과학기술 행정 기반을 다진 후 독립 부처로 출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였다.

의견을 취합한 전 과장은 송정범 부원장실로 올라갔다. “어서 와요. 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요.” 전 과장은 그동안 마련한 방안을 보고했다. 송 부원장은 기구를 경제기획원 소속 국(局)으로 한다는 데 찬성했다. “신설하는 국(局) 이름은 과학기술국이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글쎄, 그보다는 기술관리국으로 하는 게 어떨까.” “새로 신설하는 만큼 새 이름을 붙이는 게 좋을 듯 합니다만….” “아니야, 지금까지 기술관리과에서 이 일을 했으니 기술관리과를 국으로 승격시킨다면 명분도 서고 최고회의에서 설명하기도 쉬울 거야.”

경제기획원은 기술관리국 신설 등 직제 개편안을 마련해 내각 사무처(현 인사혁신처)로 넘겼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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