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넘어 벌써 3개월째로 들어섰다. 사회 곳곳에서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나라 밖은 더 심각하다. 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300만명을 넘어서면서 세계 곳곳이 문을 걸어 잠근 상황이다. 나라 안팎이 코로나19로 소비를 멈추자 기업과 가정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을 외치며 평평한 지구를 얘기하던 시대가 무색해질 정도다. 다시 글로벌 교역과 교류가 예전처럼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불안감마저 일고 있다.
그러나 2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1800년대 과거로 눈을 돌려보면 이러한 불안감은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비전을 보여 준다.
모스 부호를 만든 새뮤얼 모스는 1837년 전보를 보낼 수 있는 전신기를 만들면서 통신의 시발점을 만들었다. 당시 유럽은 여러 해에 걸친 흉작과 대륙 전체에 불어닥친 불황, 금융공황 등이 뒤섞인 혼란한 시대였다. 이는 1848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원인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기술 진보로 일궈낸 철도와 전신은 체계를 갖춘 근대식 공장 체제가 등장하는 데 필요한 핵심 인프라를 제공했다. 통신서비스 덕분에 소매시장이 급성장했고, 계절을 많이 타던 산업은 1년 365일 가동 체제로 바뀌었다. 공장자동화에 힘입어 정확한 단위의 일정 성분으로 끊임없이 담배, 성냥, 스프, 밀가루를 대량 생산해 냈다.
전보에 이어 1876년에 개통된 전화는 당시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당시 전화기(phone)라는 낱말도 거짓말(phony) 같은 존재라는 것에서 비롯됐다. 개통 당시 3000대에 불과했지만 1899년에는 100만대를 넘어섰다. 기능이 거짓말 같은 전화가 인간이 느낀 고립의 벽을 허문 셈이다.
유럽 혁명 11년째가 되는 1859년엔 열차 차장 출신 에드윈 드레이크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 근처에서 굴착기를 사용해 유정을 찾아냈다. 원유가 하루에 20배럴씩 솟구쳤다. 1879년 카를 벤츠는 휘발유로 가동하는 내연기관 특허를 냈고, 1886년부터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석유로 가동하는 내연기관과 함께 전기가 발명됐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 체계가 탄생했다.
전기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더 많은 것을 바꿨다. 1878년에 필라델피아 워너메이커 백화점이 영업 시간을 늘리기 위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매장에 전기를 개설했다. 1895년에는 전기 신호등이 어둠이 내려앉은 뉴욕 거리를 밝혔다. 낮시간이 길어지자 생산성이 증대했고, 저녁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녀는 물론 가족 간 교제 활동이 늘었다. 1896년에 미국에만 전기 조명회사가 2500개 있었고, 총 출자액이 3억달러에 이르는 지방발전소는 200개 가까이 설립됐다. 당시 전기 산업에 종사하거나 전기에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이 25만명에 이르렀다.
1910년에 미국에서 전기를 설치한 일반 주택은 10% 정도였지만 1929년에는 대부분 도시 가정에 전기가 들어갔다. 증기기관이 전기로 바뀌면서 1890년부터 1940년의 약 50년에 이르는 기간에 생산성은 300% 증대했다.
역사가 스티븐 컨은 저서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에서 “1880년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 기간에 전신, 전화, 영화, 자동차, 비행기 등 2차 산업혁명 도입은 의식에 대한 새로운 방향 설정을 위한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고 평가했다. 산업혁명이 물질의 번영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에서도 고립을 깨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을 보여 줬다는 얘기다.
나라 안팎이 코로나19로 멈추면서 고립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 자율자동차, 5세대(5G) 통신, 로보틱스 같은 새로운 기술마저 코로나19로 인해 멈춘 것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은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계가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으면 마치 180여년 전에 전신과 전기, 철도가 새로운 지구를 만들었듯이 경제는 물론 사회 구석구석까지 사회를 바꿔 놓을 가능성이 짙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