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박사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대통령 코드 <7>마가렛 대처(상)-'영국병' 대처법, 대처리즘

“단 1페니도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지 않는다. 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영국 국민은 여성 최초 총리 후보자 마가렛 대처의 구호에 환호했다. 대처의 핵심 공약은 이것이었다. '보수당이 집권하면 다시는 노조에 휘둘리지 않도록 노조의 힘을 무력화하고 영국에서 사회주의를 추방하겠다.' 대처가 내건 공약은 첫 번째가 감세 정책, 둘째는 법치질서 확립, 세 번째는 스스로 일하는 국민이다. 1979년 5월 3일,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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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대처는 1925년 그랜덤시 식료품 가게 둘째 딸로 태어났다. 대처의 아버지 알프레드는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대처는 아버지로부터 종교,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녀는 옥스퍼드대 화학과에 입학 후 보수당 학생회에 가입했다. 보수당 순회강연과 전국대회에 열심히 참가했다. 1949년, 대처는 다트포드 보수당 지부 최연소 후보자에 오른다. '24세 옥스퍼드 출신 여성후보'를 보기 위해 당원들이 몰려들었다. 10년 후, 대처는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34세, 두 아이 엄마였다.

1970년대 영국은 '노조천국'이었다. 정부보다 노조의 힘이 강했다. 영국 노조는 노동당, 보수당 할 것 없이 용도에 따라 정권을 갈아치우는 절대 권력이었다. 급기야 공공 부문 4개 노조(자동차, 운수, 병원, 청소)가 연합해 파업을 일으켰다. 병원 노조파업으로 의료서비스는 마취 상태에 놓였고 거리는 쓰레기로 뒤덮였다. 파업에 나선 묘지 매장인들은 시신처리를 거부했다. 이른바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다. 영국 국민은 노조들의 횡포에 치를 떨었고,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당시 유럽엔 사회주의 유토피아 열풍이 불어 닥쳤다. 영국은 심각한 질병에 감염됐다. '영국병'이다. '영국병'이란 정부가 국민생활을 책임지고 보살피는, 복지제도에 길들어진 상태를 말한다. 일하는 사람에겐 세금이, 일하지 않는 사람에겐 무상 복지가 제공됐다. 근로의욕은 사라지고 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했다. 산업혁명을 태동시킨 영국 산업은 성장을 멈췄다. 재정 악화, 외환 보유고 감소,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마침내 1976년 영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아래 들어갔다.

1979년 총리에 오른 대처는 복지 감축 정책과 노동개혁, 경제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복지 정책은 시장 경제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설파하자 많은 시민이 반항했다. 매일 대처 욕이 담긴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사회주의 유토피아 망상에 대해 독일 시인 횔덜린(F. Hoelderlin)은 이렇게 질타했다. “국가가 지상지옥이 된 것은 항상 국가를 지상천국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대처는 대학시절,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가 1944년에 쓴 사회주의 비판서 '노예의 길'에 매료됐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인간을 노예로 만들며 개인의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대처리즘(Thatcherism)은 '자유가 도덕의 본질이 되어야 하며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탄생했다.

대처는 자유를 국가 유산으로 남기려 했다. “자주와 자유, 자율행동은 신뢰와 존경을 기초로 성립된다. 인류의 진보는 개인의 재능을 꽃피우는 데서 출발했다. 그 재능이 발휘되도록 많은 기회와 자유를 주는 것이 자유사회다. 우리는 영국을 긴 잠에서 흔들어 깨우겠다. 지금이 바로 결정할 때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기뻐하도록 해주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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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남서울대 겸임교수 ssonn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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