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 점유율 2배·생산량 40% 증가
생산 다변화·소부장 수출 확대 기회
설계자산·인력 최적 활용법 모색 관건
핵심기술 유출·中 규제 악용 우려도
# SK하이닉스가 빅딜을 성사시켰다. 국내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규모인 10조3000억원을 투자,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인수하기로 했다. 이번 인수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취약점으로 꼽힌 낸드 사업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위기 요인도 상존한다. 이번 인수가 갖는 의미와 국내외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 앞으로의 과제들을 분석했다.
<기대 효과>
①약점이던 낸드 경쟁력 향상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9.9%로 5위였다. D램 시장 점유율 30%와는 대조적인 수치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로 본격적인 사업 확장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시장 점유율, 생산 능력, 그간 취약했던 낸드 설계자산(IP) 확보 측면에서다.
우선 SK하이닉스의 시장 점유율이 늘어난다. 인텔의 지난해 낸드 시장 점유율은 9.5%다. 산술적으로 두 회사의 점유율을 합하면 약 20%가 돼 SK하이닉스는 일본 키옥시아, 미국 웨스턴디지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를 제치고 업계 2위에 오르게 된다.
낸드 생산능력(CAPA)도 크게 늘어난다. 현재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생산능력은 청주 M11, M12, M14, M15 라인 등 총 20만장(12인치 웨이퍼 월 기준)이다. 인텔의 다롄 팹 생산능력은 월 8만장이다. 낸드 사업부 인수가 이뤄지면 생산능력은 40% 늘어난다.
SK하이닉스는 또 이번 인수로 SSD 시장 경쟁력 강화를 노릴 수 있다. SSD 성능을 결정짓는 컨트롤러 기술을 선발주자인 인텔에서 가져오면서 경쟁력 배가를 추진할 수 있다.
아울러 적층에는 유리하지만 안정성이 약한 전하트랩플래시(CTF) 기술로 낸드플래시를 만들어온 SK하이닉스는 안정성이 보장된 인텔의 플로팅 게이트 방식 제조 기술을 흡수해 기술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일각에서 10조3000억원이라는 인수액의 효용성이 제기되지만, 그간 SK하이닉스가 겪고 있던 기술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된다”며 “여기에 인텔과의 미래 인공지능(AI) 사업 협력 가능성까지 높아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녹아든 투자”라고 분석했다.
②중국 첫 낸드플래시 생산 기지…생산 거점 다변화
이번 인수에 포함된 인텔의 중국 다롄팹 인수도 주목된다. 낸드플래시 생산 기지 다변화의 의미가 담겨 있다.
SK하이닉스는 그간 중국에서 D램만 양산했다. 2004년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와 설립 계약하고 2006년 완공한 우시 공장이 SK하이닉스의 유일 중국 팹이다.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12만장 규모이던 우시 팹(C2)은 2019년 확장 준공(C2F)으로 약 18만장 규모로 늘어났지만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은 전무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다롄 팹 인수로 팹 건설과 장비 입고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24시간 즉각 가동하는 중국 내 낸드플래시 팹을 확보하게 됐다. 통상 반도체 공장은 건설과 설비 반입, 생산까지 3~4년이 걸리는 데 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특히 다롄 팹 인수는 낸드플래시 생산 거점의 분산, 즉 공급망 관점에서 주목된다. 2000년 초, 미국과 EU는 당시 하이닉스에 높은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한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받아 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에서다. 30~40%대의 관세를 물어야 했던 하이닉스는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미국 팹 생산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특히 중국 우시 공장을 건설하면서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하이닉스 출신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우시 공장이 없었으면 수출길이 막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상계관세는 한국산 D램에 대해서만 부과돼 중국 공장이 우회로가 된 셈이다.
또 중국은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중요 지역이다. 거대 반도체 소비처다. 미래에셋대우 분석에 따르면 2019년 중국의 반도체 소비는 전 세계 생산량의 43%에 달했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25%가 중국에서 출하되고, 중국 내수 시장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 서버 등이 상당해 하이닉스에 인수되는 인텔 다롄 팹은 중국 낸드 시장 공략에 활용될 전망이다.
③국내 소부장, 중국 사업 확대 기회
SK하이닉스가 중국 낸드 공장을 인수하면서, 국내 소재·부품·장비 공급 업체들에 대한 수혜가 기대된다.
다롄 공장은 기존 낸드 양산 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월 8만장 규모 팹이다. 그러나 추후 SK하이닉스가 설계한 공정 구현이나 최신 기술 도입을 위해 신규 설비 도입은 필수다. 당분간은 현 체계로 운용이 되겠지만 향후 5년간 꾸준한 업그레이드와 교체가 예상된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 고위 관계자는 “120단 이상 낸드에서 채널 홀을 뚫으려면 최신 장비가 필요한 것처럼 기술 발전에 따라 인텔이 세운 다롄 팹도 신규 장비와 설비를 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내 소부장 업계 긍정적 영향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장비 업체인 원익IPS와 APTC, 세정 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무진전자, 증착장비 업체 테스와 유진테크 등 SK하이닉스와 협력해온 국내 소부장 업체들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또 SK가 그룹 차원에서 육성 중인 반도체 소재 사업도 탄력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학 소재 분야에서는 SK머티리얼즈, 세라믹 부품은 SKC솔믹스, 실리콘 웨이퍼 분야에서는 SK실트론의 공급이 증가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중국 다롄팹 인수를 계기로 소부장 기업들의 중국 진출 기회도 함께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우려 요인>
①1+1=2?
반도체는 첨단 기술과 적기 투자가 중요하다. 한 기업을 인수, 합병한다고 해서 바로 '1+1=2'가 되지 않고, '1'에 그치거나 '1 이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마이크론의 일본 D램 업체 엘피다 인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2년 D램 업계 3위인 엘피다가 재무악화로 매물로 나오자 4위 마이크론은 인수에 나섰다. 당시 엘피다와의 점유율 합계로 보면 마이크론은 24.7%로 2위 하이닉스(23%)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됐다. '규모의 효과'를 거두려던 게 마이크론의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계획은 이뤄지지 않았다. D램 시장 1위는 삼성전자, 2위는 SK하이닉스, 3위 마이크론으로 고착됐다.
생산라인이 중복되는 경우 생산능력이 줄어들 수 있고, 또 첨단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면 후발주자로 남게 된다. SK하이닉스가 지난 2012년 엘피다 인수 포기를 선언한 것도 시너지가 높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때문에 반도체는 핵심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일본 도시바메모리(현 키옥시아)에 4조원을 투자했다.
도시바가 낸드 업계 강자였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하이닉스의 투자에 따른 기술 협력과 시너지를 기대했다.
그러나 도시바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메모리사업의 기밀정보에 접근할 수 없도록 했다. 또 향후 10년간 지분 15% 이상을 확보할 수 없게 했다.
현재 추진 중인 키옥시아 상장으로 SK하이닉스의 지분 가치는 크게 높아졌다. 성공한 투자인 셈이다. 그러나 일본의 접근 제한으로 기술적, 산업적 효과는 크지 않다는 평가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인텔 SSD 관련 IP와 인력, 중국 다롄 팹 자산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는데, 도시바 투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핵심 기술 및 인재를 확보해 경쟁력을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②중국의 '반도체 굴기' 리스크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 중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인 데, 정작 자체 생산하는 반도체는 적어서다. 중국은 이에 시스템 반도체, 메모리, 파운드리 등 전방위로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특히 낸드플래시 메모리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양쯔메모리(YMTC)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128단 낸드플래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SK하이닉스가 128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한 시점은 지난해 6월. YMTC 발표가 사실이라면 기술력이 상당히 발전한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64단 낸드 제품 생산을 발표한 후 100단 이상 적층 기술을 확보해 가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의 중국 진출은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당국의 지원을 받는 중국 반도체 업체들과의 경쟁뿐 아니라 특히 국내 반도체 인력 이동과 이에 따른 노하우, 기술유출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심화하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확산되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또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로 한국 반도체 업체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미국 기업인데다 SK하이닉스보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인텔이 공장을 소유하고 있을 때보다 훨씬 강도 높은 규제로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