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제 연장 9일까지 가동 멈춰 국내기업 공급 차질 일파만파
신제품 생산·유통도 비상상황
신종 코로나 사태 장기화되면 산업생태계 피해 확산 불가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국내 산업 생태계가 휘청이고 있다.
중국 주요 지역 공장이 오는 9일까지 문을 닫으면서 부품과 완제품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 가전 신제품 생산이 중단되는가 하면 자동차 생산 라인은 올스톱 위기에 놓였다. 9일까지 연장된 춘제 연휴가 끝난 후에도 신종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으면 심각한 산업 생태계 위기가 우려된다.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등을 제조하는 A사는 중국 톈진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중국 북부에 위치한 이 지역은 중부 우한과 상당히 떨어진 먼 거리지만 중국 정부 지침에 따라 9일까지 가동을 정지시켰다.
B사 역시 중국 남부 선전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여름 계절가전을 주로 생산하는 이 회사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의존도가 높아 고민이 크다. B사 대표는 “올해 나오는 신제품은 재고가 전혀 없다”면서 “계절가전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연초에 판매하지 못할까 걱정”이라며 요즘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가전업계는 '냉매파동'도 우려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가전사는 냉장고, 에어컨에 들어가는 컴프레서를 대부분 중국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컴프레서는 냉매를 고압으로 압축시키는 핵심 부품이다. 부품이 있더라도 검역을 통과하느라 국내 운송까지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중소 업체는 가격을 이유로 중국산 컴프레서를 많이 사용한다”면서 “중국 부품 공급이 지연되면 국내 냉장고·에어컨 생산에서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유통망을 통해 중국에서 생산하는 일부 노트북 모델 공급이 예년보다 약 2주 늦어진다고 공지했다. 평소 주문 후 2주면 받던 노트북 제품을 지금은 4주가 지나야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쑤저우, LG전자는 난징에 각각 노트북 제조공장이 있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이른바 '아카데미 시즌'에 공급이 늦어지면서 노트북 유통망에 비상이 걸렸다.
완성차업계는 부품 중단 우려를 넘어 공장 전면 '셧다운' 위기에 직면했다. 차량 내 통합 배선장치인 '와이어링 하네스'의 공급이 끊기고 재고도 바닥나면서 쌍용차는 4일부터 일주일 동안 평택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현대·기아차도 이 부품의 재고치가 약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글로벌 공급망 덕분에 당장은 휴업을 피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조업이 어렵다.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는 생산력 급감을 우려했다. 상황이 장기화 되면 중국 소재·부품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현지 생산 라인 가동 중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상반기 매출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원자재 수요·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공급망관리(SCM) 시스템 전반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기존 생산 계획에 큰 차질을 빚을 수준은 아니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 되면 SCM과 매출 부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산업계는 9일을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춘제 연휴가 3일 끝나고 귀경 행렬이 시작됐지만 정부 지침에 따라 주요 도시 업무가 9일까지 중단된다. 10일부터 공장 운영이 재개될 예정이지만 신종 코로나의 확산 속도를 지켜봐야 한다. 중국 공장 운영 중단 기간이 길어진다면 국내 산업 생태계 피해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신종 코로나 사태가 조기에 진정되지 않으면 경기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긴급 산업 생태계 지원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성윤모 장관 주재로 '수출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대 중국 수출 기업에 4000억원의 무역금융을 지원하는 등 대책을 내놨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9일까지는 기존 재고 등을 소진하며 버틸 수 있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면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모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