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다. 달랑 달력 한 장이다. 이마저도 접을 날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이맘때면 빠지지 않는 사자성어가 '다사다난'이다. 2019년 역시 일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한 해였다. 굳이 촌평하면 '정치 완승, 경제 완패'다. 어느 때 보다 정치 이슈가 무겁게 짓눌렸다. 반면에 경제는 맥없이 무너졌다. 그래도 잊지 못할 이벤트가 많았다. 무엇보다 정보기술(IT)분야 간판 세 기업이 뜻깊은 생일상을 받았다.
먼저 삼성전자 설립 '50돌'이었다. 69년 11월에 창업해 반세기가 지났다. 36명, 자본금 3억3000만원으로 시작해 10만명, 매출 244조원을 기록하며 국가 대표급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의 위상은 이미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인터넷 대표 기업이자 맏형인 네이버도 창업 '20년'을 맞았다. 삼성SDS 사내벤처로 출발해 20년 만에 시가총액 '빅3'에 안착했다. 네이버 앞에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만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카카오다. 올해는 카카오와 다음이 합병한 지 '5주년'이 되는 해였다. 카카오 전신은 아이위랩이다. 2006년 창업했지만 2010년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이름을 알렸고 2014년 다음과 합병을 기점으로 날개를 달았다. 합병 이듬해에 카카오로 이름을 정식으로 바꿨다. 모두가 인정하는 플랫폼 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국내에서 '슈퍼 앱'을 가장 먼저 실현할 업체로 꼽힌다. 슈퍼 앱은 통신에서 상거래, 금융, 이동수단은 물론 숙박까지 앱 하나로 가능한 서비스다. 카카오는 중국 위챗, 싱가포르 그랩, 인도네시아 고젝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삼성전자, 네이버, 카카오 모두 대한민국 IT역사에 한 획을 장식했다. 제조, 인터넷, 플랫폼 분야 최고 기업이다.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무엇보다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척박한 시장 환경을 딛고 바닥부터 시작해 '대박신화'를 일궈냈다. 우문이지만 과연 실력이었을까, 운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성공 배경은 세 가지였다. 먼저 기술 변곡점을 제대로 활용했다. 시장이 변하는 시점에 딱 맞는 사업 분야를 잡아냈다. 전자산업 태동기에 과감하게 반도체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는 없었다. 네이버는 창업 당시 인터넷이라는 큰 물결을 읽었고, 카카오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모바일 시대를 직감했다.
두 번째는 혁신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다. 공교롭게 네이버는 삼성 사내벤처로, 카카오는 NHN에서 출발했다. 만약 이해진과 김범수가 삼성과 네이버에서 인터넷 검색과 카톡 사업을 했다면 같은 스토리가 가능했을까. 예단하긴 힘들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득권을 깨고 새로운 틀에서 도전했기에 새로운 역사가 가능했다. 그만큼 기존 틀을 인정하면서 혁신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 만큼 힘들다.
마지막으로 기술에 맞는 서비스를 적절하게 만들어냈다. 빠른 기술진화에 적합한 사업 모델을 발굴한 것이다. 제조업과 인터넷, 모바일은 본질부터 다른 시장이다. 50년 제조업 성과는 인터넷에 오면 20년, 다시 모바일에서는 5년이면 충분하다. 그만큼 기술이 빠르고 시장이 무섭게 변한다. 삼성전자 50년을, 네이버는 20년 만에 따라잡았고 다시 카카오는 이를 5년 안에 넘보고 있다. 모바일 다음은 '인공지능(AI)' 시대다. 세 기업이 보여준 성공해법은 AI가 세상을 바꿔도 마찬가지다. 시장을 읽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며 국회가 허송세월한다면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 원점 질문이다. 과연 실력이었을까, 운이었을까. 해답은 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과연 우리가 의지가 있는 지 스스로 되물어 봐야한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